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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로부터 김영하를 처음 소개받은 것은 97년 늦여름이었다. 뜨거운 햇살이 가라앉고 서늘한 바람이 일기 시작할 즈음 구석진 방에 틀어박혀 순식간에 읽어내린 책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였다. 조금은 진부해진 생활의 틈새로 김영하의 소설은 스며들었고 그 이후로 그의 작품을 해바라기처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의 소설은 일정하게 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일상과 환상, 에로티시즘과 나르시시즘, 삶과 죽음, 소통과 침묵...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환상 속에 발을 담그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한다. 아니, 어쩌면 그의 소설에서 그 의미를 양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간격사이에서 혼란을 야기시키지도 않는다. 그것은 우리 내면에 자리잡은 은밀한 감정의 발로이며 한번쯤 꿈꾸어 봤을 몽상이다.
사전 지식 없이 첫 장을 펼치면 소름이 돋는다. 애인과 데이트를 즐기면서 다른 이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권태로움, 길을 걷다가 마주 오는 여인의 다리를 남몰래 훔쳐보다가 들켰을 때의 민망함, 군중 속의 고독감을 소설 속에서 본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정상인과는 거리가 있다.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고 화합을 이야기하는 자를 싸늘하게 비웃는다. 그러면서도 혼자만의 방법 - 등장인물들은 컴퓨터, 게임, 음악 등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 으로 소통의 욕망을 이루려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정체성을 잃은 지 오래지만 둔감해진 것 역시 오래다. 일탈을 꿈꾸지만 깨어보면 비루한 일상이 놓여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질문하나, 그런데도 등장인물들은 왜 낯설지 않을까?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는 총 9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불륜을 저질렀던 아내와 형식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형사가 일요일에 발생한 사진관 살인사건을 추적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사진관 살인사건', 옛 사랑을 우연한 기회에 재회하고 사랑에 빠진 순간 점점 투명한 인간이 되는, 그러나 잠시나마 애정을 바쳤던 여인이 그가 부재한 사이에 다시 다른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이 있으나마나 한 존재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고압선', 통신 동호회 "아다드"라는 모임에 가입하면서 벼락맞는 체험을 즐기는 인간 피뢰침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는 '피뢰침', 자신의 남편이 거세된 흡혈귀라 믿는 아내의 이야기 '흡혈귀', 뒷골목 건달들의 치열한 삶을 다룬 '비상구' 등 이야기는 극에서 극으로 치달으면서 인생의 피로감을 얘기하고 인생의 아이러니를 얘기한다.
여기 한 노승의 말을 인용해보자.
'모든 사물의 틈새에는 그것을 부술 씨앗들이 자라고 있다네. ...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밀림에서 뻗어나온 나무들이 앙코르의 모든 사원을 뒤덮고 있었지. ... 그때까지 나무는 두 가지 일을 했다네. 하나는 뿌리로 불상과 사원을 부수는 일이요, 또 하나는 그 뿌리로 사원과 불상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도록 버텨주는 일이라네. 그렇게 나무와 부처가 서로 얽혀 9백 년을 견뎠다네. 여기 돌은 부서지기 쉬운 사암이어서 이 나무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흙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 사람살이가 다 그렇지 않은가.'
김영하의 소설은 서정성에서 많이, 아주 많이 비켜서 있다. 김영하는 서정주의 문학을 거부하는 이유를 '누구나 서정성을 좋아하고 쓰려고 하기 때문에 그 반대의 길을 찾고있다'라고 명쾌하게 이야기한다.
때문에 사변적 내용은 자제되고 감정의 사치를 억제하고 서사적인 이야기 구조 속에서 일상의 여러 단면을 건조하고 메말랐지만 은밀한 습기가 묻어나는 언어로 표면화한다. 별볼일 없는 초라한 인물들이 생활의 자극을 원하고 추구하려하지만 결국엔 다시 별볼일 없는 일상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음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한다.
섬뜩한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진실임에야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죽음과 환상의 구도 역시 그 비루한 현실을 비추기 위한 도구이며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아닐까.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김영하 소설의 매력을 찾는다면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