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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지배 사회 - 정치·경제·문화를 움직이는 이기적 유전자, 그에 반항하는 인간
최정균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4월
평점 :
인간을 유전자 단위로 쪼개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없다.
뼛속 깊이 문과 인간인 나에게 과학은 늘 경이롭고 흥미로운 학문이긴 하나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렇다고 과학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다만 과학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내 용량이 아쉬울 뿐.
과학 앞에서 한껏 웅크린 채 작아진 내 앞에 유전자가 저벅저벅 걸어와 눈높이를 맞추고 자신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었다.
이런 문과 인간에게도 비교적 알기 쉽게.
저자는 현대의 가정, 사회, 경제, 정치, 의학, 종교를 진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나 같은 쫄보가 두려움에 지레 겁먹고 도망쳐버리지 않게 아주 가까운 주변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더 큰 관점의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아 올린다.
진화의 관점이라는 것을 가진다는 자체가 내게는 생소한 일이라 책을 읽는 내내 다른 사람의 뇌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 흥미진진했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통통한 인간 아기에 대한 부분.
32p
그런데 이상한 것은 대부분의 포유류나 영장류와 달리 사람 아기는 굉장히 많은 피하지방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점이다.
몸집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과도한 지방을 축적한 상태로 태어나는 이유는 자기를 홍보하기 위함이라는 가설로 설명되는데,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을 통해 자신이 건강하며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과시함으로써 부모의 선택을 받고 살해당할 위험을 피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통통한 아기들을 보면 귀엽다고 느끼는 것 억시 건강한 아이를 선별하기 위해 진화해 온 뇌의 생물학적 반응이다.
더불어 근래 화두로 자주 떠오르는 혐오에 대해 언급된 부분도 인상 깊었다.
59-60p
이와 같이 병원의 통제하에 잘만 사용하면 약으로도 쓰일 수 있는 대변이지만, 야생 상태에 오래 방치되어 있으면 침이나 소변과 같은
다른 배설물에 비해 병원균이나 기생충이 번식하기에 휠씬 유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더욱 강한 혐오 기작이 발달했을 것이다.
이런 기피 메커니즘이 병원균에 의한 오염에서 비롯되는 각종 질병으로부터 개체를 보호하는 데 유리했기에 자연선택되어 온 것이다.
한마디로 똥이 실제로 더러운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사람으로 하여금 더럽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피성의 혐오가 사람을 대상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낯선 사람들과 수없이 마주치는 오늘날의 익명 사회와 달리, 역사의 거의 대부분 동안 인간은 자신이 속해 있는 소규모의 혈연, 지역 집단 밖에 있는 모든 이방인을 미지의 경계 대상으로 간주해야 했을 것이다.
알지 못하는 상대가 병을 옮길 가능성이 확실하지 않을 때는 안전 최우선의 진화적 전략, 즉 일단 병을 옮길 가능성을 전제하고 무조건 기피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세균, 전염병, 질병 등을 연상시키는 사진을 보고 나서 이민자나 이민정책에 대해 보다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실험 결과들은 타 인종에 대한 기피 현상이 질병을 피하기 위해 생긴 진화적 기제라는 이론을 뒷받침한다.
흥미롭지 않은가?
이건 어디까지 맛보기이다.
관심이 생겼다면 당신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당신이 알고 있던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유전자지배사회
#동아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