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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ㅣ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난 네 말을 듣고 있어' 수용과 이해의 기적
-'모모/미하엘 엔데'를 읽고 -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란 '난 당신 말을 듣고 있어요'. 이 이상 쉬운 해결방법은 없다. 부모역할교육(P.E.T)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도 자녀에 대한 수용과 이해의 감정이다. 부모란 자녀에게 좀 더 수준 높은 교육, 문화적 혜택, 윤택한 삶을 제공해 주는 것만이 아니라 자녀의 말에 귀기울여주는 것이다. 자녀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서둘러 평가하거나 단념하지 말고 끝없이 수용하고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사회에 적용한다면 사회적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에 귀기울여 주는 것이 된다.
8살 소녀 모모는 부모에게서, 친구들에게서, 이웃에게서, 사회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거부당한 상처로 마음을 닫아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수용과 이해로서의 부모역할을 하고 있다. 특별한 능력이나 화술로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말에 귀기울여 줌으로써 사람들 마음 속에 숨어 있던 해답을 스스로 찾게 한다. 기계에 똑같은 형태로 쏟아지는 장난감을 가지고 이미 만들어진 규칙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상력을 빼앗긴 아이들에게는 상자 하나로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을, 다투고 빼앗고 뒤돌아볼 여유없이 숨가쁘게 앞만을 향해 나가는 어른들에게는 '여유'를 생각하게 한다.
'시간은 금이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를 신념으로 삼고 있는 어른이라면 모모에게서 스스로 놓치고 만 커다란 보물이 무엇인지 듣게 된다. 학원, 학습지, 텔레비전, 컴퓨터가 유일한 놀이터인 어린이라면 모모를 만나고 꿈과 환타지를 만나게 된다. 메마르고 각박한 세상에 홀로임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도로청소부 베포, 허황된 거짓말쟁이 기기, 길을 잃은 아이에게 닻별이 돼 주는 카시오페이아는 따뜻함을 전해줄 것이며, 회색신사들의 섬뜩한 괴기스러움은 그 따뜻함을 더욱 간절하게 할 것이다.
회색그림자들에게 시간을 빼앗긴 현대인들에게 시간을 되돌려 주기 위해 모모는 외로운 여행을 한다. 호라박사의 도움으로 다시 베포는 한 걸음 다음에 오는 한 걸음을 사랑하게 됐으며, 기기는 저절로 샘솟는 상상력을 발휘해 사람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느 이야기꾼이 된다. 각박하게 돈을 좇아 살던 이웃들과 탁아소에서 맞춰진 규율로 상상력을 잃어가던 어이들이 모모의 원형극장으로 되돌아 올 때는 바람 한 줄기, 구름 한 족가만으로도 행복한 사람들이 돼 있다.
상상력, 깊은 사고, 삶의 여유와 풍요, 이 모든 것은 바로 모모의 '난 네 말을 듣고 있어'의 수용과 이해에서 비롯된다. 지금 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말에 난 얼마나 귀기울이고 있는가, 그것이 나와 그 사람의 행복을 좌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