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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
이상섭 지음 / 창비 / 2006년 12월
평점 :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그가 생각났다.
성석제. 걸출한 이야기꾼이면서 항상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보여준 그. 같은 경상도 사람이라 그런 것일까. 아무튼 오랜만에 시원시원하게 읽히는 소설을 만났다. 그리고 입말(구어)을 자연스레 책으로 옮기는 재주도 정말 훌륭했다. 그대로 읽기만 해도 경상도 사투리가 내 입에서 줄줄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실은 나도 경상도 사람이다. 생후 10년짜리이긴 하지만)
이야기꾼을 자처하면서 작가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걸쭉한 입담으로 살아있는 소설이 어떤 것임을 보여준다. 우리 주위에 늘 있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고 그 사람들이 웃고 울고 떠드는 이야기. 익숙하지만 그것을 지루하지 않게 조금 새롭게 변주해나간다. 이것이 작가의 능력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작가는 토박이말을 풍성하게 활용한다.
'눈풍년, 말방석, 그물눈치, 그물목욕, 입섞기, 굼뜬 낙지걸음, 눈멀미, 모들눈, 잠비늘, 며느리 험구덕, 동부레기, 남정바리' 같은 토박이 말을 쓰는 것과 경상도 방언을 재현하는 솜씨는 신인다운 구색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능숙하다.
그리고 능청스러운 말놀이와 해학적인 표현도 능숙한데, 동음이의어를 활용한다거나 배<腹>와 배<船>, 포경<包莖>과 포경<捕鯨>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건 허구한 날 술주전자 주둥아리나 빨 줄 알았지 마누라 주둥이 한번 빨 줄 모르니 생각만 해도 기가 찼다"(고추밭에 자빠지다) 혹은 "인생은 '역전'이 아니라 '여전'이지 않던가"(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 등의 표현이 능청스럽기 그지없다.
오랜만에 시원하게 내리읽어서 좋았다.
즐거운 이야기를 읽는 일은 정말 시원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