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김신회 지음 / 놀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창시절, 도서부 활동을 하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제목만을 뒤따라 지금도 읽기 버거운 고전을 도전했던 나는 보기 좋게 책을 덮은 채 드러눕고는 했다. 그랬던 내게 유일하게 '쉬웠던' 책은 에세이었다. 저자의 삶이 녹아 있고, 무엇보다 각각의 책이 저자가 가지는 그만의 독특한 문체나 문장 구성을 갖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전문가 거나 주제라면 매력은 배가 됐다. 

그러다 대학시절 '자기 계발서' 붐이 일었다. 이제는 식상해진 '청춘'에 관한 이야기부터 '공부하라'라고 부추기는 명령형의 제목을 볼 때마다 진저리가 났다. 그때부터 나는 에세이에 관한 편견이 생긴 것 같다. 대학도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책을 접하게 됐다. 얼굴을 덮고 자던 고전도 꽤 오랜 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볼 수 있는 수준(?)을 흉내 낼 정도는 됐다. 그러던 중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다>을 마주했다. 에세이에 관한 편견과 너무나도 해맑은(사실은 표정이 없지만) 보노보노가 담긴 커버는 기대를 가지긴 힘든 모습이었다. 그래도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에 대한 회상을 핑계로 첫 장을 넘겼다.

그 이후부터일까? 여전히 다양한 에세이가 쏟아져 나오고 내가 진저리 냈던 그 당시처럼 유사한 주제를 가진 책들은 매일매일 서점에 채워진다. 하지만 보노보노의 해맑은 표정에서 시작한 에세이와의 인연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 나를 에세이의 매력에 다시금 빠지게 한 김신회 작가의 이름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의 김신회 작가의 에세이가 나온다는 소식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작가의 이야기를 더 깊게 접할 수 있는 글에 반가웠고, 제목은 더더욱 반가웠다. 최근 퇴사에 관해 깊게 생각하고 쉼 없이 달려온 몇 년을 되돌아봤을 때 잃은 것만 떠오를 뿐 '남은 것'에 대해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이와 동시에 떠오르는 질문이 있었다. 

"그만두면 뭐 할 건데?"
내가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이기도 했지만,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하는 내게 주변 지인들이 수십 번 되물었던 말이다. 저 대답을 올해 내내 고민했지만 대답은 여전히 '모르겠다.'이다. '그만두면 뭘 하지'에 관한 대답. 수많은 시간이 흐른 뒤 인생을 마칠 때까지 찾지 못할 것 같던 대답을 김신회 작가는 제목으로 던져주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어떤 작가는 무엇을 행동하기 위해 계획하고 달성하는 것보다, 쉬는 동안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김신회 작가의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표시하며 수많은 공감을 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용기'가 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어렵다. 그럼에도 작가의 삶, 그리고 그 순간마다 느낀 그녀의 문장을 통해 위로를 받고 언젠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간'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됐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보다 먼저 자신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그녀의 이야기처럼 내 인생의 포인트를 어디로 잡아야 하는지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이제 고민에서 그치지 않으려고 한다. 작가가 책의 마지막에서 말한 '나를 아끼고 싶은 욕심'이 생겨나고 있으니 그 욕심대로 살아볼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은 순간을 위하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