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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지겨울 법도한 플랫 속을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 우리가 살아오면서 두 명 정도의 인연이 있을 법한 지혜라는 흔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여성은 적당히 튀지 않는 삶 속에서 적당한 사건들을 겪어가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런 적당한 소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무난한 일상을 묘사하며 진행되는데 사실 이 모두가 겪고 있는 일상, 그리고 무난하게 받아 들여지는 사건들은 절대로 무난하게 넘어가져서는 안되는 일들이 대다수이다. 약자를 괴롭히고 그들을 착취하며 권력의 힘으로 짓누르는 이 시대는 갑질이라는 현상이 곳곳에 만연해있다. 그들은 계속되는 갑질과 언행으로 종종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지만 그들이 반성하는 순간은 우리가 눈 한번 깜빡할 정도로 반짝함과 동시에 곧바로 수면 아래로 묻혀져 버린다. 우리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떨어지는 유성처럼 잠깐 찬란하게 빛나는 그 순간일 뿐. 유성이 떨어져 버리고 난 뒤면 잠잠해지다가 조용히 잊혀진다. 그러한 의식은 각자의 내면에 잊어서는 안된다고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점차 흐려지기 마련이며, 그러고는 곧바로 잊지 말아야 할 유성이 또 하나둘 떨어지고 만다. 떨어지는 유성에 정면으로 맞대어 피해를 입지 않은 이상. 그러한 행렬은 우리 사회에 끊임없이 반복되어지는 중이다.
청년들은 자신의 현실에 슬퍼하고 좌절한다. 사회는 그런 청년들에게 끊임없이 희망이란 가치를 좇으라 강요한다. 기준치에 미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고립되고 낙오되어진 채.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해야 한다. 왜, 무엇이 이렇게 만든 것일까? 나의 불행은 오로지 내 잘못인 걸까? 나의 판단도 중요한 영향을 끼치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부조리한 사회 구조는 우리를 소극적이고 위축되게 만든다. 그런 사회에 당당하게 나타난 규옥은 작은 체 게바라를 그리며 갑에 대해 저항하는 놀이들을 계속해서 궁리하고 행한다. 지혜는 무인과 남은이란 묘한 이름을 지닌 사람들과 더불어 평범한 시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이지만, 그런 투쟁가에게 합세하여 작지만 확실한 저항을 지속해나간다.
그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관심을 끄고 무시하는 것은 우리가 말 잘 듣는 순한 양이란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내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하며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할 힘을 가지고 있다. 분노를 억압하는 사회는 모두를 순한 양으로 만든다. 대인 관계에서 분노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보지만 부당한 사회 구조에 대해서 우리는 매 순간 분노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분노할 줄 아는 힘은 사회에 필요한 성분이다. 그래도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청와대의 청원이 생겨 났다는 것. 여론의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 댓글 공작들도 외적으로는 혼란스럽지만 피가 끓고 있는 자들의 내면을 선동시킬 수는 없다. 작은 목소리들의 힘이 합쳐져 사회에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의 기초적인 덕목이다.
우리 사회의 88년생 김지혜 씨들이 부당한 사회로부터 서서히 저항을 해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우리의 평범함이라는 이미지가 길들여지는 순한 양을 의미하고 있음을 나타내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내보일 수 있는 평범함의 의미는 부당한 일에 대해 연약한 힘으로 두드려 대고 개미의 목소리로 울부짖는 반항하는 양의 태도를 취하자고 소설은 말한다. 우리는 기득 세력에 대해 분명한 약자의 입장이기에 작은 힘이 모여서 큰 힘을 이룬다면 큰 권력과도 맞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가 한 순간이라도 그런 식으로 부조리에 대해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규옥이라는 든든한 지원자가 있었기에. 그만한 버팀목이 뭔지 모를 위안을 전달해주었기에. 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정작 사회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곁에, 규옥이란 행운의 버팀목과의 우연한 만남은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내용일지도 모르지만, 이 소설이 그러한 지혜들에게 규옥만큼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의식한 순간 사회의 지혜는 서로에게 규옥으로써 두 가지의 모습으로 발현하는 때가 나타나지 않을까.
p 80 "그런데 사실 난 가끔 궁금해요. 우리가 욕하고 한심하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데 똑같은 입장에 놓였을 때 나는 그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비판하는 건 쉬워요.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성, 상식을 잣대 삼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인간이 이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순간에 놓이면 존엄성과 도덕, 상식을 지키는 건 소수의 몫이 돼요. 내가 그런 환경과 역사를 통과했다면 똑같이 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결국 뭔가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p 91 억울하건 화가 나건, 사람들은 세상에 비일비재한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꾸역꾸역 잘도 잊어버렸다. 그래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잊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아니, 살아지지 않는다.
p 136 어쩌면 정진 씨를 만날 때마다 바랐었는지도 모른다. 정진 씨 같은 건 없다고 말해줄 사람이 있기를. 혼자 있지 말라고, 밥을 같이 먹자고 말해줄 사람이 있기를. 혼자 있지 말고 함께하자는 손길을 내밀어줄 누군가가 있기를....
p 202 "가서 항의해요. 가만있으면 그게 당연한 줄 알아요. 가만있으면 그렇게 해도 되는 것처럼 대한다구요."
p 232 무거운 마음을 실어 터벅터벅 걷는데 갑자기 발밑에 무지개가 떠서 걸음을 멈췄다. 어디선가 흘러온 기름이 작은 물웅덩이에 고여 찬란한 무지개띠를 만들어낸 거였다. 그런데 모양이며 색이 어찌나 선명한지, 진짜 무지개보다 더 진짜 같았다. 그 묘한 아름다움이 생경해서 기름띠가 물 위에 자리 잡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꼭 비 온 뒤 청명한 하늘에 뜨는 무지개만 아름다운 건 아니구나. 아무런 사건도 등장인물도 없는 그날의 기름 무지개가 내 인생에서 꼽는 몇 장면 중 하나란 건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우주 속의 먼지일지언정 그 먼지도 어딘가에 착지하는 순간 빛을 발하는 무지개가 될 수도 있다고 가끔씩 생각해본다. 그렇게 하면, 굳이 내가 특별하다고, 다르다고 힘주어 소리치지 않아도 나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가 된다. 그 생각을 얻기까지 꽤나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조금 시시한 반전이 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애초에 그건 언제나 사실이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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