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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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환경에서 살아온 밴스. 그가 살아온 힐빌리의 사회는 가난 그 이상의 거칠고 투박한 환경을 자랑한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삶이 보여지는 데 그것은 그들에게 일상이었다. 그는 마약에 취해, 지속적으로 바뀌는 남편들에 빠져 살던 엄마로부터 도망쳐 조부모들과 생활한다. 그들은 어릴 적 삼촌에게 장난감을 못 만지게 하는 점원 앞에서 장난감을 부셔버리고,술을 마신 채 귀가한 할보에게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이기도 하며,총을 장난감 다루듯 가지고 노는 매우 솔직하고 거친 사람들이었다. 괴팍하고 화끈한 성격이긴 하지만 따뜻하고 진심 어린 할모와 할보의 애정을 받고 자란 그는 지독한 환경을 벗어나기로 다짐하며 열심히 살아낸다. 이 지역에서의 삶은 어찌 보면 생존해낸다는 말이 더 적합할 듯 하다. 밴스에게 이러한 환경이 주어질 수 있었던 것은 중독자가 되어버린 엄마를 보며 자신이 잘못키웠다고 자책을 하고 한 번도 흘리지 않던 눈물을 터뜨리는 할보와 할모의 굳건한 다짐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결국 성취해내고야 만다. 


'뭐든 할 수 있다. 절대 자기 앞길만 막혀 있다고 생각하는 빌어먹을 낙오자처럼 살지 말거라'


사실 그가 출세하는 과정에서 그의 노력은 자세히 비춰지진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공부를 열심히 했고 운 좋게 로스쿨에 합격하고 사회적 자본인 주변 사람들을 잘 만나 승승장구를 누리는 순탄한 후반부의 인생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 노력의 출처는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삶으로부터 길러진 생존력 덕분일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수많은 고통과 위험으로부터 생존해내었기에 훗날의 고통은 별 것 아니라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국가는 다행히도 장학금을 통해 나름의 보장을 해준다. 그렇듯 사회의 궁핍한 면모는 역설적으로 사람의 끈기와 투지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오하이오에서의 삶을 빠져나온 밴스가 로스쿨 학생의 삶과 힐빌리 청년의 삶 사이에서 갈등을 벌이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상승된 신분을 즐기는 태도로부터 만들어내는 인식의 차이가 자신의 과거를 비하하고 외면하는 마음이 되지 않기 위해 그는 노력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자신의 성공담을 늘어놓기 위해 소설을 쓴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세상을 파악하는 과정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똑같이 겪고 있는 환경의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사회에 갇혀 고립되어지고 피폐한 삶을 이어나가게 된다. 주변에 밴스처럼 괜찮은 사례가 있지 않은 한 그들은 반복되는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 시점에서 이 소설은 매우 의미 있게 작용된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싶다던 할모의 소망과 마음을 이어받아 이 소설을 통해 그들에겐 일상이지만 우리에겐 충격적인 사회를 직시하게 해준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이 고립된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생각해 보게 될 것이고, 자신들의 사회를 묘사한 이 책을 본 진정한 '그들'은 이런 선례를 통하여 자신도 해낼 수 있다는 조금의 희망을 품어냈을지도 모른다.


갇혀진 세계는 어느 나라에든지 존재한다. 우리는 밴스가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그 세계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 해야한다. 세상에 수많은 J.D와 브라이언이 공평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p 49
내가 할모라고 부르는 말괄량이 블랜턴 여사와 블랜턴 남자들은 힐빌리의 정의의 집행자였으며, 내게는 최고로 멋진 사람들이었다.

p 220
할모는 내 마음으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비통하고 실망스러운 일을 겪고 난 뒤에도 결코 그 희망을 놓지 않았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평생 그토록 배신을 당해놓고도, 언제나 그들을 믿을 구실을 찾아냈다.

p 238
할모는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다. 마약, 다툼, 가난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생활은 너무도 비참했다. 이웃들의 삶에는 지독한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p 305
힘 있는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의 처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우리를 도우려고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p 332
나는 예일대 로스쿨 학생이 될 건지 힐빌리 조부모님을 둔 미들타운 청년이 될 건지 선택을 해야 했다. 전자를 택하면 서로 인사치레를 하고 뉴헤이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담소를 나누게 되겠지만, 후자를 택하면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나와 다른 편이 되어 내가 믿지 못할 존재가 될 터였다. 그녀는 조카와 함께 참석한 칵테일 파티나 근사한 만찬에서 오하이오 사람들이 얼마나 촌스러운지, 그들이 총과 종교에 얼마나 빠져 사는지 얘기하며 깔깔댔을 게 뻔했다.
나는 거기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심한 대답으로나마 문화적 저항을 드러냈다.

p 371
잘 풀리건 안 풀리건 간에 인생에서 개인의 탓은 어느 정도인가? 대를 거쳐 결점을 물려준 문화와 가족, 자식을 망쳐버린 부모의 탓은 어느 정도인가? 엄마의 인생에서 엄마의 잘못은 얼마나 되는가? 어디까지 비난을 해야 하고 어디서부터 공감을 해야 하는가?

p 403
브라이언이나 나 같은 사람들이 부모와 연락을 끊는 건 그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다. 우리는 한순간도 우리 부모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우리가 사랑하는 그들이 변하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은 적도 없다. 오히려 경험으로 터득한 지혜나 법적 조치 때문에 자기보호적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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