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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환상특급 1
스티븐 킹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3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중편집의 첫번째 작품인 비밀의 창, 비밀의 정원을 영화화한 조니 뎁 주연의 시크릿 윈도우)

(이 중편집에 실린 두번째 작품인 랭골리어의 영화 표지. 미니시리즈로도 만들어졌다.)
최근 스티븐 킹의 최신작 <셀>이 국내에서 출간되었고, 또 그 판매량도 적지 않다고 하니 이제 국내에서도 킹은 서서히 그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듯 하여 흡족하다. 개인적으로 읽은 킹의 작품으로는 미저리, 스티븐 킹 단편집(생각해 보니 별로 안된다..)정도. 공포는 내 취향이 아니지만 이제는 킹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읽으려고 생각중이다.
수능 며칠전에 <스티븐 킹 미스터리 환상특급>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소개된 킹의 네 편의 중편집을 건지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지금 서평을 쓰려는 이 중편집의 첫번째 작품인 <소설을 훔친 남자>의 원제는 <비밀의 창, 비밀의 정원>이다. 이 작품은 2004년, 조니 뎁 주연의 <시크릿 윈도우>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개봉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평을 보면 영화에서는 반전이 약했다고는 하지만... 미국에서는 개봉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역시, 왕 선생님의 위력이란 대단한 것이다.
이혼한지 얼마되지 않는 인기작가 모트 레이니는 시골별장에 틀어박혀 작품을 구상 중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슈터라는 험상궂은 시골뜨기가 찾아와서 모트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협박한다. 황당하기만 한 주인공 모트. 사랑하는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이혼에 이른 뒤 괴로워하던 그는 슈터의 황당한 말을 무시하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말이며 모습이 계속해서 뇌리에 스치게 된다. 게다가 슈터가 말한 것과 같은 끔찍한 죽음과 살인들이 이어지게 된다.
여기서 킹은 공포와 추리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물론 우리 추리소설 독자들이 좋아라하는 논리적, 귀납적 추리는 아니다. 그러나 연이어 벌어지는 고양이의 죽음과 방화, 무자비한 살인으로 이어지는 작품의 얼개는 추리소설 독자들의 흥미를 충분히 자극하고도 남는다. 게다가 슈터로 인해 고통을 받는 주인공 모트의 심리를 킹은 섬세하고도 실감나게 잘 묘사해 놓았다. 이 작품은 이 중편집에 실린 작품들 중에서도 심리주의적인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뒤로 갈수록 외부의 영향으로 분열되고 끝내 파괴되는 주인공의 심리와 내적 갈등을 끝내주게 묘사해 놓았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생각난 작품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10대 걸작 중 하나인 <$$는 %> 정도? 그러나 크리스티의 그 작품보다는 킹의 이 작품이 훨씬 뛰어나고,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자신은 의도치 않은 표절을 하게 되어 고통받는 작가의 모습에서는 바로 이 작품의 지은이인 스티븐 킹의 마음도 엿볼 수 있다. 킹의 작품들 중에는 작가 자신의 작품세계와 작가에 대한 의식이 드러나 작품이 많은데, <샤이닝>에 나오는 글이 써지지 않아 고통받는 작가가 그러하고, <미저리>에서의 작가의 작품이 독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생각과 묘사에 이르기까지, 스티븐 킹의 작품들에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아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이 작품의 주인공 모트 레이니는 성공한 추리소설 작가. 작품 중에서는 <엘러리 퀸즈 미스터리 매거진>을 뒤적이는 작가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영화에서도 이 잡지를 뒤지는 조니 뎁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국내에서도 좀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 준비되어 있는 반전은 어쩌면 너무 허무하고, 어쩌면 너무 놀라울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이와 비슷한 국내 영화를 한번 본적이 있는 것도 같다. 성현아가 주연이었는데...
<멈춰버린 시간>은, <스티븐 킹 미스터리 환상특급>에 실린 두 번째 작품이며, 원제는 랭골리어.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된 작품이며, 개인적으로 이 작품집에 실린 네 편의 작품 중 가장 흥미진진했던 작품이었으며, 킹의 비행기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혼란에 빠진 여러 인물들의 섬세한 인물묘사, 작품을 읽는 내내 독자와 등장인물들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시공간이 가져다주는 긴장감은 작품의 끝을 읽을때까지 이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게 해주었다. 네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이지만 가장 빨리 읽을 수 있었던 작품. 여름에 읽은 킹의 또다른 중편인 <안개-(킹의 두 번째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에 실린 대표작)>보다도 훨씬 재미있었던 수작이었다. 95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티비 미니시리즈로도 제작되었고 국내에서는 <스티븐 킹의 랭골리얼>이라는 제목으로도 방송되었다고 한다. (보고 싶다..)
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 속에는 수많은 승객이며 승무원들이 탑승해있었다. 그러나 한 장님소녀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녀의 옆에 항상 있어야 할 도우미 아주머니가 사라진 것. 공포에 떨게 되는 소녀, 그러나 주위에는 인기척이라곤 전혀 없으며 또 미묘하고도 기묘한 신호를 느끼게 된다. 무엇인가 다가오고 있는듯한.... 곧 다른 사람들도 잠에서 깨어나지만 기내에 가득 차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보석이나 금품, 가방같은 물품들을 그대로 둔 채... 그 많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승객으로서 비행기에 탑승해 있던 브라이언 잉글, 열혈 유태인 청년, 아름다운 숙녀들, 나이 지긋한 추리소설가(남은 승객들의 향방에 중대한 조언을 하게 된다.), 영국 출신의 사나이, 또 아버지와 어머니의 망령에 계속해서 시달리는 사업가 크레이그 투미,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 불리는 취객 등에 이르기까지, 기내에 남은 사람들은 전부 열한 명이었다. 추리소설가 노인의 추리로 그들은 정황을 짐작하고, 브라이언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비행기를 조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망령에 시달리는 크레이그 투미는 이 비상사태에 크게 반발하여 피를 보기에 이르지만, 작품의 후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어찌되었건 그들은 인기척 하나 없으며 빛도 전혀 없는 공항에 착륙한다. 공항에 착륙한 사람들의 심리는 제각각이지만, 특히 크레이그 투미는 자신의 목적지인 보스턴으로 향하기 위해서 살인까지 서슴지 않으려 하고, 장님 소녀는 현재 무언가가 자신들을 향하여 달려오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암시를 준다. 추리소설가의 추리와 더불어 사람들은 힘을 합쳐 살 길을 찾아 나선다. 그들은 먼저 공항 내의 레스토랑으로 달려가 배를 채우려고 했지만 음식은 아무런 맛이 없었으며 콜라며 맥주는 김이 모두 빠져 있어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었다. 수많은 정황과 단서들로 결론을 이끌어내는 추리소설가. 그들은 과거의 멈춰버린 시간 속으로 빨려들어온 것이었다. 그러나 어째서 그들만? 그들은 잠에 빠져 있었던 유일한 사람들이었으며, 그 놀라운 사실을 알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힘을 합친다. 추리소설가의 추리로 자신들이 탄 비행기는 현재의 공간임을 증명하고, 연료를 재충전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힘을 모은다. 그러나, 아버지의 망령에 시달리는 크레이그 투미는 사람들을 따르지 않고 흉기를 손에 넣고 끝내 사람을 찌르고, 죽이기에 이른다. 크레이그 투미의 심리묘사는 이 작품에서 가장 탁월한 장면이다. 해야할 일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엄히 명령하는 아버지와 마약에 빠진 어머니에 끼치는 정신적인 영향으로부터 그는 달아나려 하지만 끝내 그것으로부터 달아나지 못하고 망상 속의 부모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그 자신도 죽음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작가인 킹은 그에게 중요한 임무를 부여했다. 그가 중대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은 장님소녀가 무엇인가를 느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소녀의 예견은 적중하여 투미는 다른 승객들의 목숨을 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티격태격하며, 어찌되었건 자신들이 타고온 비행기에 연료를 채우고 과거의 시간으로부터 현재의 시간 속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은 비행기를 이륙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투미와 장님 소녀가 감지했던 것처럼, 무시무시한 '랭골리어'들이 비행기와 사람들을 향하여 달려온다. 수천, 수많은 랭골리어들은 비행기를 향하여 달려오면서 그 주변의 건물과 공간들을 모두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즉 랭골리어들은 시간과 공간을 집어삼키는 괴물인 것이다. 엄청난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 그러나 마침내 이륙에 성공하고, 한 숨 돌리게 된다.
치밀한 계획대로, 이륙에 성공한 그들은 비행기를 돌려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추리소설가의 절묘한 추리로 인하여 극적으로 계획을 다시 세우기에 이르고, 끝내 그들은 지혜를 모아 미래를 거쳐 현재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참으로, 멋진 인간 승리의 드라마.
열한 명의 사람들이 느끼는 무시무시한 심리적인 공포의 적확한 묘사(한명은 잠만 잤으니까 빼자.), 공포 속에서 싹트는 전우애와 또 남녀 사이의 사랑, 또 인간 심리의 섬세한 표현(이 작품집의 네 작품 중에서도 이 작품은 특히 크레이그 투미의 심리 묘사가 일품이다), 비행기라는 어찌보면 무시무시한 문명의 이기와 시공간을 초월한 배경을 주제로 다루는 킹의 이 중편은 작품 내내 지속되는 긴장감과 미스테리,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생의 의지와 사랑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멋진 작품인 것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작품의 원제이기도 한 랭골리어들이 나오는 시간이 너무 짧은 것 정도일까... 긴장감의 증폭은 제대로 느낄수 있었지만 나는 뭐 사람들이랑 랭골리어들이랑 싸우기라도 할 줄 알았건만... 하지만 이러한 단점은 충분히 덮고도 남을 만한 킹의 또 다른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임) 이 작품에 나오는 추리소설가 젠킨스의 한 마디에서..
<난 아무래도 필로 밴스 흉내를 내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 친구는 형사지. 위대한 형사. S.S 밴 다인이 창조해낸 인물. 자네는 그 사람 소설을 읽어 본 적 없지? 요즘 사람들은 그 양반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데 애석한 일이야>
필로 밴스는 형사가 아니라 아마추어 탐정이다. 젠킨스씨의 말마따나 역자님께서도 그 양반 소설을 읽지 않으신 모양이라 약간은 아쉽다.
그리고 또 한가지. 시리얼을 쌀과자로 번역했다. 약간은 웃기지만 십여년전의 번역이다. 옥에 티는 이정도. 멋진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