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아지면 달라진다 - ‘1조 시간’을 가진 새로운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이충호 옮김 / 갤리온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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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많아지면 달라진다는 “사람은 왜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시간을 쓰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남는 시간이 연결되는 순간, 개인의 취미는 집단의 힘으로 바뀐다. 그 동인은 자율성과 유능성에서 나온다. 이 책은 그 변화의 원리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많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이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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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다는 착각 - 어른들을 위한 문해력 수업
조병영 외 지음 / EBS BOOKS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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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문해력 수업’이라는 부제를 온전히 만족한다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아쉽다. 그럼에도 우리가 문해력의 위기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우리는 읽는다고 믿지만 정작 무엇을 읽었는지 모른다. 뜻을 헤아리지 못한 채 글자만 따라가고, 행간을 보지 못하거나 보려 하지 않는다. 이해 없이 소비하고, 성찰 없이 공유한다.

어쩌면 지금은 문해력의 부족이 아니라 문해력의 부재가 드러난 시대인지도 모른다. 읽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읽는다고 믿는 사람이 많아진 시대. 그래서 더욱 ‘어른을 위한’ 문해력이 필요하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해독하는 능력이 아니다. 자신이 어떻게 읽고 쓰는지 돌아보고 그 방식을 점검하는 힘이다. 다양한 텍스트를 통과하며 자신의 생각과 삶의 태도를 기꺼이 수정하고 다듬는 태도이기도 하다.

문해력을 갖춘다는 말은 결국 어른이 된다는 뜻이다. 합리적이고 비판적으로 생각할 줄 알고, 이해와 공감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지구라는 공동체 안에서 시민으로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문해력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문해력은 어른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이다.

다음은 책에서 권하는 몇 가지.

먼저 문해력을 갖추려면 잘 읽어야 한다. 연습이 필요하다.
•꼼꼼하게 읽기: 정보 탐색, 확인, 요약
•합리적으로 생각하기: 의미 추론, 정교화, 해석
•예리하게 판단하기: 텍스트 분석, 평가, 활용

잘 읽는 데서 멈추면 부족하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온라인 글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정보 뒤에 누가 있는가
•근거는 무엇인가
•작성자는 누구인가
•전문성이 있는가
•왜 이 글을 썼는가
•다른 자료는 무엇을 말하는가

마지막으로, 책이 제안하는 ‘잘 읽고 싶은 어른을 위한 일곱 가지’다.

1
왜 읽는지 생각하자. 목적을 구체화하자.

2
읽기 전과 후의 변화를 경험하자. 배움을 위한 읽기다.

3
줄을 긋고 적고 쓰고 그려 보자. 텍스트의 쓸모를 궁리하자.
읽기는 읽기로 끝나지 않는다.

4
아는 말로 새로운 어휘를 익히자. 언어의 재료를 쌓자.

5
어렵고 귀찮아도 피하지 말자. 하나라도 제대로 읽자.

6
좋아요와 공유도 신중하자. 공유자로서 책임을 지자.

7
가려진 이름,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살피자. 다양성 사회에서의 비판적 읽기.
이 글에서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이 글에서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바쁜 사람은 책머리만 읽어도 좋다.
첫 번째와 마지막 다섯 번째만 적어본다, 나머지는 꼭 읽어 보시길.

첫 번째.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읽어야 하고, 또 잘 읽어야 할까?

이 책이 보여주는 모든 것, 읽어야 할 모든 것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다섯 번째로.
언제나 지금 바로 여기서 제대로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그래서 먼저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어쩌면 너무 익숙해서 무뎌진, ‘읽지 않았지만 읽었다는 착각’의 경험을 상기시킨다. 특히, 어른의 문해력(literacy)에 주목하면서 생활의 읽기, 일의 읽기, 소통의 읽기를 다룬다. 사소한 일상의 읽기 경험에 내포된 세밀한 의미 구성의 과정을 열심히 소개하고 안내한다. 읽었다는 착각이 가로막은 제대로 된 읽기의 개인적, 공동체적 의미와 가치도 때때로 넌지시 포갠다. 그래서 섣부른 행동의 읽기보다는 친절한 의식성의 읽기에 관심 두는 모든 이들에게 드리는 일종의 워크북이다.

워크북은 해답지가 아니며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알려주는 수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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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인터뷰하다 - 삶의 끝을 응시하며 인생의 의미를 묻는 시간
박산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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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두려움은 대개 죽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다가올 그 순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요양보호사, 장례지도사, 펫로스 상담사, 신부, 호스피스 의사, 삶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다섯 사람의 문답을 엮은 기록이다.
‘죽음의 현장’을 오래 바라본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상실과 이별을 다시 생각한다. 모두 삶의 끝을 응시하며 인생의 의미를 묻는다.

죽음은 우리가 반드시 마주할 유일한 진실이다.
대통령도 죽고, 부자도 죽고, 결핍을 가진 사람도 죽는다.
한국 사람도, 미국 사람도, 중국 사람도 죽는다.
세상에서 겪는 일은 제각각이지만 죽음만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아이러니하다. 가장 두려운 대상이기에 더 역설적이다.
그러나 끝이 있기에 선택은 절박해지고, 유한하기에 오늘은 소중해진다.
시간이 무한하다면 우리는 미루지 않을 이유조차 찾지 못할지 모른다.
끝이 있기에 오늘을 붙잡는다.
유한함이 삶을 긴장시키는 힘이다.
죽음이 있기에 함께하는 시간이 깊어진다.

죽음에는 세 얼굴이 있다.
당하는 죽음, 받아들이는 죽음, 맞이하는 죽음.

그중 가장 바라는 모습은 맞이하는 죽음이다.
죽음은 살아 있을 때 자주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태도 속에서 비로소 잘 죽을 수 있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준비는 결국 오늘의 몫이다.

잘 산 사람이 잘 죽는다.
치열하게 산 사람은 단단하게 마무리한다.
흐릿하게 산 삶은 마지막 또한 흐릿하다.
좋은 삶은 고통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외면하지 않았다는 뜻에 가깝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삶 다음에 곧바로 죽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삶과 죽음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인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공존하는 것.

어떻게 인간답게 살 것인가.
어떻게 인간답게 죽을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의 다양한 얼굴을 마주하며 생의 의미를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그 자유의 끝이 해피엔딩이기를.

저자의 바람과는 다르게
결코 해피앤딩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해피앤딩이고 싶다.

—『죽음을 인터뷰하다 (삶의 끝을 응시하며 인생의 의미를 묻는 시간)』, 박산호, 샘앤파커스

덧_
해피엔딩…
어디서 들었는지, 보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한참을 생각했다.

맞다. 미스터 썬사인.

누가 제일 슬플지는 의미 없었다.
인생 다 각자 걷고 있지만 결국 같은 곳에 다다를 우리였다.
우리가 도착할 종착지는 영광과 새드엔딩 그 어디쯤일까.
그대를 사랑한다. 그러니 그대여, 살아남아라.
하여, 누구의 결말도 해피엔딩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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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 안내서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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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가르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안다. 시인은 학교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화가나 음악가처럼 시인도 어떤 본질을 타고난다. 그것은 분해해 설명할 수도, 다음 사람에게 조립해 건네줄 수도 없다. 거의 신비에 가깝다.

그렇다고 배움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본질은 가르칠 수 없지만, 시인이 되기 위해 익혀야 할 영역은 끝이 없다. 역사와 이론, 다른 시인의 언어. 타고난 불씨가 있다면 독서는 그 불을 키우는 산소다.

창작 교실에서 스스로 과제를 정하라고 하면 많은 학생이 다른 시를 읽기보다 자기 작품을 쓰는 데 시간을 쏟는다.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시인은 이미 충분히 많다. 그러나 잘 쓰려면 먼저 깊이 읽어야 한다. 좋은 시는 최고의 스승이다. 어쩌면 유일한 스승일지도 모른다. 읽기와 창작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읽기를 권하겠다.

자칭 현대적인 작품 상당수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서 출발한다. 이미 사랑받은 형식을 모방해 만들어진다. 그 안에서는 새로운 것이 좀처럼 태어나지 않는다. 진정 현대적인 작품은 화산처럼 과거를 뚫고 솟아오른다. 깊은 사유에서 생성된 열기만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낳는다.

우리는 모방을 부끄러워하지만, 모방 없이 배우는 길은 없다. 아이가 말을 배우듯 시인도 먼저 따라 쓴다. 리듬을 흉내 내고 문장을 빌리며 구조를 반복한다. 그 반복 속에서 미세한 어긋남이 생긴다. 그 차이가 자기 목소리다. 감정의 자유와 진정성, 독창성은 출발점이 아니라 도착점이다. 인내와 성실, 그리고 영감이 함께 닿아야 만나는 자리다.

시는 행으로 이루어진다. 어디에서 끊을 것인가. 행갈이는 단순한 배열이 아니라 의미를 만드는 선택이다. 문장이 이어지는 지점에서 끊으면 독자의 호흡이 흔들린다. 그 흔들림이 긴장을 만든다. 시인은 평생 이 문제를 붙든다.

처음 쓴 글이 완성에 가깝기를 기대하는 일은 순진하다. 초고는 언제나 미완성이다. 더 어려운 일은 자신과 시를 분리하는 태도다. 경험이 생생할수록 시는 오히려 흐려진다. 시는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경험 그 자체는 아니다. 사실을 변형하는 용기, 더 큰 진실을 향한 선택이 필요하다.

고쳐 쓰기는 끝이 없다. 그러나 배움은 그 과정에서 일어난다. 아름다움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시는 끝내 살아남지 못한다. 그것 또한 수업이다.

시는 언어유희가 아니다. 기교를 넘어 어떤 시선과 사유를 담는다. 연민과 호기심, 분노와 음악적 감각. 그런 감수성이 시를 가능하게 한다. 시는 삶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이며 하나의 비전이다.

결국 시는 단어의 집합이 아니다. 추위 속의 불, 길 잃은 사람에게 내려진 밧줄, 굶주린 주머니 속 빵과 같다. 평소에는 장식처럼 보일지 몰라도 절박한 순간에는 생존과 다르지 않다.

시가 강이라면 기술과 노력은 그 바닥이다. 바닥이 단단해야 물이 흐른다. 시 짓기는 사랑과 닮았다. 약속하고 기다리는 일이다. 책상 앞에 앉아 준비된 마음으로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어느 순간 시가 다가온다.

시는 타고나는지 모른다. 그러나 시인이 되는 과정은 읽기와 모방, 인내와 고쳐 쓰기, 그리고 기다림을 통과하는 긴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시간 끝에서 한 줄이 태어난다.

—『시 쓰기 안내서』, 메리 올리버,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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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일주 쥘 베른 베스트 컬렉션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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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용 도서로 오해받는 대표적인 고전이다. 우리는 제목 정도는 익히 알고 있지만 정작 읽어본 기억은 희미하다. 어쩌면 영화로 먼저 만났을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얼개는 단순하다. 멋진 신사 포그, 약간 우둔하지만 충직한 하인 파스파르투, 우연처럼 등장하는 여인 아우다, 그리고 그들을 뒤쫓으며 위기를 만들어내는 무능한 경찰 픽스. 이 네 인물이 위기와 모험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런던으로 돌아온다. 세계일주는 당연히 80일 만에 성공한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여행하도록 하여 마지막 하루를 만들어내는 반전은 작가의 풍부한 지식과 계산에서 나온 장치다. 물론 치밀한 포그라면 이런 착각을 했을 리 없지만, 독자를 위한 장치라고 이해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포그는 런던 중심가 상류층 사교모임인 개혁클럽의 회원이다. 돈도 있고 체면을 명예처럼 여기는 영국 신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1872년 가을, 이 클럽에서 사소한 논쟁이 벌어진다. 영국은행에서 발생한 5만5천 파운드 도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도둑이 이미 먼 나라로 도망쳤을 것이라는 의견과, 이제는 교통이 발달해 오히려 잡기 쉬워졌다는 의견이 맞섰다.

“아무리 세계일주라 해도 세 달은 걸리겠지.”
누군가 이렇게 말하자 한 신사가 정색하며 대답한다.
“80일이면 됩니다.”
이 한마디로 포그의 세계일주가 시작된다.
“원한다면 내기를 하죠. 2만 파운드를 걸겠습니다.”
출발은 언제냐는 질문에 그는 말한다.
“오늘 당장 떠나죠.”

포그는 숫자와 시간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하루 일과는 분 단위로 정해져 있고, 물의 온도도 일정한 수치만 사용한다. 심지어 클럽까지 걸어가는 발걸음 수까지 계산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늘 같은 장소만 오가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세계지도가 들어 있다. 세상을 떠돌아본 적은 없어도 지리에는 누구보다 정통한 괴짜다.

포그의 세계일주가 가능했던 이유는 소설 속 상상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2~3년 전 세계 곳곳에서 거대한 교통 인프라가 완성됐다. 1869년 미국 대륙 횡단철도, 같은 해 개통된 수에즈 운하, 1870년 완공된 인도 반도 철도다. 쥘 베른은 이 새로운 교통망을 이용해 런던에서 출발해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아오는 80일 여행을 설계했다. 소설이면서도 철저히 현실 위에 세운 상상이다.

이 소설은 공간을 가로지르는 여행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간을 계산하는 이야기다. 포그가 집착하는 대상도 거리보다 시간이다. 마지막 반전, 하루를 앞서가는 장치 역시 지구 자전과 시간 계산에서 비롯된다. 세상이 좁아졌다는 말보다, 세상이 빨라졌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왜 영국인을 주인공으로 삼았는지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당시 세계 질서와 관련이 있다. 19세기 후반 세계의 교통과 금융의 중심은 런던이었다. 해운과 철도, 무역 네트워크가 이 도시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세계일주라는 설정을 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영국 신사가 가장 자연스러운 인물이었을 것이다.

소설이 쓰인 시기 영국은 지구 곳곳에 식민지와 항로를 가진 제국이었다. 인도, 홍콩, 요코하마, 미국 등 주요 경로가 모두 영국의 교통망과 연결되어 있었다. 영국인을 주인공으로 두면 이런 세계 네트워크를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다. 결국 이 소설은 단순한 모험 이야기가 아니라 19세기 영국 중심의 세계 시스템 위에서 작동하는 이야기다. 프랑스 작가가 영국 신사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꽤 계산된 선택이었다.

쥘 베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팬덤을 가진 작가다. 미국과 유럽에는 그의 세계를 추종하는 ‘베르니안’이 있다. 베르니안은 쥘 베른의 이름에서 나온 말로,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미지의 세계가 실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을 가리킨다. 지구 내부 세계를 과학적으로 탐구하거나 소설 속 장소를 찾아 탐험을 떠나는 이도 있다.

이 책에는 여러 장점이 있지만 읽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지점도 있다. 아시아 여러 나라를 미개한 지역처럼 묘사하는 부분이다. 생활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미개한 민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당시 서양인이 가진 편견이 그대로 드러난다. 물론 이런 한계가 있다고 해서 작품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전을 읽을 때 우리가 함께 바라봐야 할 그림자이기도 하다.

쥘 베른의 작품 제목을 나열해 보면 그는 마치 미래에서 온 사람처럼 느껴진다. 순수한 상상만으로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의 작품을 모두 읽어보고 싶지만 이미 절판된 책도 많다. 더 아쉬운 점은 쥘 베른의 작품이 여전히 아동용 공상과학 소설 정도로 취급된다는 현실이다.

번역자 김석희 선생의 말은 이런 현실을 정확히 짚는다.

“고전, 고전하는데 재미없는 고전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재미있는 것을 읽게 만들어야지요. 서울대에서 추천하는 고전 목록을 보면 기가 차요. 선생들이 자기 전공만 추천하지요. 제가 번역한 『해저 2만 리』 같은 작품은 대학에서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그걸 아동도서라고 하니 천만의 말씀이지요.”

대학에서 밥벌이하는 사람이 어떤 책을 고전이라 부르는지 생각하게 된다. 동시에 고전은 결국 재미있어야 한다는 말에도 공감하게 된다.
재미없는 고전은 고전이 아니라 단지 오래된 책일 뿐이다.

—80일간의 세계일주, 쥘 베른, 김석희 옮김,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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