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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집 - 상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0월
평점 :
* 외딴집(원제는 고숙孤宿의 인人,인데 국내에서는 좀 그런 제목이다. 아니면 출판사에서 기시 유스케의 '검은집'을 의식했을지도..ㅡㅡ;;ㅋ)은 출간이 되자 마자 읽고 싶어 안달이 났던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 미스터리 소설이다. 시대 미스터리 소설에서 이 '시대'는 대부분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이 시대를 배경으로는 역사소설이나, 게임, 추리문학 등은 일본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미야베 미유키에 따르면, 그녀가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이유는 바로 '에도 시대는 쉽게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시대였기 때문에 같이 사는 사람들의 연대감이 매우 강했다. 그때는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던 시대였다. 그렇게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때문에 나는 이소설을 쓴다'라고 말한다. 책의 맨 앞머리 작가소개에 있는 이 문구를 보고 겨울추위에 얼어있던 가슴이 훈훈해졌는지... 미야베 미유키는 역시 마음이 정말 멋진 작가라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미야베 미유키는 현대 추리물 이외에도 다양한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썼는데, 조만간 소개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의 고향인 후카가와(深川)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물도 있다는 점인데 이 작품도 꽤나 재미있을 듯.
* 앞에서도 말했듯이 에도 시대는 사람들이 살아가던 응집력이 매우 강하고 끈끈한 정이 살아있던 시대였다. 이 작품에서도 작가의 그러한 지향점은 집요하게 드러나는데, 주인공인 아홉 살 짜리 소녀인 '호'와 자유를 꿈꾸는 열일곱 살짜리 (청)소녀인 '우사'와의 끈끈하면서도 다정다감한 모습과 슬픈 최후를 통해 미야베 미유키는 동양적인 자기 희생의 드라마를 펼쳐내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굳어 있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따뜻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다채로운 재능의 단면을 매우 잘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기리노 나쓰오도 다양한 재능이 가득차 있는 책상을 하나 가지고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미야베 미유키도 다양한 재능이 가진 책상을 가진 사람인 듯.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나오키 상 수상작인 '이유'나 '화차', '이름없는 독'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지만, 이 작품 또한 그에 못지 않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이 작품에 나오는 다양한 신분의 인간군상들이 치밀하게 관계를 주고 받으며 결말을 향해 달려나가는 섬세한 구성은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돋보이는 부분이다.
* 전통적인 추리소설로서 이 작품의 재미나 트릭, 수준은 어떠한가. 아쉽지만 섬세하고 치밀하게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여 이 작품은 그 품질(?)이 약간은 떨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의문사도 있다. 연속살인으로 추정되는 독살도 있다. 하지만 치밀한 트릭도 아니거니와 작품 주제와의 연관성도 크게 부족하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지금의 다양한 작가들이 지향하는 '두뇌싸움'없는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한 유형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다양한 인간군상들과 그들이 가져다주는 애증과 희노애락을 통하여 진실한 인간의 면모와 우리 인간의 가지고 지향해야 할 진정한 의미를 속삭이듯이 말해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미야베 미유키 목소리는 작고, 조용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고나서 느끼게 되는 가슴속의 울림은 크고도 깊었다.
* 이 작품은 시대 미스터리 소설이다. 그러나 시대 미스터리 소설답지 않게, 이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현대적이고, 현실적이다. 감정 표현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이 작품에 나오는 '우사'는 지금의 당찬 여고생을 보는 것 같다. 또 다른 주인공인 '호'는 다소 전통적이지만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귀여운 여자아이를 보는 것만 같았고.. 그 외에도 당대의 관념이나 미신에 사로잡혀 공포의 대상이 되는 '가가님', 의사가문, 공포와 악령에 사로잡힌 쇼군, 사랑에 갈등하는 신분 높은 아가씨, 먹고 살 길을 잃어버려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힌 주민들 등등,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작가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담담하지만, 이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것 또한 없지 않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느끼는 근본적인 고독과 담담한 절망, 사랑에의 갈망이다.
* 이 작품의 결말은 다소 화끈(?)하다. 장미의 이름에서 볼 수 있는 결말이 다소 허탈하고 지성의 공허함을 독자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결말은 새롭고 힘찬 재생과 시작을 알리는 듯 했다. 하지만 슬펐다. 하지만 다음의 이야기가 기대되는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런 슬픔이었다. 지극한 슬픔 속에서도 삶의 또다른 희망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 이야기는, 작가의 탁월한 작풍과 감성이 대단히 잘 어우러진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