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와 인간
존 스타인벡 지음, 안의정 옮김 / 맑은소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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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인가... <거위의 꿈>이란 노래가 처음으로 나왔었다. 물론 지금도 불리고 사랑받는 노래이다. 자신의 꿈을 세상의 역경을 이기고 만들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것이 이 노래의 대략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당시 한 친구가 이 노래를 듣더니 거위는 날 수 없는데 날고자 하는 꿈은 헛된 것이기에 그런 꿈은 포기해야하는 쪽으로 해석을 하는 것이었다. 잘못된 아니 평범하지 않은 해석이지만, 이 책을 덮은 방금 거위의 꿈에 대한 그 색다른(?) 해석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두 주인공 조지와 래니는 당시의 노동자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현재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수한 작은 꿈, 현실에서 버티기 위해서 영악해 질 수 밖에 없는 모습. 모든 노동자들은 이 두가지 모습을 다 가지고 있다. 래니와 조지가 결코 떨어질 없는 이유는 둘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꿈은 사람이 살아 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미래에 대한 그림, 장밋빛은 아니지만 다소 밝은 희망이 없다면 살아갈 이유는 없어 질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희망을 너무도 짓밟고 있다. 약자는 악의를 전혀가지고 있지 않지만 존재자체가 잘못인 것처럼 세상이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은 꿈은 마치 거위가 날고자하는 것과 같은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차라리 꿈을 꾸지 않는다. 자신의 미래가 아니라 자식의 미래를 더 챙기고자 하게 되버린 것이다. 

마지막에 조지가 래니를 죽이는 것도 어쩌면 그런 현실을 묘사한 듯하다. 결국은 살기위해서 꿈을 버리는 것이다. 늘 화가 나있는 상태로, 늘 우울한 상태로 살기위해서...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그것이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그녀석이 하도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해서 이야기를 해주다가 나도 차츰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거지.......한 달 일해서 50달러를 받으면 색시집에나 가야겠어. 아니면 노름판에나 끼어 들어 끝장을 보던지.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한 달을 일하면 또 50달러가 생기겠지." 

잘 모르겠다. 책을 보고 이런 느낌을 받는 경우는 많이 없지만... 어쨌든 많은 생각과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살기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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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 O.S.T.
여러 아티스트 (Various Artists)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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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아무것도 모른체 봤다고 해야하나.. 영화의 배경이 아일랜드인것도 몰랐고, 정말 이렇게 노래만 계속 나오는 것도 몰랐다. 의례생각하듯 그냥 로멘틱무비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봤다. 음악이 '좀' 많이 나오는...

하지만 완전 나의 착각이었다. 작은 이야기라면 작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너무 큰 내용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가진 생각은 영화가 보여주는 것이었다. 영화는 두 남녀주인공의 삶을 너무도 진솔하게 보여주었다. 보통의 대중영화가 자지고 있는 자본주의의 화려함 혹은 더럽고 추함으로 제작된 소재가 아닌 정말 소소한 삶을 내가 느끼게 해준 것이었다. 마치 오래된 옛날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동경하는 미래의 삶일 것 같기도 한 그림이었다. 아마도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에- 언제나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만 담은 대중매체에 둘러싸인 내가 혹은 우리가 보기에- 현실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고 생각된다. 좁디좁은 방과 소규모 상점들, 버스와 등장인물들의 옷차림등에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었기에 그들이 만들고 부르는 노래가 더 우리의 맘에 약간의 충격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두번째 당연히 음악일 것이다. 평소에 영화음악을 즐겨듣는 나에게 있어서 이들이 부르는 음악은 형용하기 힘들정도로 너무 훌륭했다. 노래는 들려지기 위해서 부른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물론 노래가 없는 음악도 마찬가지의 이유때문에 연주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그렇게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들어주는 사람이 듣고 싶은 노래와 음악을 하는 것이아니라 내가 부르고 싶은 것을 부르고 연주하고 싶은 것을 연주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되었다. 그들의 삶과 마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과 마음을 최대한 담아내면 그것이 훌륭한 음악이 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음악들은 주인공들의 삶과 사랑을 표현하는 너무도 훌륭한 도구였다. 버스에서 자신의 '망할' 이야기를 부를 때, 옛연인의 동영상을 보면서 'lie'를 부르짓을 때,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피아노연주를 하고 흐느낄 때 장면 곳곳에서 노래를 통한 감정의 분출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받았던 것은 내 삶에 대한 돌아봄이다. 많은 영화가 그렇긴 하지만 사람은 타인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는 보다 폭넒은 만남을 제공할 수 있는 수단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러한 만남보다 동경과 강제라는 이데올로기적 요소가 더 강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러게 생각해서인지 너무도 오래간만에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영화였다. 꿈은 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열정은 왠지 식어버린 듯한 모습과, 사랑과 삶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어리석음, 외롭고 우울함에서 허덕이기만 하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의지도 상실해버린 현재...

어쨌든 너무 좋은 영화를 한편 보고 말았다. 너무 천천히 빠져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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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노 리포트 - 21세기 자본주의의 유지 방안
수전 조지 지음, 이대훈 옮김 / 당대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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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파괴된다. 기업에게 나무는 단지 가구를 만드는 재료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공황이 발생하면 기업은 가장먼저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몰아내고 심지어는 생산수단이나 생산물을 파괴한다. 그리고 전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에서, 이스라엘에서, 자본주의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못했는가? 글쎄... 아니다. 자본주의(혹은 자본가)는 그 최고의 목적-이윤-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왔고, 지금도 이윤을 생산하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나무를 쓰러뜨리고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몰고, 미사일로 사람을 마구마구 죽이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밝힌데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윤창출이라는 목적이 세상의 원동력이고 모든 그림의 바탕이다. 당신은 위의 사실들이 가슴아프다 하더라도 자본주의가 지속되길 원한다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인정하기 힘들정도로 파멸의 한계라면 자본주의는 다시한번 역사의 시험대에 서야한는 것이고, 그 시점은 바로 지금이다.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루가노 리포트」는 소제목 그대로 '21세기 자본주의의 유지방안'이다.

「루가노 리포트」가 자본주의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하는 것은 인구의 폭발이다. 무분별한 인구의 증가를 막고 적정한 인구의 수준을 유지한는 것만이 자본주의의 아니 인류의 유일한 생존방법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책의 2/3이상을 이 방안에 대해서 자세히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안이라고 제시된 것이 무엇인가? 전쟁, 기아, 전염병, 그리고 생체정치이다.-소극적인 방법인 피임과 불임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무척이나 궁금한데 있는 놈들은 "오~!"라고 감탄했을 듯하고, 없는 분들은 "이런 XX"하며 욕을 했을 듯하다. 하지만 감탄도 욕도 필요없다. 나는 가장 객관적이고 가장 냉정한-현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하는 목적아래- 방안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분쟁지역에서 50명의 인명을 구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생생하게 담게되면, 이것은 그 이면에 있는 5만 명이 제거될 수 있는 상황을 가려주는 커튼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적인 행동, 인도주의적 투쟁은 체제의 존속이라는 목적아래에서 수행되고 이용해야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인 것이다. 태러가 일어나고 전쟁이 터져서 얼마가 죽든-아마도 많은 인명피해를 기대할거라 생각됨- 기아와 전염병으로 제3세계 아이들의 시체가 거리에 얼마나 뒹구는가는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 효과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논리적이고 명쾌하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아이러니 한 점이 있다면 「루가노 리포트」는 끊임없이 최대한의 자유방임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자유 방임의 중심에는 가장 안정적으로 그 자유를 유지시킬 수 있는 통제의 힘을 요구한다는 것에서 이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체정치를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 통제와 지배이다.

그 통제의 힘은 어떤 것인가? 책의 내용을 빌려이야기하면 [...시민권의 개념이 재정립되어야 하며, 쉽게 조작할 수 있는 쌍방향적 네트워크들을 100%활용하여 대중들에게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어야 한다...정치통제의 도구들은 통제대상인 시민들의 시야에 가급적이면 드러나지 말아야한다...] 개인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완벽한 생체사회로써 전체의 개념만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직전에 읽었던 책이 예브게니 자바찐의 「우리들」 이라는게 마치 필연처럼 느껴진다. 「루가노 리포트」는 「우리들」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분" 이나 「1984년」에서 나오는 "Big Brother"의 존재, 통제가 우리의 미래가 될 수 도 있다는 아니 되어야 한다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무지막지하게 태어나고 있는 베이비에 압박을 받고 있는 자본주의를 구하고 지속가능하게 만들 너무도 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분석한 것이 어쩌면 자본주의에 대한 사형선고를 해버린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새로운 해답을 찾고자 한다: 사람들이 왜 계속 아이를 만들어낼까? 말했듯이 투자이기 때문이다. 분명하게도 자본주의 체제에서 우수한 아이를 만들어내면 생활의 수준의 바뀌기 때문이다. 책에서 말했듯이 아이는 복권이다. 로또100장사는 사람이 로또1장사는 사람보다 당첨의 확률이 높은 것은 말하나 마나다.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인구의 폭발이 문제의 근원이라면 무진장 늘어나는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Big Brother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자식이 나의 로또가 안되는 것이다. 여기에 인구폭발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고 모든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하지만 분명히 할 것은 이 문제를 인도주의적 감성주의적으로 풀수있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루가노 리포트」보다 더 논리적이고 냉정하게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답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도 욕도 할 필요없다.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며 미래를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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