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 두 번째 방문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0
이종호 외 8인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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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에서부터 시작한 미국의 공포 문학은 지금의 대가인 스티븐 킹에 이르기까지 그 화려한 꽃을 피워왔다. 한국의 공포 문학은 기존의 추리 문학과 마찬가지로,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걸음마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단편집을 보고 잘 알 수 있었다. 매년 한 두권씩 나오는 한국추리소설작가들의 조잡하거나 다소 미흡한 작품성을 지닌 추리단편들과는 다르게, 이 작품집에 실린 모든 작품들은 버릴 작품이 하나도 없는 참으로 보석 같은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우리의 정서와 입맛, 우리의 사회현실과 인간심리를 여실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의 장편이나 단편들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오래전에 보았던 전설의 고향 못지 않은 무시무시한 공포와 오싹한 느낌을 이 작품집에서 만끽할 수 있었다. <이프>의 이종호 씨외에도, 김종일, 홍일점인 김미리 등을 포함한 재기발랄한 신인들이 가득한 이 단편집에서는 언젠가 화려하게 그 꽃을 피울 한국 공포 문학의 파릇파릇한 새싹이 보이는 듯하여 또한 감개가 무량하기도 했다. 언젠가 이들 중에서 한국의 스티븐 킹, 이토 준지 등이 나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첫번째 작품인 <벽>에서는 겹경사가 겹친 한 주부가 주인공이 된다. 온갖 고생 끝에 임신과 재력, 자기집을 한 손에 넣는 여주인공. 그러나 이사를 오는 길에 만난 기분나쁜 윗집의 아줌마와 윗집 아이들을 보고 그녀는 적잖은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연이어 벌어지는 윗집의 기분나쁜 도발 - 끝없이 쿵쿵거리는 발소리 -에 그녀와 남편은 분개하며 윗집 사람들에게 항의하지만 윗집은 그 이야기를 비웃으며 옆귀로 흘려 듣는다. 그리고 연이어 터지는 각종 사물들의 실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결말 부분에 작가는 무시무시한 반전과 장치를 준비해 놓는다.

두번째 작품인 <캠코더>는 병원 괴담이라 할 수 있는데 캠코더에 찍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가는 내용이다. 병원 의사인 주인공은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아이가 찍고 다니는 캠코더에 지극한 불안감과 공포를 느끼고, 그 아이에게 비정상적인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그 아이가 죽은 뒤에 그 캠코더를 샅샅이 조사하기에 이른다. 절정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공포는 이 작품에 존재하지 않지만, 정상과 비정상의 뒤집힘이라는 요소를 작가는 이 작품에서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길 위의 여자>도 멋진 작품이다. 우연히 여자의 차를 얻어 타게 된 남주인공은 무시무시한 괴물을 만나게 되고, 괴물과의 끔찍한 사투를 벌이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광기 어린 여자의 사람들에 대한 복수와, 모성 신화를 결합한 것을 알 수 있다. 여느 재난, 공포영화 못지 않는 생명을 건 사투와 죽음을 이 작품에서는 만끽할 수 있었다.

<드림 머신>은 <기묘한 이야기>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앞부분은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뒷부분은 섬뜩한 그런 작품이다. 여자 작가답게 알콩달콩하고 달콤한 단어와 문체를 쓴 것이 재미있었고, 마지막의 결말은 약간 섬뜩했다. 점진적인 단계를 밟아나가는 공포와 절정의 부분이 작품에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통증>도 한 편의 괴기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단편이었다. 아내가 실종되면서 겪는 남편의 무시무시한 통증에 대한 이야기이다. 실제 영상화하면 참으로 끔찍할 듯한 작품인데, 문자로 만끽할 수 있는 그 공포의 중량감이란... 이 작품 또한 대단한 작품이었다. 뒷부분에 제시되는 (범인에 대한)반전은 전형적이고, 초현실적인 공포를 보여주는 반전은 섬뜩함이 있어 좋았다.

<레드 크리스마스>는 빈부격차와 사회분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회파(?) 공포 소설이다.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부모밑에서 자란 돼지같은 아이들이 선량한 아이들과 동물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분개하는 노인. 성탄절 밤, 죽음을 선물하는 산타 할아버지가 방문한다. <처키의 인형???> 시리즈를 능가하는 공포와 인간의 분노, 그리고 부모가 처참하게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는 아이의 모습이 무시무시하게 겹쳐지는 이 작품집의 수작이다.

<압박>도 대단히 재미있는 작품이다. 전신마비의 남자를 향해 좁아져만 가는 방과 그를 걱정해 주는 여자. 그리고 옆집에 이사온 수상한 사람들.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섬세한 배경과 인물 설정, 그리고 반전과 공포가 잘 어우러진 이 작품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벽 곰팡이>에서는 이민간 한인 가족이 겪는 참담한 인생과 그에 수반하는 사회적 멸시를 겸하는 공포와 죽음을 이야기한다. 무시무시한 공포와 반전이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멸시받는 이민자의 심리가 예리하게 표현되어 있고, 죽음과 살인에 이르는 인간 심리에 대한 부분과 증오가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폭설>에서는 귀신이 씌인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내용인데, 끔찍한 부분과 그로데스크한 인간의 본연적인 공포를 참으로 적나라하게 잘 묘사해주었다.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짓밟는 장면에서는 우리 사회의 이면 또한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상 아홉 편의 다양한 단편들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두 번째 방문이 이 정도 수준인데, 세 번째 방문은 어느 정도의 즐거움과 공포를 독자들에게 가져다 줄 것인가? 그리고 세번째 방문만이 아닌, 그들의 재능이 마음껏 발휘된 장편소설들 또한 기대해 본다. 작품군의 수준과 작가들 개개인이 그려내는 다양한 세계를 보니 많은 작가분들의 이름만 보아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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