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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
궈징밍 지음, 김남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2년 4월
평점 :
가정폭력, 학교폭력, 임신. 하나만으로도 벅찰 것 같은 사건이 동시에 이야오를 덮친다. 이야오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해주지 않는 엄마, 그녀를 임신시키고 나 몰라라 하는 상대, 그녀의 임신을 약점 잡아 괴롭히는 학우. 그녀에게 건네지는 대사 하나하나가 모두 시리고 아프다. 10대 소녀에게 너무 가혹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앞집에 사는 치밍이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밥 한 끼 챙겨주지 않는 엄마 대신 매일 아침 따뜻한 우유를 챙겨주고, 임신 사실에도 이야오를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가 이야오 곁에 있다는 사실에 힘든 이야기를 읽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가끔 치밍 때문에 이야오의 불행이 더 크게 느껴졌다. 아들을 살뜰히 챙기는 엄마, 가정을 건사하는 아빠, 우수한 성적, 학우를 이끄는 반장, 인기 많은 외모.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진해지듯, 이야오와 모든 것이 대조되는 치밍의 상황이 이야오의 불행을 부각시킨다. 단지 앞집에 살고 있다는 것만 빼면 너무나 상반되는 삶이다. 그런 치밍과 나란히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이야오의 서술이 가슴을 후볐다.
치밍과 이야오는 하나의 점에서 뻗어 나온 두 개의 사선처럼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점점 더, 점점 더 멀어졌다.
여자아이들의 삶에는 이런 남자아이가 있다.
사랑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남자친구도 아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언제일지 몰라도 그는 언젠가 자신의 삶에서 사라지고 다른 여자아이의 왕자님이 될 수도 있다.
그녀 역시 자연스레 공주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가장 가까운 거리 안에 머문다.
여자아이들은 온 힘을 다해 그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누리고 소모한 뒤 끝내는 텅 비워 버릴 것이다.
이어질 수 없음을 알았어도,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조금 더 먼 미래 일 줄 알았다. 이야오를 덮친 풍랑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녀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치밍 또한 멀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불행한 그녀의 곁에서 힘들었을 그를 가지 마라 붙잡을 수 없고, 치밍까지 사라지면 온전히 혼자가 되기에 수고했다 놓아줄 수 없는 이야오의 처지에 먹먹해졌다. 온전한 제 편하나 없는 10대 소녀, 이야오의 이야기가 조금은 희망을 품은 채 끝나길 바라며 마지막 장을 펼쳤다.
주변 모든 것을 와르르 집어삼키는 구멍이었다.
그녀는 바로 이 소용돌이에 빠져있었다.
손을 뻗어 보려 하지만 그조차 휩쓸려 버릴 터였다.
만일 손을 놓는다면 너는 온전히 설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