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부>
개의 공부는 매우 복잡해.
개는 우선 세상의 온갖 구석구석을 몸뚱이로 부딪치고 뒹굴면서
그 느낌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야 해.
그리고 눈, 코, 귀, 입, 혀, 수염, 발바닥, 주둥이, 꼬리, 머리통을
쉴새없이 굴리고 돌려가면서 냄새 맡고 보고 듣고 노리고
물고 뜯고 씹고 핥고 빨고 헤치고 덮치고 쑤시고
뒹굴고 구르고 달리고 쫓고 쫓기고 엎어지고 일어나면서
이 세상을 몸으로 받아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지.
<2부>
주인님의 몸에서 나는 경유냄새는
고단하고도 힘찬 냄새였는데,
어딘지 쓸쓸한 슬픔도 느껴지는 냄새였다.
나는 그 경유냄새를 아침바다의 차갑고 싱싱한 안개냄새보다
더 사랑했다. 그것은 일하는 사람이 풍기는 냄새였고,
내가 지키고 따르고 사랑해야 하는 냄새였다.
<3부>
밤중에 달을 쳐다보고 짖는 개는 슬픈 꿈을 꾸는 개다.
새파란 칼처럼 생긴 그믐달의 가장자리가
어두운 밤하늘에 녹아들면서 희미하게 빛날 때,
슬픈 개는 점점 사라져가는 달을 향해 우우우우 운다.
달은 개를 손짓해 부르지만 달은 개의 울음을 듣지 못한다.
알 수도 없고 다가갈 수 없고 발 디딜 수 없는
그 먼 것을 향해 개는 울고 또 운다.
<4부>
내 마지막 며칠은, 가을볕에 말라서 바스락거렸고
습기 빠진 바람 속에서 가벼웠다.
어디로 가든 거기에는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안개 낀 새벽과 저녁의 노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고 세상의 온갖 냄새들로
내 콧구멍은 벌름거릴 것이다.
그의 책을 또 습관적으로 읽게 되었다. 짧게 말하는 그의 문체는 사람을 정떨어지게도 할 법 하지만, 다시 또 찾게 되는 은밀한 매력이 있다. 글에 군더더기가 거의 없게 만드는 것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닐 것이다. 키보드로 두들겨서 나온 활자가 아니라 그만의 펜으로 꾹꾹 원고지에 눌러 밖은 것이기에 우리는 깔끔한 문장을 손쉽게 볼 수 있다.
가벼운 크기에 적당한 내용을 담은 듯 하여 평범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개의 시선에서 보는 시각으로 우리네 생활을 다루고 있어 나름대로 신선하게 읽었다. 중간에 보이는 바다와 배 그리고 이른 아침에 바닷가에서 끓여 먹는 라면 이야기는 예전에도 언급된 적이 있기에, 그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읽었다. 김훈의 문향(文香)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어 좋았으나, 자꾸만 예전 모습이 오버랩 되어서 신작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은 덜 했다. 여전하다고 할 수도, 그만의 향기일 수도,,,
마지막 장면에서는 '현의 노래'가 생각난 것은 왜 일까.
자꾸 그를 들여다보니 너무 많이 그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 같아서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랴, 그는 매문(賣文)하는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또 자전거여행기가 어느 정도 쌓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서 예순을 바라보는 그의 건강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