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스무번째 맞았던 내 생일날 받은 생일 카드 중에 이런 말이 씌여진 것을 기억한다.

'준한아, 너의 향기는 참 푸르구나...'

그 카드를 오랫동안 간직하며 좋아했었다. 나에게도 향기가 있다니, 수학시험 100점 맞은 것보다 더 뿌듯했다. 모든 사물에는 향기가 있는데, 그 중 사람의 향기가 가장 오래 지속되는 것 같다. 그에 비할 것을 든다면, '책'정도가 있겠다. 1985년도에 만들어진 향기가 91년도에 우리나라에 넘어와 아직도 은은하게 퍼지고 있는 책이 '향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생소한 문화인 '향수문화'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더니, 이내 작가의 문체에 매료되어 마지막 장을 덮게 만든다. 나도 보통사람이기에 똑같이 빠져들었다.

'그르누이'의 일대기이기도 한 이야기는 어딘가 영웅의 일대기와 많이 닮아 있다.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나나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기에 기회를 기다리며 많은 고생을 겪는다. 그러다 세상과의 소통을 시켜주는 매개자를 만나, 철저히 그를 이용하며 세상으로 한발짝 나선다. 자신이 가진 천부적인 재능을 세상에서 쓰이는 기술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그르누이는 세상의 모든 향을 자기 머릿속에 넣기 시작하낟. 가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향수의 일부를 사람드에게 소개하여 자신의 능력을 알아간다. 그러던 중, 자신의 꿈을 위한 수련을 하게 되는데, 이는 영웅이 멋진 끝내기 한판을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는 과정과 닮았다.

예전에 그가 끌렸던 한 여자아이의 향기를 추억하며,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사건을 만들기 시작한다. 사람의 향기를 모은다는 발상부터, 작가에겐 최고의 향기는 인간의 향기라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보인다. 천재적인 그는 마지막 여자아이까지 포함해 25명의 향기를 모아 최고의 향수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살인'이란 방법이었기에, 그는 사형에 이르게 되나 그 향수를 사용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되돌려 놓는데 성공한다.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며, 작가의 공식대로 설정된 구조에서 터져나온 하이라이트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그 향수가 맘에 들지 않았다. 최고의 향기들을 모아 만들었지만, 오히려 그에게는 구역질나는 냄새로까지 느껴졌다. 각자의 향기는 그대로 있을 때가 가장 향기로운 것이 아닐까.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그는 일생동안 해낸 것이 부질없는 짓임을 알게 되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다. 영웅의 일대기와 닮아 있으면서도 우리에겐 각자의 향기가 중요함을 알려주는 한 인간의 이야기. 중세 프랑스의 향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역사책이며, 동시에 새로운 향을 맡게 해주는 길라잡이.

지금까지 은은하게 퍼지고 잇는 '향수'책의 '향기'를 서점에서 맡을 수 있었던 것은 참 고마운 우연이었다. 그 우연에 감사하며, 각 사물들의 향기를 읽도록 노력해봐야겠다. 숙달되면 사람의 향기까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