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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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수명은 무한하다. 그래서 수백년의 수명을 지니는 고전(古典)도 존재한다. 가끔씩 고전을 읽다 힘에 겨워하는 것은 인간의 수명이 유한하기 ‹š문이 아닐까. 굳이 고전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화제가 되었던 책을 뒤늦게 읽다 보면 왠지 체할 것 같은 기분이다. 빨리 읽어 봐야겠다는 조바심이 앞서서일까. 그 시대와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

들어가는 글이 의외로 길어지는 것 같아 다소 당황스럽다. 난 '기형도 전집'을 읽었다. 그의 유품 및 기타 등등이 이쁘게 포장되어 있는 종합 선물 세트. 어떤  사람은 '기형도'이름을 보더니 수학 공식이 아니냐고 물어본다. 그럴 수 있다. 나 또한 그를 늦게 알았으니.

시, 소설, 산문, 자료 등이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은 적당한 가격에 전집다운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를 읽다보면 어느새 어두운 그림자가 책갈피 사이사이로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그의 시어들은 새벽까지 점등되어 있는 가로등처럼 뿌옆게 빛나고 있어 무턱대고 지차닐 수 없다.

'안개' '대학시절' '추억에 대한 경멸' '그 집 앞' '빈집' '소리의 뼈'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등이 주목할만 했다. 지나치게 주위에서 들어온 그의 이름값은 책장을 넘길수록 나에게 있어 상한가를 치고 있었다. 처음 접해본 그의 산문들은 새로운 매력이었다. 몇 편의 소설은 경험에서 나온 것 같아 어슴푸레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보게 햇다. 하지만 이런 글들로 그의 스무아홉 인생을 알 수 있을가. 다만 지금도 희미하게 남아 있는 그의 체취를 느낄 뿐. 그의 글을 문고판 크기의 시집으로 읽지 못하고, 하드커버의 클래식한 전집으로 읽어야 했던 것이 나에게 있어 큰 아쉬움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체할 것 같았던 느낌이 그거였을가. 따뜻한 방안에 앉아 그의 아픔들을 웃으면서 이해할려고 했던 노력. 마음속으로 페이지를 접어 놓은 시 한편을 적으며 그를 생각해본다.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춧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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