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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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9층 아파트로 이사한 사촌의 집을 찾았다. 몇 년만에 가보는 아파트인지, 정말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다. 먼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폐쇄된 자동문의 비밀번호를 알아야만 하고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 대문의 고유번호를 눌러야만 하는 자동설정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면 강도같은 것은 안전해지지만 너무 폐쇄적이 아닌가하고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냉정하고 살벌해졌다는 이야기인 것 같고. 하여튼 사촌동생과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옆집에는 누가 사는지 한번 물어보았다. 사촌동생 왈 <누군가 살고 있어>라고 말한다. 즉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또한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는 아파트의 공기는 상당히 차가워 보였다. 물론 이런 흔한 이야기는 우리사촌댁이 사는 아파트 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현대인이 만든 새로운 바벨탑인 이 고층 아파트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감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미야베 미유키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버금하는 대중성과 인기를 가진 사회파 추리소설작가이다. 그녀를 일본의 대표적 사회파 추리소설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손녀라고도 하는데,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그녀와 그녀의 작품은 그러한 찬사를 받을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물론 사회지향적이다. <이유>에서만도 아파트에서의 인간군상극, 계층상승에의 인간의 욕망, 붕괴된 가족, 이웃에 대한 무관심과 부모의 사랑이 결핍된 아이들 등등 수많은 주제와 이야기, 인물들이 거침없이 등장하여 사회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화두를 지은이 못지 않게 독자는 절절하게 느끼고, 다시 한번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하여 고뇌하게 만들어준다. <이유>뿐만이 아닌 다른 작품에서도 작가는 신용 카드 문제나 취직 문제, 자살 등에 대해서도 수많은 관심을 보여준다. 본업인 추리소설외에도, 그녀는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 같은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면서 계속해서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여류 추리소설작가가 전무한, 우리나라의 추리소설독자가 보기에는 그저 부러울뿐.

이유의 주무대는 아라카와 구 사카에쵸의 '반다루 센주기타 뉴시티' 웨스트타워.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 날밤, 2025호에서 세 구의 시체가 발견되고, 한 구의 시체는 아파트에서 떨어진 채로 발견된다. 그 사실을 알게된 수많은 주민들이 혼비백산하고, 사건은 점차 미궁에 빠져든다. 네 명의 사람이 죽었다면 그 주변인물이나 이웃등을 조사하면 용의자가 대략 잡힐 법도 한다. 그 네명의 사람들 또한 미스터리를 더해주는 인물들이다. 정체가 미궁에 빠진 피해자들과 그들과 알지 못하는 이웃들. 미야베 미유키는 이러한 배경설정을 통하여 대화가 단절된 도시와 아파트라는 감옥 같은 정글에서 사는 현대인들의 삶을 또한 조명한다. 그러나 숨겨진 수수께끼를 푼다는 점에서 이유는 역시 훌륭한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한정된 용의자들 중에서 범인을 찾아내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과는 다르게, 이 작품에서는 찾아내고, 만나보아야 할 용의자들이 작품과 사건이 전개되면서 우후죽순으로 늘어난다. 그러한 점에서 이작품은 사회파 추리소설로서의 탁월한 현실성과 진실성을 보여준다고 할수 있겠다. 이 작품의 화자는 일인칭 화자로서 매우 담담한 르포 형식으로 사건을 전개하는데, 묵직하면서도 조용한 어조로 사건과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이 작품 전체에 등장하는 30여명의 등장인물들 또한 성격이 다채롭고 인생살이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또한 읽는 재미가 있다. 사람들이 얽히고 ˜鰕糖庸 벌어지는 소설의 결말 또한 그다지 가볍지 않은 묵직한 주제를 암시하는 듯 하다.

처음에는 이 작품의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배경과 사건개요 또한 너무나 복잡해서 읽기를 포기했었는데, 구입한지 1년여가 지난 지금, 오늘 400여 페이지를 순식간에 읽고 글을 쓰니 참 재미있다. 숨겨져 있던 보물을 다시 한번 발견한 느낌. 역시 미.미(미야베 미유키의 앞 글자를 줄여 놓은것)여사답다.

결국 <이유>가 암시하는 주제는 무엇일까. 역시 가슴이 따뜻한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 답게 이 작품에서 작가가 독자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가족과의 끈적끈적한 사랑밀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사생아의 어머니인 아야코가 아들인 유스케를 끌어안으며 뜨거운 사랑을 보이는 것이 그렇고, 제대로 된 가족생활을 하지 못해 가슴에 멍이 든 등장인물도 그렇다. 아들에 대한 지나친 사랑때문에 아들에게 상처를 주는 어머니도 그렇고, 사건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도 그렇다. 2025호의 네 사람들은 왜 죽은 채로 발견되었을까? 죽은 이유는 무엇일까? 끔찍한 사건의 속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에의 갈망과 보다 단순한 삶에의 열망을 지향하는 인간의 뒤틀린 동기가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언제나 그렇듯이 약간은 씁쓸한 뒷맛을 감출수 없다. 왜냐하면, 소설 속의 이 이야기는 바로 지금을 살아나가는 우리들의 진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난 지금도 이야기가 전하는 전율과 감동이 계속해서 진하게 남아있다. 이제는 계속해서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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