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소설가 박경리 하면 토지를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고인의 책중에 나도 유일하게 읽은 책이 토지뿐이다.
그런데 학교 다닐때 의무적으로 읽은 탓에 사실 내용을 많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이참에 토지 전집을 들여서 다시 한번 읽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고인의 작품들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보면서 감동과 고인의 노력과 열정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그래서 고인의 마지막인 유고시집은 나에게 또 다른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타계하신지 두 달 조금 지난 지금 이 시집을 읽어보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시집을 읽어본 느낌은 꾸밈없는 고인의 걸어온 일생을 찬찬히 돌아본 거 같았다.
어릴 때의 기억, 어머니, 친할머니, 외할머니 이야기, 자연과 사회에 대한 관심과 꾸짖음과 당부,
문학 후배들을 위하는 마음, 말년의 생활 등이 39편의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보통 시라고면 함축적인 내용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고인의 유고시집은 꾸밈이 전혀 없어서 그런지
할머니가 살아온 옛날 이야기들을 해주는 거처럼 느껴지면서 고인의 마음에 있는 말들을 다 꺼내 놓은거처럼 술술 읽혀졌다.
 
시와 함께 나무판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김덕용 작가의 그림이 조화를 이루어 더 정겹게 느껴졌다. 
그리고 뒷부분에는 고인의 유년시절과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한장 한장의 사진을 보면서 참 세월의 흐름이라는 것... 삶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거 같다.
그리고 또 나의 나이든 모습을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인상적인 그림이 하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친구인 박산매 시인에게 "졸업해도 서로 잊지 말자"며
노트에 그려준 그림이다. 고인의 그 당시 소녀의 감성을 엿볼 수 있는 그림으로 고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제목을 몇 번이고 속으로 읽고 또 읽어봤다. 

짜투리 시간에는 바느질을 했다는 고인...
그렇게 바느질 하듯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시를 썼을 고인의 모습이 머릿속에 희미하게 그려졌다.
폐암선고를 받고도 치료와 수술도 거부한 채...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고인의 고단했던 날들 속에서
떠남을 미리 예감하신 듯한 이 말이 참 편안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는 고인의 마음이 부럽게 느껴진다. 
 
어머니, 친할머니, 외할머니의 이야기들에서 어머니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이 가득한 글을 읽으며 마치 나의 일처럼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나의 어머니, 돌아가신 친할머니, 외할머니를 한번 돌아보게 만들어줬다.
참 삶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이런 저런 핑계로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소홀하고 있다는 것이 참 가슴아프다.
 
 
<산다는 것> 중에서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옛날의 그 집> 중에서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가슴에 깊이 와 닿았던 시들을 다시 읽어보며...
나는 지금 이 짧은 청춘을 잘 보내고 있는건가?
그리고 나도 이렇게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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