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을 읽는다
박희병 지음 / 돌베개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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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이 드리운 뜨락에 여름새들이 찍찍 짹짹 울고 있더이다. 나는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이렇게 외쳤소이다. 

  “저것이야말로 ‘날아가고 날아온다’ 라는 문자이고, ‘서로 울며 화답한다’ 라는 문장이다! 갖가지 아름다운 문채를 문장이라고 한다면 저보다 더나은 문장은 없으리라. 오늘 나는 진정한 글읽기를 했노라!”

p.430

  최근 ‘고미숙’ 선생님을 통해 연암을 접하게 되었다. 이번 학기에 개설된 강의와 선생님의 저작을 통해서 연암과의 만남을 주선해 준 셈이다. 선생님이 강의할 때, 주로 이야기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Text 속으로 들어가라’ 

  ‘고전을 외우다시피 해봐라. 그리고 생각해봐라.’

  ‘작품을 오롯이 읽는 것만이 정도正道이다.’

  그래서 이번에 교재로 쓰인 ‘나비와 전사’를 통해서 연암과 푸코가 맞닿아 있는 접점을 살펴보면서 연암에 대해 좀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늘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2% 있었는데, 일단 연암을 직접 대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고미숙’ 선생님의 글을 읽은 후에 늘 생겨나는 물음은 ‘연암의 글 전체를 읽어보고 싶다’였다. 선생님이야말로 전체를 오롯이 읽어보길 권했으니.. 물론 국어를 전공하고 있는 내가 조금만 노력한다면 연암의 글들은 손쉽게 읽어볼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만약 원본을 직접 접한다고 해도, 까막눈인 나에게는 연암을 쉽게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갈증 속에서 찾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일단 연암에 관한 ‘자습서’를 만난 기분이랄까. 다분히 ‘교과서’적인 ‘자습서’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내용은 교과서처럼 틀에 박힌 글들이 아니다. 독자와 함께 연암 속으로 들어가자고 ‘박희병’ 선생님은 권한다.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밑바닥에 깔면서 Text를 ‘원문->문단(의미별로 나눔)->주해(알기 어려운 단어나 구절풀이)->평설’ 이라는 형식으로 연암의 글들을 읽어나간다. 같이 따라가면 연암이 왜 유쾌한지, 그의 글을 그 당시 왜 문제가 되었는지, 그의 글쓰기는 얼마나 파격적인지 알 수 있다.   

  한국에는 지금도 호가호위적 학문과 호가호위적 글쓰기가 횡행하고 있다. 연암이 말한 바와 다른 게 있다면 모방과 표절의 대상이 중국 책에서 서양 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아무 차이가 없다. 데리다가 유행하면 데리다를 흉내 내서 말한다. 들뢰즈나 푸코를 베끼는 데 열심인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연암 읽기도 포스트모더니즘의 권위를 빌려서 한다. 그럼에도 자기가 뭐라도 된 것처럼 우쭐거린다. 모방은 아무리 잘해봐야 모방일 뿐, 창조는 아니다. 앵무새가 사람으로 화化할 리가 있는가. 혹 모방에서 창조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모방은 모방이고 창조는 창조다. 둘은 본질상 다르다. 이 점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호가호위적 글쓰기를 하면서도 우쭐대는 사람은 부끄러움이란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다. 망상이 깊으면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p.388

  사족이지만 한마디 덧붙인다. 이 단락의 나비 잡는 아이의 비유를 시니피앙(記標)과 시니피에(記義)의 관계로 설명하거나 데리다의 차연差延(differance) 개념을 빌려 와 ‘대상을 글로 포착했다 싶으면 대상은 그 순간 벌써 미끄러져 나가 버린다.’ 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야단스럽게 해석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이는 망발이다. 식자우환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한문 문리도 부족하고, 문맥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으며, 생각도 짧고,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이를 메우기 위해 함부로 외국의 권위에 기대고 있으나,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는 형국이라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이러니 우리 학문이 여전히 식민성을 못 벗었다는 게 아닌가.

p.455

  연암의 'Text'를 직접 만날 수 없다는 것이 ‘고미숙’ 선생님의 저작을 읽은 후의 갈증 1%에 해당한다면, 나머지 1%는 이야기 전달 방식의 난해함이라 할 수 있겠다.

  <유목, 유목민(노마드), 리좀, 수목, 표현기계, 배치, 계열, 탈영토화, 재영토화 등등>

 위에 열거한 것들은 ‘고미숙’ 선생님이 글을 쓸 때 주로 사용하는 개념이다. 물론 어떤 책을 읽으면 이 개념을 알 수 있는지 친절하게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나에겐 너무나 난해한 개념이다. 후에 <철학과 굴뚝청소부>를 통해 아주 간단한 개념의 맛은 볼 수 있었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독자들에겐 낯설게만 느껴지는 개념이다.

  ‘박희병’ 선생님은 이 책에서 그 점을 꾸짖고 있다. 외국의 개념을 빌리는 것 자체가 연암에게서 멀어짐이고, 왜 그런 개념을 빌리고 있는지 우스꽝스럽기만 하다고 한다. (‘고미숙’ 선생님의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나 무식하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퓨전’은 하나의 일시적인 현상이고 새로운 방법에 불과하니 ‘고전’을 ‘거죽’만 읽으면서 아는 체 할 것이 아니라 그 심부까지 보고 거기에 깃들여 있는 마음을 이야기하도록 이야기하고 있다.

  얼핏 만난 ‘연암’을 막연하게 팬이라고 자청하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팬클럽 회원이라면 최소한 가수의 음반목록이나 배우의 출연한 작품목록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물론 진정한 팬은 그 대상의 모든 것을 오롯이 가슴 속에 품고 있어야 하겠지만. ‘고미숙’ 선생님도 아마 이런 방법을 취하셨을거다. 고전을 알기 위해 고전 속으로 ‘풍덩’ 하고 빠지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다시 소화해내는 과정에서 조금은 거칠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고미숙’ 선생님의 노력으로 ‘연암’이 사람들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긴 했지만, 그것은 ‘수박 겉핥기’식이 아니었는가 생각해본다. 조금만 눈높이를 낮춰서 일반 대중에게 번역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책은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연암의 팬이라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좀 더 많은 독서를 해야겠다. ‘연암’ 관련 책 중에 우선 순위는 아마 ‘박희병’ 선생님의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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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만루홈런 2007-01-16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와 전사> 당연히 읽어봤죠!!
지난학기때 수업교재였습니다.. 물론 선생님은 고미숙 선생님이었구요..
아주 즐거운 수업이었습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이 책을 따로 접했는데, 뭐 고미숙 선생님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이쪽도 참 재미있다는 이야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