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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읽는 동안 와닿는게 극히 없다고 느낄 정도로 일반적인 성장소설이라는 어림짐작을 하고 있었다. 윤재가 그렇듯 일반적인 이성위에 잘 지어진, 그렇지만 미학은 없는 그러한 소설이 아닌가에 대해 읽는 내내 회의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주인공처럼 감정을 잘 느낄 수 없게 되버린 것일까 생각하며 무던히 읽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은 작가만의 고도의 탄력적인 설계가 작용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인공의 무딘 감정에 몰입된 나의 모습과, 그 감정으로 바라본 세계의 모습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설에 완벽히 몰입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느껴진 것이었다. 이걸 분명히 깨달았던 부분은 마지막에 윤재가 지금까지의 무딘 감정을 떨쳐내듯, 독자들이 느낄 수 있던 이 소설의 진짜 감정의 미학에 있다. 그곳에 도달하기까지 윤재의 주변에는 여러 조력자들이 극의 감정선을 균형있게 잡아주고 있었다.
작품 감정의 주체적 인물인 곤이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를 부러워하며 자신의 나약한 감정들을 떨쳐버리고 싶어하지만 그의 진실된 내면의 두려움은 의지로 떨쳐낼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나비에게 고통을 가하는 장면에서 그가 숨기고 있던 나약한 감정들이 잘 드러난다. 그도 그런 감정들을 처음부터 버려내고 싶어하진 않았을 것이다. '상처받지 않기위해서 상처를 준다'라는 곤이의 태도는 자신의 비극적인 삶으로부터 파생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곤이는 자신의 길을 따르기 위해 더 상처주는 길을 택하게 되지만 마지막에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는 윤재를 보며 내면의 감정이 요동치고 상처받는 자신의 모습을 용인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런 윤재도 곤이를 대신해 칼에 찔림으로써 자신을 지키기 위해 희생당한 할머니의 마음을 생각하고 그 감정을 조금이나마 깨우치게 된다. 그렇게 둘은 성장했다.
개인적으로 도라와의 감정라인이 더 풍부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마지막에 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소설의 피날레를 아름답고 깔끔하게 장식하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전반적으로 무미건조했던 느낌이 이어지다가 터져나오는 감정이었기에 효과가 극대화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박사는 말한다. 결국은 성장해가는 과정이라고.
구할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누군가에 의해, 무엇인가에 의해 때가 다른 도움이 기다리고 있을 뿐.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명의 괴물 소년들이 서로를 통해 성장해나가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p 40 엄마는 모든 게 다 나를 위해서라고 했고 다른 말로는 그걸 ‘사랑‘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엄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하려는 몸부림에 더 가까웠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사랑이라는 건, 단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한다, 저럴 땐 저렇게 해야 한다, 사사건건 잔소리를 늘어 놓는 것에 불과 했다. 그런게 사랑이라면 사랑따위는 주지도 받지도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p 128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는 무슨 의미로 그렇게 썼을까. 도와 달라는 손짓이었을까, 아니면 깊은 원망이었을까. 엄마와 할멈에게 칼을 휘두른 남자와 곤이는 P.J. 놀란 같은 타입이었을까. 아니면 P.J. 놀란과 가까운 건 오히려 나였을까.
p 239 벽에 박힌 못에 찔렸는지 내 다리에서 피가 흘렀다. 그걸 본 곤이가 어린아이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래, 곤이는 그런 놈이다. 피 한 방울에 눈물을 찍어 내고 남이 아파하는 걸 보면 저도 아픈 애다.
p 247 마지막으로 눈이 내리던 날. 그러니까 내 생일날. 피로 눈을 물들인 엄마가 쓰러져 있다. 할멈이 보인다. 표정이 맹수처럼 사납다. 유리창 너머로 나를 향해 외친다. 가. 가ㅏ. 저리 비켜! 그런 말은 보통 싫다는 뜻이다. 도라가 곤이에게 외친것처럼, 꺼져 버리라는 뜻이다. 왜지. 왜 나한테 가라고 하지. 피가 튄다. 할멈의 피다. 눈앞이 붉어진다. 할멈은 아팠을까. 지금의 나처럼. 그러면서도 그 아픔을 겪는 게 내가 아니고 자신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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