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소외
프리츠 파펜하임 지음 / 문예출판사 / 1978년 9월
평점 :
절판


독일 태생의 미국 사회학자, 프릿츠 파펜하임이 쓴 <현대인의 소외>라는 책은 꽤 오래 전에 읽었는데 번역 탓인지, 아니면 그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읽은 뒤 어느 구석에 쳐 박아 두었다고 최근 다시 꺼내서 꼼꼼하게 읽었다.  역시 이해하는 데 힘들었던 주 이유는 번역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오덕 선생이나 남영신 선생 같은 분들의 충고를 귀 담아 들으면서 번역을 했으면 한다.  전문 번역가가 아니라 교수들이 번역한 경우, 난독 가능성이 더 높은 걸 보면 특히나 더 그렇다.  물론 교수들이 번역한 경우, 그 전문성을 놓치지 않고 번역서에 잘 담아 놓겠지만 말이다.  

이 프릿츠 파펜하임이 쓴 <현대인의 소외 (The alienation of modern man)>은 현대 사회에서 한 인간이 소외되고 그 소외를 느끼는 원인을 마르크스와 독일 사회학자 퇴니스의 관점에서 자세히 분석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은 현대 사회에서 소외의 원인을 먼저 분석한 뒤, 그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를 다루고 있다 .  비록 이 책이 1958년에 쓰여졌고 그 분석틀로 19세기 중반에 쓰여진 마르크스의 초기 저서 <경제학 철학 초고>와 퇴니스가 1881년에  <사회학의 근본적 개념: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이 20세기말, 동구권이 몰락하고 난 지금의 "현대사회"에 적용될 것인가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내용은 현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여전히 통찰력있는 관점을 제공해 준다.  특히 저자가 이 책을 쓴 뒤 예일대에서 발표한 <미국사회에서의 소외 (1964)>라는 글과 함께 읽으면 저자의 관점을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특히, <미국사회에서의 소외>라는 글에서는 저자의 생각을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외에 대한 해답으로 사회주의라고 주장하는 것도 책과는 달리 더욱 더 적극적이다.  

서론에서 파펜하임은 고야의 <카프리초스>의 하나인 <이빨사냥>이라는 동판화에 나오는 한 여인과, 사진 콘테스트에서 입상한 한 사진 작가가 찍은 교통 사고 현장에서 죽기 일보 직전에 있는 고통에 찬 희생자의 사진을 예로 들며 소외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바는 이익 추구를 극대화하는 인간과 진정한 한 인간 사이의 간극이다.  그 사진을 찍은 사진 작가는 한 인간으로서 사진을 찍기보다는 먼저 그 사람을 구했어야 하지만 그 사진작가에 더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이 좋은 사진을 찍기에 최고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개인이 자기자신으로부터의 소외가 되는 것을 경험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론에서 저자는 현대인의 소외를 다루는 데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초고>와 퇴니스의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를 바탕으로 두고 이론적인 분석을 해 갈 것이라고 말한다.  

1장에서는 소외의 자각을 다루는데 그 소외가 무엇인가 정의하기 위하여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 (Georg Simmel)과 훗설의 현상학, 샤르트르와 하이데거 같은 실존철학자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2,3장에서 파펜하임은 현대인의 소외가 기술 과학이나 정치와 같은 현대인의 외부 조건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뒤,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이 담긴 4장에서 현대인의 소외는 사회 구조, 즉 철저하게 게젤샤프트의 성격을 띤 자본주의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상품의 사용가치 또는 고유가치 (intrinsic value)에는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고 오직 교환가치에만 두는 자본주의 체계에서 모든 관계는 내게 이익이 되는가에만 놓이게 된다.  이 경우, 우정과 같은 단어는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소외 극복으로 그 소외된 사회에서 교회나 클럽 같은 게마인샤프트에 소속되는 것은 사회구조 속에서 근본적인 치유책은 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서는 강력한 어투를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1964년에 쓴 글에서는 현대인의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회주의를 든다.  이 책이 쓰여진 시점의 미국사회와 오늘날 이땅의 현실과 비교해보면 자본주의 때문에 생겨나는 그 피폐한 부분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저자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사회주의가 이 소외를 극복하는 데 만병통치약이 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이 땅의 교육 문제, 무한경쟁으로 몰리는 사회의 모습, 곧 시행될 한미 FTA 속에서 한 인간이 더 이상 한 인격체가 아니라 사용가치가 없어지면 버려질 (expendable) 하나의 부속품 취급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 땅에서도 인간 소외의 그림자는 어둡게 드리워져 있다.  사회주의로 전환은 불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서로에 대한 연민과 유대,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연대감을 높여 한 인간이 느끼는 소외를 조금이라도 극복하려면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반드시 있어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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