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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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의 버블이 꺼지고 08년도의 대공황으로 큰 타격을 입은 기업들. 그 속에서 능력을 상실하고 냉혹한 현실에 내쳐진 일본인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부정하고 삶을 리셋하기 위해 '증발'을 택한다. 일본에서는 매해 10만 명의 실종 신고가 들어온다고 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의 사람들이 증발을 택하는데 일본이란 경제적 대국의 위엄이 무상하듯, 그 이면에 가려진 비참한 사회인의 현실이 무척 씁쓸해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자살을 택하는 이들 또한 같은 마음이 아닐까.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먹먹한 현실에 안쓰러운 감정이 들었다. 캡슐호텔을 전전하고 판자촌으로 향하는 증발자들. 그들은 그렇게 극도의 외로움을 껴안고 살아간다. 애타게 찾고 있을 가족과 친구들의 그리움을 뒤로한 채. 


무엇이 그들을 증발하게 만든 것일까. 그들이 증발을 택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구조의 개혁이 시급할 것 같다.

p 128
사카에가 보기에 일본 열도는 ‘압력솥‘ 같다고 했다. 일본인들은 마치 약한 불 위에 올려진 압력솥 같은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러다 압력을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린다.

p 167
"세월은 흐르고 우리 부부는 점점 늙어가고 있습니다. 나오리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보다 더 오랜 세월 이 일을 안고 살아야 할 큰아들은 더 힘들죠." 나오리의 어머니도 거든다. "나오리 소식만이라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오리가 원치 않으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나오리가 필요하다면 돈도 보내줄 겁니다."

p 204
마침내 그는 ‘빛‘을 발견하고 새롭게 출발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얼마 전에 아르바이트를 세 개나 구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그리고 싸울 준비가 된 사람처럼 흥분하며 덧붙인다.
"친구가 사라진 이유는 안타깝게도 도움의 손길을 발견하지 못해서였습니다."

p 243
외롭지만 자유로운 사람들, 외로움 대신 완전한 자유를 얻은 사람들.

p 254
예쁜 방울토마토로 붉은 물이 든 채소밭에 한 노인이 서 있다. 그는 채소밭 가꾸는 일에 흥미를 잃었다고 털어놓는다. 나날이 커지는 외로움에 지쳐가고 있다. 일요일마다 손주들을 데리고 놀러와 수확한 채소를 나눠먹던 아들네도 오지 않는다. 대대로 물려받은 큰 집에 더 이상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다. 그의 전 재산, 그의 이야기와 정체성은 원전 방사능재와 함께 사라져갈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사라져야 하는 상황이다. 인간의 위선이 안겨주는 망각.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어느 지방 전체가 지도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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