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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감옥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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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야기
                    -‘자유의 감옥/미하엘 엔데/보물창고’를 읽고 -

  모든 이야기에는 의도가 숨어 있다. 그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독자의 즐거움이자 몫이다. 판타지의 재미를 아는 독자들이라면 단편집 <자유의 감옥>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주는 재미에 홀딱 반할 것이며.  판타지를 싫어하는 독자들이라면 ‘나’를 성찰하게 하고 ‘우리의 삶’을 반추하게 하는 진지함에 놀랄 것이다. ‘진실’을 끝없이 좇게 한다는 점에서 미하엘 엔데의 판타지는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이 주는 재미가 아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와 '개미'와 같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하지만  인간내면의 의식을 깊이 파고들어 성찰한다는 점에서 충격의 색깔은 다르다.    

미하일 엔데<자유의 감옥>을 표제로 하고 있는 여덟 편의 단편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파헤쳐 들어가는 목소리이면서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상상력을 동원해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일상성을 자극하는 신선하고 충격적인 사건들이며 반드시 또 다른 질문을 던지는 구성으로 돼 있다.

<긴 여행의 목표>는 ‘집’을 찾는 것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를 갖지 못한 시릴은 말하는 사람들마다 눈을 젖게 하는 ‘집’이란 존재를 알면서부터 방황을 시작한다. 찾으면 찾을수록 자신에게 괴로움만 안겨주는 ‘집’의 존재를 찾아 끊임없는 여행을 하던 주인공은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오’ 를 실현한다. 어쩔 때 우리는 방금 경험한 상황을 어디선가 본 듯하다고 느낄 때가 있지만 그것을 캐내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 적은 없을 것이다. 미하엘 엔데는 이러한 보편적 현상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만약 우리가 어떤 것을 기억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것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기억이란 우리가 상상하듯 내가 태어나서 살았던 때부터가 아니라 전생에서 무의식으로까지 확장된다. 평생을 자신이 그리워하던 ‘집’을 그림 속에서 발견한 주인공은 그 그림 속 ‘집’에 익숙한 자신을 발견한다. 익숙하다는 건 언젠가 그곳에 가봤다는 것이고 그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결국 그 ‘집’을 찾고야 만다. 이 끈질긴 내면 성찰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며, 무의식의 발견이며, 영혼의 안식처다. 이 <긴 여행의 목표>는 다시 여덟 번 째 단편 <길잡이의 전설>에서 계속 이어진다. ‘집’을 찾지 못한 주인공이 현실에서 평형장애를 앓고 있다는 설정과 ‘집’을 찾은 주인공이 들어간 궁전의 창문 속 그림자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분명치 않다고 함으로써 이 여행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에서 작가의 치밀함이 돋보인다.  

<보로메오 콜미의 통로>와 <교외의 집>, <조금 작지만 괜찮아>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의식의 성질’에 따라 수많은 현실이 공존할 수 있다는 가설하에  ‘보로메오 콜미의 통로’는  시작된다. 마술사이자 건축가인 콜미가 반공간과 반시간, 혼돈과 공허가 공존하는 ‘본질적인 어떤 것’을 보여주기 위해 최고의 경지에 이른 예술의 정수, 깊이를 알 수 없는 통찰력의 산물로 통로를 만들었다. 주인공 부부는 다른 단편의 주인공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을 호기심과 탐험정신으로 빠져나올 수 없을 지도 모르는 그 통로로의 여행을 감행한다.
  
이 기사를 보고 편지를 보내온 형식으로 돼 있는 <교외의 집>은 빈 공간만이 빽빽이 꽉 찬 4차원적인 공간으로 동서와 남북이 같은 면이다. '추신'이란 편지형식을 빌려 모든 악의 비밀은 그 안에 아무 것도 없다는 데 그 본질이 있다는 것으로 나치시대상황을 강하게 풍자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시대적 상황을 배제하고 상식과 편견이 본질을 가리는 어떤 상황에라도 적용해 읽을 수 있어 시대적 상황을 굳이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두 편의 공간 이야기가 비교적 무거운 느낌을 주는 반면, <조금 작지만 괜찮아>는 자동차에 대한 보편적 상식을 가볍게 무너뜨리는 유쾌함이 돋보인다. 자동차의 주인도 역시 미하엘 엔데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직업인 마술사다. 복잡하고 주차장도 없는 대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 자동차 외부는 줄이면서도 내부는 넓게 만드는 기술을 선보인다. 이것은 그냥 어느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아주 확실하면서도 환상적인 주차장 해결책으로 차고까지 마련해 가지고 다니는 데 독자들은  차고를 마지막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차고 뒷문으로 또다른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이미 미하엘 엔데를 아는 독자라면 그 곳까지 넘나들고 그의 상상력에 욕심껏 동참할 것이다. 이 주차장의 끝은 어디일 것이며, 또 그 끝은 어디일 것인가. 이처럼 <보르메오 콜미의 통로>와 <교외의 집>과 이 자동차는 끝없이 펼쳐지는 세상의 한 통속이다.

<미스라임의 동굴>은 지하묘지 ‘카타콤베’가 배경이다. 묘지에서 연상되듯 그림자들은 죽은 영혼일 수 있다. 그러나 꼭 죽은 영혼일 필요는 없다. 살아있으면서도 그 그림자들처럼 어떠한 의미, 이유를 생각지 않고 현재 상황에 만족하며 지시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규칙대로 관리되고 있으며 자기기만이나 미망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미망진압대와 어떠한 고통도 느낄 수 없도록 하는 신비한 버섯 ‘굴’이 있는 동굴을 사회로 표기해도 달라진 것은 별반 없다.  ‘시간의 변화’나 ‘언제’란 물음은 의미 없는 질문이며 시간이란 애초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끝없이 반복되는 현재일 뿐이란 그림자들의 사고에서 ‘모모’의 회색그림자를 연상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창문’을 그리고 다니는 호기심 강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여기서 창문이란 밖을 내다볼 수 있는 도구이며, 기억 속의 기억이다. 진정한 자유를 공포라 생각하는 그림자, 자유의지를 가진 주인공만이 세상의 진실을 말하지만 그 누구도 동굴안의 쇄놰된 편안함을 거부하지 못한다. 다른 그림자들이 기억 속의 기억을 거부하고 혼자 문 밖으로 나온 주인공이 본 세상은 어떤 것인지 그 해답은 다른 단편들처럼 여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아있다.      

이처럼 여러 단편들을 하나의 목소리로 들리게 하는 것은 몇가지 공통된 장치들 때문이다.  그것은 마술사, 보편타당함과는 거리가 먼 건축물, 문, 끊임없이 시간과 공간 내면의 본질을 탐색해 들어가는 주인공들의 특성이다.

‘문’은 사람들에게 끝없이 도전정신을 심어주며 목표를 제시하고  열고 나가라고 유혹한다, 사릴이 목숨을 걸고 오른 인도 힌두쿠시 궁전과 창문, 콜미의 통로, 지하묘지에 그려놓은 이브리의 창문,  인샬랴가 갇혔던 자유의 감옥의 111개의 문, 인디카비아를 진짜 기적의 세계로 안내하던 ‘문’이 도전과 목표, 유혹의 대상이다. ‘문’은 끊임없이 본질을 탐색하는 주인공들의 지향점을 상징한다. 그러나 도착점인 문을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또 다른 탐색으로의 시작점인 ‘문’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는 ‘문’의 이쪽과 저쪽에서 하나를 맺고 또 하나를 시작해야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들은 대부분 마술사다. 마술이란 현실세계에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허용하는 매개체다. 그 덕분에 우리는 마음껏 흥미진진함을 누린다. 그러나 마지막에 단편에서 마술이 주는 급반전을 맛본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잡이의 전설>의 주인공 인디카비아가 평생을 영적인 기적을 좇아 그 해결책으로 마술을 선택하지만 그것은 기적의 진실을 부정하는 것이었고 순수함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었다. 뒤늦게 마술의 속임수를 알리고 마술이 주는 기적이 아닌 순수한 기적이 있음을 알렸을 때 사람들은 자신들을 철저하게 속이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원하는 기적이라 말한다. 우리는 마술이 거짓인 줄 알면서도 마술을 믿는다.  마술이 허용한 상상력에 의지해 이야기에 몰입하던 독자들에게 작가는 마지막 단편에서 모든 것이 다 거짓이라고 말해 당혹시킨다. 그러면서 진짜 기적은 바로 순수한 ‘너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독자들을 흡입해 자신이 세계로 안내하고 있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호기심 많고 자아의식이 분명한 인물들이다. 깊은 성찰과 탐색으로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철학자이며 끝까지 자신의 목소리를 따라 여행하는 탐험가며 자신이 부여한 가치를 위해서는 세상을 흔들 수 있는 부와 명예도 한순간에 포기해버리는 결단가다.

  여러 가지 공통된 장치들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것은 바로 주인공들이 도착한 목적지의 모습을 명쾌하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인공들의 결코 쉽다고 할 수 없는 철학적 질문과 논리 정의를 따라 힘겹게 목적지까지 동행한 독자들에게 작가는 어떤 해답 대신 또 다른 질문을 던질 뿐이다. 책에서 바통을 이어받은 우리들은 끊임없이 자신 안에서 계속되는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여행가 막스 무토는 이렇게 말한다.  
  “나, 막스 무토는 이미 자신의 목적지에 도달해 있는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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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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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를 아물게 하는 두 가지 방법

                                       -‘유진과 유진/이금이/푸른나무’를 읽고-

 곧게 서 있는 나무와 조금 삐뚤어진 나무. 책 표지에 우뚝 서 있는 두 그루의 나무는 두 유진을 대변하는듯한 상징물이다. 남자아이든, 여자 아이든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 두 유진의 모습은 이제 불행한 어떤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우리가 그 아이들의 엄마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다.

 언젠가 집단 상담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보았다. ‘만약 당신의 중학생 딸이 임신을 해 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이런 상황을 상상이나 해서 쉽게 답할 수 있겠는가. 답을 선택하는 몇 분 동안 사람들 머릿속에서는 수없는 생각이 오갈 것이다. ‘아이의 생명이냐,  딸의 인생이냐,’ 두 가지 갈림길에서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 재빠른 결론을 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딸과 함께 병원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의외로 그 답을 말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것은 그 해결책이 우리사회에서 살아가야할 딸과 태어나서 고통 받아야 할 아이에게 최선책이라는 사회경험에서 나온 확신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아이의 생명을 택해야 한다는 사회적, 도덕적 나와 딸의 인생을 생각하는 개인적 나가 충돌하겠지만 결국 나는 사회적 체면을 중요시하는 선택을 할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끝없이 당장 눈앞에 다가온 걸림돌을 해결해야한다는 유혹을 떨쳐낼 수 없어 괴로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사회의 어떠한 지탄도 받지 않는 훌륭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게 닥친 일이 아니라 가상질문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런 셈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딸이 성폭행을 당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진지하게 대답을 요구한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를 목욕탕에 데리고 들어가 때수건으로 살갗에 피가 맺히도록 문질러 아이의 기억에서마저도 철저하게 지워버리려 한 작은 유진의 엄마처럼 바닥에 가라앉아 썩어가는 부유물이 있을지언정 고요한 수면만을 바랄 것인가, 큰 유진의 엄마처럼 온 가족이 그 상처를 보듬어 안고 숨기지 않고 인정하면서 딸과 함께 극복하려고 오랜 시간 노력할 것인가. 우리는 선택을 강요받고 그 결과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따라 읽어가야 한다. 엄마의 어떠한 선택이 아이의 마음과 영혼을 파괴하고 피폐하게 만드는지, 어떻게 상처가 아물며 딱지가 떨어져 함께 극복해나는지 마치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그 결과를 확인할 수밖에 없다.

 책을 다 덮고 나서 부모들은 그 물음에 감사하게 된다. 어느 날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닥칠 불행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부딪쳐나가야 하는지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부모가 철저히 아이의 입장이 돼야한다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것은 부모의 체면이나 고통 상처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아이중심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유진의 가족이 집안의 체면이나 부모입장을 먼저 생각하다가 더 빨리 아물 수 있는 상처를 오랫동안 곪게 했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장 가까워야 할 엄마가 아이 편이 돼 주지 못했을 때 아이는 성폭행의 상처보다 더 크고 깊은 상처를 떠안게 되는 것이다. 작은 유진의 엄마는 딸에 대한 죄책감으로 크나큰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쌓아놓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유진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주고 말았다. 작은 유진의 엄마에게 화가 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수많은 엄마들을 향한 것이었다. 부모와 자식의 대화단절이 불행한 사고보다 얼마나 더 큰 불행인지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곧게 자라는 나무도 굽고 옹이가 많은 나무도 모두 햇살을 향해 뻗어 큰다. 햇살은 그런 나무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상처투성이 나무도 빨리 상처를 잊고 올곧게 설 수 있도록 더 많은 햇살을 나눠주어야 한다. 부모로서 이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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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가 고백하는 전쟁의 진실   

‘그 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한스 페터 리히터/보물창고’를 읽고 -

 

 

 ‘그 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는 우리가 ‘유태인 학살’하면 떠올리는 끔직함을 떠올리지 않으면서도 전쟁의 참혹함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전쟁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인 독일소년의 눈으로 전쟁을 얘기하고 있디. 그동안 처참한 유태인 학살이 자행되었던 현장을 빗겨서서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평범한 독일인의 상처가 함께 드러난다. 전쟁에 승리자는 없다는 말이 있듯 역사의 폭력 앞에서 자신의 비겁함을 고백해야하는 독일인의 고뇌가 느껴진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은 가해자의 몫을 짊어진 피해자라는 것이다.

 

‘그 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는 독일 소년 하인리히 목소리로 재빠르게 전개된다. 우리가 상상한 것처럼 ‘안네의 일기’나 ‘희망의 섬 78번지’처럼 처참한 게토 생활이나 가스실, 비밀공간에서 숨어사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책 서두에서처럼 ‘그 이전의 이야기’로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극도의 공포 이전의 평화와 서서히 전개되는 공포심이 나올 뿐이다.

 

유대인 프리드리히와 독일인 하인리히, 두 소년은 한 집 위 아래층에 세 들어 살면서 친해진다. 우체국 공무원 아버지를 둔 프리드리히는 넉넉한 생활을 했으며 나치당원이 되기 전까지 궁핍한 생활을 하던 하인리히 집안과는 사이좋게 지냈지만 유대인 학살이 진행되면서 하인리히는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프리드리히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신세가 된다.

 

역사의 진실을 말하는 노이도르프 선생님이 인상적이다. 학교를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유태인 프리드리히를 위해 모두가 미친 듯 유대인 학살로 치닫고 있는 한 복판에서 제자들에게 역사를 바로 알린다. 이천 년 박해를 이겨낸 유대인의 역사를 통해 존중받아야 할 점과 이해해야 할 것, 유대인이 위대한 학자와 예술가가 배출될 수 있었던 우수한 민족임을 알려준다. 그것은 용기였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진실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독일을 떠나라는 하인리히 아버지의 권유에 프리드리히 아버지 슈나이더는 독일을 탈출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이천 년 전 로마의 박해를 피해 조상들이 이스라엘를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 유대인의 처지는 달라졌을 것이란 말을 한다. 고난한 민족의 수레바퀴가 강인하고 의연한 민족성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 역사에서 배울 교훈이다.

 

독일인은 유대인 학살의 근거지인 아우슈비츠를 보존해 자신들의 역사를 철저히 반성하고 있다. 하지만 거대한 폭력으로 수없이 쓰러져간 사람들에게 그것은 어떠한 변명도 되지 못한다. 친구가 눈 앞에서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가고 있을 때 그것을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던 하인리히의 고통은 남은 독일인들이 겪어내야 할 또 다른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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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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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 말을 듣고 있어' 수용과 이해의 기적

-'모모/미하엘 엔데'를 읽고 -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란  '난 당신 말을 듣고 있어요'. 이 이상 쉬운 해결방법은 없다. 부모역할교육(P.E.T)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도 자녀에 대한 수용과 이해의 감정이다. 부모란 자녀에게 좀 더 수준 높은 교육, 문화적 혜택, 윤택한 삶을 제공해 주는 것만이 아니라 자녀의 말에 귀기울여주는 것이다. 자녀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서둘러 평가하거나 단념하지 말고 끝없이 수용하고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사회에 적용한다면 사회적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에 귀기울여 주는 것이 된다.

  8살 소녀 모모는 부모에게서, 친구들에게서, 이웃에게서, 사회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거부당한  상처로 마음을  닫아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수용과 이해로서의 부모역할을 하고 있다. 특별한 능력이나 화술로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말에 귀기울여 줌으로써 사람들 마음   속에 숨어 있던 해답을 스스로 찾게 한다. 기계에 똑같은 형태로 쏟아지는 장난감을 가지고 이미 만들어진 규칙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상력을 빼앗긴 아이들에게는 상자 하나로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을, 다투고 빼앗고 뒤돌아볼 여유없이 숨가쁘게  앞만을 향해 나가는 어른들에게는 '여유'를 생각하게 한다.

 '시간은 금이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를 신념으로 삼고 있는 어른이라면 모모에게서 스스로 놓치고 만 커다란 보물이 무엇인지 듣게 된다. 학원, 학습지, 텔레비전, 컴퓨터가 유일한 놀이터인 어린이라면 모모를 만나고 꿈과 환타지를 만나게 된다. 메마르고 각박한 세상에 홀로임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도로청소부 베포, 허황된 거짓말쟁이 기기,  길을 잃은 아이에게 닻별이 돼 주는 카시오페이아는 따뜻함을 전해줄 것이며, 회색신사들의 섬뜩한 괴기스러움은 그 따뜻함을 더욱 간절하게 할 것이다.

 회색그림자들에게 시간을 빼앗긴 현대인들에게 시간을 되돌려 주기 위해 모모는 외로운 여행을 한다. 호라박사의 도움으로 다시 베포는 한 걸음 다음에 오는 한 걸음을 사랑하게 됐으며, 기기는 저절로 샘솟는 상상력을 발휘해 사람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느 이야기꾼이 된다. 각박하게 돈을  좇아 살던 이웃들과 탁아소에서 맞춰진 규율로 상상력을 잃어가던 어이들이 모모의 원형극장으로 되돌아 올 때는 바람 한 줄기, 구름 한 족가만으로도 행복한 사람들이 돼 있다.  

  상상력, 깊은 사고, 삶의 여유와 풍요, 이 모든 것은 바로 모모의 '난 네 말을 듣고 있어'의 수용과 이해에서 비롯된다. 지금 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말에 난 얼마나 귀기울이고 있는가, 그것이 나와  그 사람의 행복을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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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박재동 외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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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

-‘십시일反/창비’를 읽고 -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차별을 경험한다. 가정에서의 성차별, 학교에서의 성적차별, 사회에서의 빈부, 계층차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문제가 큰 이슈가 되기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 내재된 수많은 차별을 직, 간접으로 경험해 왔다. ‘십시일반’이란 열사람이 조금씩 모아 한 사람을 돕는다는 뜻이지만 ‘반(飯)’이 ‘반(反)’이 되면서 열사람이 한 목소리로 반대한다는 뜻이 됐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을 제치고 앞장 서 우뚝 서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 천천히 함께 가자고 말 한다. 

 책에 처음부터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만화들이 나온다. 특히 충격을 받은 만화를 들자면 바로 박재동씨가 그린 '내 방으로요'이다. 흑인 외국인 노동자가 손이 잘렸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장은 ‘고향으로 갈래? 니 방으로 갈래?’ 라고 질문을 하고 외국인 노동자는 '내 방으로요'라고 답하는 그림이다. 외국인 노동자는 최소한의 권리도 없단 말인가. 손이 잘렸는데 병원은 보내주지도 못할망정 ‘고향으로 갈래, 니 방으로 갈래’ 하고 있으니, 외국인 노동자 입장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기 방으로 간다고 할 것이다. '머나먼 신호등' 역시 장애인과 노인들을 그린 그림이다. 신호등은 아직도 한참 앞에 있고, 그 주위에서는 금방이라도 집어 삼킬 듯한 파도들이 으르렁대고 있다.

 가장 어이없으면서도 황당한 만화를 고르라면 역시 '최종합격'이다. 주식회사에서 면접을 보는데, 질문을 계속 하다가 마지막 입사성적, 출신성분, 학력이 똑같은 두 명의 사람이 단지 한명은 부모님이 국회의원이고 한 명은 선생님이라고 최종합격을 국회의원의 아들로 뽑다니. 우리 사회가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 많은 것이 답답하다.

 빈부 격차가 잘 들어나 있는 만화는 '누렁이 1'이다. 아파트 1단지 60평 이상, 2단지 40평 이상, 20평 이상, 강아지들은 그런 것 상관하지 않고 잘들 노는데 초등학생도 안 되는 여자아이들이 자기들끼리 구분을 지어놓고 따로따로 놀려고 하는 것을 보니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특히 1단지 아이의 생일파티에서 같은 코커스패니얼 종인데 1단지 사는 아이의 강아지는 영국, 러시아에서 챔피언을 했다고 같이 놀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한탄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종합해 놓은 그림이 바로 '삶의 무게'이다. 제일 위에 남자가 있고, 그 아래 여자, 그 아래 여자+가난한 사람 그 아래 여자+가난한 사람+외국인 노동자. 우리사회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다.

 우리사회 곳곳에는 불공평한 것들이 너무 많다. 다 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몸의 색 때문에 차별받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다고 차별받고, 모든 인간은 평등한 것인데, 이렇게 차별을 두다니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은 자신의 치부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하지만 나를 웃기게 해주면서 약간의 감동은 주는 만화가 있었으니, 바로 이우일의 '아빠와 나'이다. 현실 사회를 아주 재미있게 아들과 아빠의 대화로 만들어 놓았는데, 웃기면서도 인상 깊었다. 이 책을 읽고 난 사람들에게 마지막에 아빠와 아들을 읽어 보기를 원한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문제점은 그 누구 하나가 노력한다고 바뀌지 않을 것을 확실히 알고 있기 바란다. 우리사회의 문제점은 우리 모두가 참여하여 노력한다면 그제야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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