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살인사건
아시베 다쿠 지음, 김시덕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홍루몽 살인사건 : 원제 - 홍루몽의 살인>은 홍루몽의 팬이자 추리소설의 팬으로서 참으로 오랫동안 기다려온 작품이었다. 그동안 출간이 몇달 동안 미루어져 애간장이 타는 듯한(ㅋㅋ) 고통을 누렸으나 마침내 이 책을 어제 받아들고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이 소설은 중국 최고의 고전 소설인 <홍루몽>을 근간으로 하는 극중극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홍루몽의 내용을 모르는 분들이시라면 개인적으로 꽤 읽기가 힘드실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홍루몽을 완독한 본인으로서는 이 작품을 읽어나가는 재미에 넋을 잃었지만 말이다. 중국 최고의 고전 소설을 틀로 하여 본격 추리의 재미와 인간 심리의 본연을 가미시킨 이 작품은 가히 대작이라 할만하다. 소설의 전개와 트릭의 전개 및 등장인물들은 고전 정통 추리소설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약간은 허술하고 허무한 듯한 부분도 없지않아, 이 소설을 다 읽고서 2프로, 약간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찍었던 범인이 아니어서 약간은 놀랐지만서도, 치밀한 작가의 구성에서는 약간의 불공평함과 황당함이 느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해설 부분에서도 작가는 <비겁함을 무릅쓰고서라도 범인을 맞추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설명하였는데, 과연,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작가 요코미조 세이시의 모 작품과도 이 작품은 닮은 구성이 있다. 그래서일까, 반전의 맛이 약간은 덜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물론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을 전혀 읽지 않으신 분이라면 이 작품의 환상적이고 몽환적이며 화려한 이미지를 겸한 본격 추리물의 정수를 이 작품에서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본격 추리물로서 이 작품의 일급의 작품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중국 4대 기서의 평가를 뛰어넘는 <홍루몽>의 맛배기 버전과 등장인물들과의 간략한 만남은 추가로 제공되는 보너스다. 그만큼 이 작품에서는 홍루몽의 원작이 간략하고도 자세하게 잘 묘사되어 있으며, 원작의 주요 사건들과 살인사건들이 자연스레 얽혀, 추리문학이 추구하는 살인이라는 이질감이 어느 정도 제거되고, 홍루몽의 원작자 조설근과 마찬가지로 인간 심리에 대한 부분을 작가인 아시베 다쿠가 섬세하고 묘연하게 서술함으로써 그 읽는 재미를 더하는 것 같다.

원작 <홍루몽>의 배경과 마찬가지로 <홍루몽 살인사건>의 주요 배경은 주요 등장인물인 가보옥의 가문 대저택에 딸린 대관원이라는 호중천(壺中天), 별세계이다. 이 세계에서는 진보적인 페미니스트인 가보옥이 그 소우주를 관장하고 있으며, 가보옥이 사랑하는 섬세하고 가녀린 여주인공인 임대옥, 그리고 씩씩하고 아름다운 또 다른 여주인공인 설보채가 등장하며. 보옥, 대옥, 보채 세 사람은 사랑과 증오의 삼각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가씨네 자매인 세 사람(영춘, 탐춘, 석춘)과 사씨 가문의 일원인 사상운, 수많은 하인들과 하녀, 그리고 여승인 묘옥 등이 거주하면서 언젠가는 무너지게 될 유토피아에서 각기 사랑과 감성이 가득찬 인생을 키워나가게 된다. 그러나 누대에 걸쳐 부귀영화를 누리던 가씨 가문도 서서히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부패귀족인 가사와 가정, 그리고 서서히 흘러나가는 금전들, 부귀 영화의 절정에서 서서히 스러저가는 각종 징후들.. <홍루몽 살인사건>에서 다루는 첫 부분은 귀비가 된 가씨 자매인 원춘의 대관원 방문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화려함의 절정과 부귀영화의 극치에서 어느 정도 허무함을 느끼게 되는 귀비인 원춘은 보옥을 비롯한 여러 자매들에게 영국부가 아닌 대관원에서 거처하며 인생을 즐기라는 명을 내리고, 대관원으로 보옥과 대옥 등의 자매들은 이주하여 그 광범위한 호중천에서 각기 거처를 정하고, 시사를 정하게 된다. 이렇게 스토리가 무리없이 진행되면서 잘 나가는가 싶더니 연속 살인을 암시하는 메시지가 담긴 쪽지가 가씨 가문을 후원하는 북정왕이라는 황족에게 전해지게 되고, 북정왕은 이 일은 근심하면서 가씨 가문의 하인 출신인 현감 뇌상영(모두 원작 홍루몽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이 일을 예의주시하며 조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자매 중의 하나인 영춘이 개울 근처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영춘은 몹시 이지적이고 극히 조용한 성격이었다. 도대체 누가 영춘을 죽인 것일까? 영춘이 죽을 당시 모든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있었고, 죽은 영춘의 몸에서는 꽃향기가 가득하다. 동기와 범인은 절대 미궁의 상태. 작가는 대단히 성공적으로 동기를 가리는데 성공한다. 끝에서 나타나는 범행동기와 트릭에서는 약간의 무리와 황당함이 보이지만 대단한 전개를 작가는 보여준다. 이 살인사건을 맡게 되는 형사의 뇌상영은 범행의 불가능과 동기의 불순성을 계속 의심하지만, 범인은 전혀 알아 낼 수가 없다. 여기서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것이 바로 아마추어 탐정인 가보옥의 등장이다. 공안소설이나 법의학소설을 탐독하는 것으로 되어있는 설정이 참으로 재미있거니와, 보옥은 다양한 가설과 논리적 추리로 뇌상영을 능가하는 추리실력을 보여준다. 이 두사람의 추리(보옥의 몽환적 추리와 뇌상영의 현실적 추리)를 대조해보는 것도 흥미진진하거니와, 홍루몽의 남자 주인공은 보옥이 탐정으로 나온다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었던 설정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두번째 살인이 벌어지게 되는데 두 번째 피해자는 바로 집안의 왈패이자 실세인 왕희봉이었다. 또한 희봉의 하녀 평아는 밀실(??@!)에서 묶인 채로 발견되고, 희봉도 괴기한 죽음을 당한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이 살인은 귀신이나 도적의 소행으로 간주하고, 두려움에 떨게 된다. 평아가 갇히게 된 밀실트릭도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결말에 밝혀지는 이 트릭은 약간은 허무하기까지한 밀실트릭이었다. 그리고 활달한 여주인공인 사상운과, 연이은 하녀들의 죽음, 그리고 작품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주인공 가보옥의 결혼과 결혼식에 얽힌 또 다른 참혹한 살인과 놀라운 결말이 이 작품의 끝을 장식한다.

<홍루몽 살인사건>은 극중극의 정수를 보여주는 화려하고 놀라운 작품이다. 홍루몽의 팬이자 추리소설의 팬이라서 가지게 되는 콩깍지를 어찌할 수는 없지만서도, 단순한 고전소설을 추리소설로 개조하여 새로운 신천지를 창조해 낼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갖게 해주는 대단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며, 고전의 창조적 해석과 원작에서는 그다지 느낄 수 없는 인간들의 끝없는 탐욕과 음심, 이상심리와 대반전까지 포함시킨 색다른 미스터리의 풍미를 이 작품에서는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홍루몽 팬인 홍미(紅迷)라면, 이 작품을 꼭 읽기 바란다. 색다른 작품 읽기의 묘미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뒤에 실린 방대한 분량의 작품 주석과 작가 해설, 인터뷰, 역자 해설 등 또한 알짜배기 자료였다. 아시베 다쿠는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아 그의 작품 세계를 잘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독서도와 취향등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으며, 특히 요코미조 세이시에 대한 언급과 형사 콜롬보를 보고 지적으로 감동받았다는 내용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여하튼 <홍루몽 살인사건>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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