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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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 합리적인 상황 판단과 계산들만이 존재하고 정확한 답에 의해 지배되는 경제의 논리.

작가는 그러한 현실을 줄곧 서술하면서 그것에 가려진 숨은 인간의 이타성에 대해 페미니즘을 빗대어 설명한다.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뒤에 있던 또 다른 누군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회에서는 여성이 비주류적인 존재로서 취급당하며 그들의 노동은 노동이 아니고 당연시되었다.

그런 경제성의 원칙에 해당하지 않던 노동들은 결코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가치들이다.

경제학과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들이 절묘하게 오가면서 충분한 생각이 피어오르게 되었다.



-권위에 의한 안도감일까. 

높은 지위의 고전이 나의 행위에 대해 의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보며 위안을 받는다.

편향된 정보만을 취하려는 나의 모습인가? 칭찬을 받았기에, 인정을 받았기에 느껴지는 안도감일까?

과연 그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것일까? 결국은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갈망했던 것이 아닐까?

나와의 낯선 생각들, 반하는 생각들을 어디까지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p 22
경제학은 돈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경제학은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살피는 학문이었다. 본질적으로, 경제학은 주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익을 보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기술하는 역사였다. 모든 상황에서, 결과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p 30
애덤 스미스는 식탁에 앉았을 때 푸줏간 주인과 빵집 주인이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어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교환을 통해 충족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애덤 스미스의 저녁 식사가 식탁에 오른 것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 때문이었다.

p 48
시장이라는 기계는 사람들의 평범하고 기본적인 감정 같이 단순한 것을 가지고 세계 평화와 모든 이의 행복을 창조해 내는 것으로 가정되었다. 따라서 모두가 이 이야기에 매혹된 것도 놀랍지 않다. 착취를 개인적 악감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급 7000원을 받으며 등골이 휘게 일하는 여성도 사악한 누군가가 강요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책임져야 할 사람도 없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그리고 경제학은 피할 길이 없어. 우리의 본성에 있으니까. 사실 그게 우리이ㅡ 본질이야.

우리는 모두 경제적 인간이니까.

p 60
인간이라면 지성이 육체를 장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성은 이러한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여성은 인간으로서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사회의 지배적인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남성이 ‘정신‘이, 여성은 ‘육체‘가 되었다. 남성이 육체적으로 해방되기 위해 여성은 점점 더 육체적 현실에 얽매여 갔다.

시카고 학파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생물학적 이유를 대며 가볍게 넘어갔다. 수백 년 동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은 변화할 수도, 변화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는 ‘자연스러운 것‘과 ‘가능한 것‘ 사이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도록 배웠다. 남성과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점은 곧 정치적 위계를 정당화 했으며, 이를 부정하는 것은 곧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p 74
당신이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초콜릿 푸딩을 먹는 것도 좋아한다고 가정해 보자. 주류 경제학 모델은 당신이 할머니를 영영 보지 못하는 것을 상쇄할 만한 푸딩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 모델은 인생에 있어 대부분의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p 80
경제학을 조금도 공부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해가 잘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경제학적 논리‘라는 것은 그냥 아무 논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의미에 관한 거대한 담론‘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근본적인 동기가 경제적이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이야말로 인간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을 어떻게 조직해야 우리의 가장 내적인 본성에 이로운가를 알려 줄 수 있다. 우리의 가장 내적인 본성은 물론 ‘이익을 거두는 것‘이다.

p 83
서머스가 제안한 모델은 이런 가능성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는다. 미스터 케이가 얼마나 배고픈지는 상관없다. 그는 여전히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개인으로, 자신이 하는 일을 완벽히 제어할 능력이 있다. 그가 미스터 지의 쓰레기 처리장 역할을 하는 데 동의하는 것은 그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 흠잡을 데 없는 경제학적 논리에서는 오직 무인도에 고립된, 각각 필요한 것이 있는 두 명의 개인만을 본다. 맥락도, 미래에 대한 고려도, 연결 고리도 없다.

p 86
자유라는 단어는 단어에 불과하다. 정말로 단어에 불과하다.
경제학자들은 자기들이 인간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을 설명하는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들에 대한 비판은 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샅샅이 연구하면 진실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모든 것이 경제적 인간이라는 진실 말이다.

논리도 하나. 세상도 하나. 존재하는 방법도 하나. 백합은 무슨 백합?

p 90
그러나 직장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집안일을 풀타임으로 돌봐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오늘날 여성들은 직장에서 일하지만, 그 시간 동안 집안일을 돌볼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은 그 만큼의 재력이 있는 소수에 불과하다. 청소하는 사람의 집은 누가 청소해 주는가? 보모의 딸은 누가 돌보는가? 이는 결코 수사적인 질문이 아니다. 세계경제를 감싸고 있는 복잡다단한 돌봄 체계를 들여다보지 않고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p 158
정신병을 앓는 환자들 중 많은 수가 자신 외에 모든 사람이 미쳤다고 생각한다. 나의 강박적 행동과 규칙들은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정신병동의 불을 끄면 환자들은 괴로워하고 비명을 지르고, 이 공허한 비명 또한 수요의 한 형태로 해석된다. 세상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궤도를 다라 계속 돈다. 가히 지옥의 회전목마라 할 수 있다. 처음에 투입한 자원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 내야 한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그리고 같은 방향으로 함께 행진하는 군부대에 소속되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항상 혼자다. 하나의 논리, 하나의 세상, 그리고 우리는 결국 혼자만의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고집해 마지않는 세상의 모습이다.

p 174
우리가 경제적 동기 부여 체계를 도입하는 것은 경제적 힘이 우리의 추동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보상이 다른 모든 추동력을 밀어내고 만다. 경제적 인간이 상황에 뛰어들어 도덕적, 정서적, 문화적 고려대상들을 모두 쓰러뜨린 셈이다. 그 고려 대상들이야말로 돌아보면 경제가 기능하고 발전하는 데 엄청나게 중요한 것들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런 식으로 규정된 시장 원리는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을 파괴할 위험성까지 커진다.

p 179
경제학은 ‘사랑을 아끼고자‘ 했다. 이를 위해 사랑은 모든 것에서 배제되었다. 그리하여 배려, 공감, 돌봄 등의 덕목들은 경제적 분석에서 밀려났다. 어떤 행동은 돈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어떤 행동은 배려를 위해서만 존재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절대 만나선 안 되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은 똑같은 현상이 대칭처럼 반대편에서도 일어났다는 점이다. 사려 깊음, 공감, 돌봄 등에 관한 논의에서 돈과 부에 관한 이야기가 빠진 것이다. 어쩌면 이야말로 현재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남성에 비해 훨씬 열등한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

p 185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때 돈이나 선의 중 한 가지 요인만이 동기가 된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다. 게다가 이 개념은 성별에 관해 우리가 가진 이미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남성은 자기 이익 추구라는 본능에 의해 나아가고 여성은 전체적인 그림을 조화롭게 만드는 역할을 하도록 되어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본능이 성별에 관계없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사실 그것이 진실에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p 207
경제적 인간은 이러한 세상의 주인공이다. 그는 이 세상에 영감을 주고, 이 세상을 합리화 하는 존재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은 자신을 설명하고 자신의 논리를 펼친다. 즉 부자들을 더 큰 부자로 만들면 우리 모두에게 이득이라는 논리 말이다. 신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경제적 인간은 우리에게 다른 가능성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경제적 인간처럼 행동하는 한 다른 어떤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p 220
신자유주의는 인간을 자본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노동과 자본 사이의 갈등을 간단히 해결한다. 즉, 인간의 삶을 시장 가치를 높이기 위한 일련의 투자 행위로 보는 것이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빵 한 쪽과 생선 한 마리로 신도들을 먹이는 것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누구나 먹고살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당신의 능력을 믿는다. 험한 세상이기는 하지만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 그리고 우주가 우리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관점은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만들었다. 실업자 센터를 찾는 여성이나 다카 공항에서 위조 서류를 기다리는 남성 모두 자신의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가들이다. 시차가 여덟 시간 나는 곳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에서 발을 뻗고 몇 시간 눈을 붙이려 누운 CEO와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단지 자신이라는 자본에 투자를 잘했는지 못했는지의 차이, 그리고 태어날 때 주어진 첫 자본금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이것 말고 또 무엇이 성장을 가져올 수 있겠는가? 어떤 여성 연예인은 가슴 확대 수술이 ‘투자‘였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한겹 한겹 걷어 내고 나면 결국 모든 것이 경제학이다. 우리의 삶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일련의 투자에 지나지 않는다.

p 276
경제적 인간의 모든 특성이 우리가 남성성이라고 규정한 모든 특징과 일치하는 데서 문제가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특성들이 우리가 여성성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우월하고 그 위에 군림할 가치가 있다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 더 큰 문제다.

영혼을 신체보다 더 정제된 것으로 여기면 우리는 영혼을 남성과 연결 짓는다. 이성을 감정보다 더 정제된 것으로 여기면 우리는 이성을 남성과 연결 짓는다. 특정적인 것보다 보편적인 것이 더 낫다고 받아들이면 우리는 보편적인 것을 남성과 연결 짓는다.

p 286
우리의 관계는 경쟁으로만 한정할 필요가 없다. 자연을 적대적인 상대로 간주할 필요도 없다. 모든 부분을 합친 것보다 전체가 더 크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세상은 기계 혹은 정교한 기계적 움직임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경제적 인간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헛되다 느낄 수 있는 상황은 많지만 이 문제 만큼은 헛되다 외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여정의 목표는 바뀔 수 있다. 세상을 소유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편안하게 살려고 애쓰는 여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차이는 바로 이것이다. 소유는 집착이다. 죽은 물건을 손으로 감싸고 "이건 내 거야"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반면, 세상을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은 무엇이 자기 것이라고 선언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바로 그대 우리는 신발을 벗는다.

한동안 그곳에 머무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에.

p 298
주류 경제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페미니스트적 관점이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시켜야 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들의 임무다. 페미니즘의 관점은 불평등부터 인구 증가, 복지 혜택, 환경, 그리고 노령화 사회가 곧 직면하게 될 돌봄 인력의 부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깊은 관련이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권리‘ 이상의 훨씬 큰 문제에 관한 것이다. 현재까지는 페미니즘 혁명의 절반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성들을 더해서 젓는 것까지는 했다. 이제 다음 단계는 이것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 깨닫고, 그 새로운 세상에 걸맞도록 사회, 경제, 정치에 변화를 가져오는 일을 해내는 것이다. 경제적 인간을 단상에서 내려오게 해서 작별을 고하고,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더 폭넓게 포용할 수 있는 경제와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그것을 혁명이라 부를 필요는 없다. 그저 향상이라고 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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