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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수 - 백조의 부활
김주앙 지음 / 엠지엠그룹 / 2021년 7월
평점 :
1917년 레닌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10월 혁명으로 정권을 잡게 된다. 노동자와 그들을 이끌 엘리트층들의 유토피아 건국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적폐세력이 되어버린 부르주아와 귀족들은 이데올로기에 맞서 저항하지만 끝내 실패하고,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피해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따라 동쪽으로 후퇴한다.
부르주아와 귀족들이 사라진 땅에 과연 유토피아가 도래 했을까? 무엇하나 준비되지 않은 곳은 전쟁과 내전의 여파로 삭막했으며, 귀족과 부르주아가 남기고 간 자산은 모든 인민에게 돌아가기에는 한없이 빈약했다. 국고가 순식간에 바닥난 것이다. 이때, 백계 잔당들로부터 기막힌 소식이 들려온다.
니콜라이 2세가 콜차크에게 하사한 금괴 50톤이 황실의 보물들과 함께 극동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 (4조 루블, 한화로 66조)
국부가 인민들이 아닌 백계 러시아인들을 위한 극동 공화국을 세우는데 쓰이게 놔둘 수 없었다. 이에 소련 정보기관 체카의 KEG부 그라샤는 추적대를 이끌고 백계 러시아인 무리를 찾아 나선다. 국부 4조 루블을 건 격투를 예상한 그들을 맞이한 건 길이 636km, 너비 81km, 둘레 2,200km, 1,742m라는 최고로 깊은 수심을 자랑하는 바이칼 호 위에서 동사한 25만의 군상이었다. 유래 없던 추위에 얼어 죽은 군상만을 남긴 채 금괴 50톤은 종적을 감춘 것이다. 그해 봄, 25만의 군상은 호수 속으로 가라앉고 금괴의 행방은 묘연해진다.
1921년부터 진행된 신경제정책으로 인민들의 삶이 나아지는 가 싶었는데, 신경제정책으로 부를 축적한 네프만들이 다음 표적이 되어 이전의 백계와 같은 처지가 되어버린다. 부를 축적하는 사람이 인민의 적이 되고, 그런 자들을 처단하라 앞장서는 스탈린을 추앙하며, 공산주의와 전체주의가 극단으로 치닫는 이데올로기는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의 길로 들어선다.
“스탈린 동지를 위하여!” P.291
발롱을 해낸 레다처럼 KEG의 그라샤 역시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인민들의 행복한 세상을 건설하고자 한다. 독점이 아닌 분배를 하기 위해 오늘도 주판을 두들긴다. 하지만 아나톨리의 탈을 뒤집어 쓴 코마로프스키와 같이 본인의 욕심만을 채우며, 권력욕만을 쫓는 사람들에 의해 이상향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서로를 지켜야할 인민들이 ‘인민회’를 열어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하고, 단죄한다. 옆집사람이 반동분자가 되어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두려움에 떤다. 나아지는 것 하나 없는데, 국고는 텅텅 비어간다. 식량도 모자라 줄을 서야했다. 사람들은 이 상황을 국고를 빼돌린 백계들을 탓하며 원망한다. 이상향을 백계들의 욕심이 망친 것이었다. 레다가 망명을 하며 먹칠을 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을 타계할 것은 금괴 50톤을 되찾는 것이었다.
“재정이 고갈되었소. 잃어버린 4조 루블의 금괴만큼 부족하오.” P.71
과연 4조 루블만 부족한 것일까. 허상을 쫓으며 이상향으로 가는 길이다 자위하는 인물들이 안타까웠다. 그 와중에 동토의 땅에서 금광이 발견되며, 아나톨리의 탈을 뒤집어 쓴 코마로프스키는 이를 승진의 기회로 잡고 승승장구 한다. 반동분자로 잡힌 이들을 감옥이 아닌 이 동토의 땅으로 보내 노역을 시키며, 노역하다 죽은 시체들은 도로에 파묻어 버린다. 도로에 얼마나 많은 시체가 묻혔는가 알 수 없다. 너무 많은 시체들이 만든 도로, ‘해골 도로’였다.
“금의 가치는 영원하지.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금. 빛을 반사해서 광택을 내는 금 특유의 반짝거림이 보는 이들에게 절로 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 그 희귀성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고. 그냥 돈과는 달라. 금은 하나님이 발행한 돈이야. 금과 생명은 절대 사람이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똑같아.” P.171
어디있을지도 모를 가족을 찾아 숲을 뒤지는 모습. 최고의 신발 장인이 청소부로 전락하는 모습. 이러한 모순이 하나 둘 쌓이며 KEG의 스타로프가 울분을 토하는 모습에 그 시대의 지식인 들이 겪었을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이상향은 과연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인가.
“이 파일은 저희 KEG부가 꿈을 안고 모스크바로 상경한 가난한 노동자, 농민들한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려고 만든 것이요. 그런데 서로를 의심하고 불안해하며 비겁하게 살라고 몰아가지 않겠소!” P.244
“인민의 적은 실체가 없습니다!” P.244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탈을 쓴 독재가 얼마나 끔찍한 건지 알기에, 아나톨리 같은 작자들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소설 <바이칼 호수>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