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71 | 7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로부터 김영하를 처음 소개받은 것은 97년 늦여름이었다. 뜨거운 햇살이 가라앉고 서늘한 바람이 일기 시작할 즈음 구석진 방에 틀어박혀 순식간에 읽어내린 책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였다. 조금은 진부해진 생활의 틈새로 김영하의 소설은 스며들었고 그 이후로 그의 작품을 해바라기처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의 소설은 일정하게 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일상과 환상, 에로티시즘과 나르시시즘, 삶과 죽음, 소통과 침묵...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환상 속에 발을 담그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한다. 아니, 어쩌면 그의 소설에서 그 의미를 양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간격사이에서 혼란을 야기시키지도 않는다. 그것은 우리 내면에 자리잡은 은밀한 감정의 발로이며 한번쯤 꿈꾸어 봤을 몽상이다.

사전 지식 없이 첫 장을 펼치면 소름이 돋는다. 애인과 데이트를 즐기면서 다른 이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권태로움, 길을 걷다가 마주 오는 여인의 다리를 남몰래 훔쳐보다가 들켰을 때의 민망함, 군중 속의 고독감을 소설 속에서 본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정상인과는 거리가 있다.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고 화합을 이야기하는 자를 싸늘하게 비웃는다. 그러면서도 혼자만의 방법 - 등장인물들은 컴퓨터, 게임, 음악 등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 으로 소통의 욕망을 이루려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정체성을 잃은 지 오래지만 둔감해진 것 역시 오래다. 일탈을 꿈꾸지만 깨어보면 비루한 일상이 놓여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질문하나, 그런데도 등장인물들은 왜 낯설지 않을까?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는 총 9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불륜을 저질렀던 아내와 형식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형사가 일요일에 발생한 사진관 살인사건을 추적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사진관 살인사건', 옛 사랑을 우연한 기회에 재회하고 사랑에 빠진 순간 점점 투명한 인간이 되는, 그러나 잠시나마 애정을 바쳤던 여인이 그가 부재한 사이에 다시 다른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이 있으나마나 한 존재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고압선', 통신 동호회 "아다드"라는 모임에 가입하면서 벼락맞는 체험을 즐기는 인간 피뢰침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는 '피뢰침', 자신의 남편이 거세된 흡혈귀라 믿는 아내의 이야기 '흡혈귀', 뒷골목 건달들의 치열한 삶을 다룬 '비상구' 등 이야기는 극에서 극으로 치달으면서 인생의 피로감을 얘기하고 인생의 아이러니를 얘기한다.

여기 한 노승의 말을 인용해보자.

'모든 사물의 틈새에는 그것을 부술 씨앗들이 자라고 있다네. ...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밀림에서 뻗어나온 나무들이 앙코르의 모든 사원을 뒤덮고 있었지. ... 그때까지 나무는 두 가지 일을 했다네. 하나는 뿌리로 불상과 사원을 부수는 일이요, 또 하나는 그 뿌리로 사원과 불상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도록 버텨주는 일이라네. 그렇게 나무와 부처가 서로 얽혀 9백 년을 견뎠다네. 여기 돌은 부서지기 쉬운 사암이어서 이 나무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흙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 사람살이가 다 그렇지 않은가.'

김영하의 소설은 서정성에서 많이, 아주 많이 비켜서 있다. 김영하는 서정주의 문학을 거부하는 이유를 '누구나 서정성을 좋아하고 쓰려고 하기 때문에 그 반대의 길을 찾고있다'라고 명쾌하게 이야기한다.

때문에 사변적 내용은 자제되고 감정의 사치를 억제하고 서사적인 이야기 구조 속에서 일상의 여러 단면을 건조하고 메말랐지만 은밀한 습기가 묻어나는 언어로 표면화한다. 별볼일 없는 초라한 인물들이 생활의 자극을 원하고 추구하려하지만 결국엔 다시 별볼일 없는 일상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음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한다.

섬뜩한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진실임에야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죽음과 환상의 구도 역시 그 비루한 현실을 비추기 위한 도구이며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아닐까.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김영하 소설의 매력을 찾는다면 무리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빈슨 크루소 따라잡기 신나는 노빈손 어드벤처 시리즈 1
박경수.박상준 글, 이우일 그림 / 뜨인돌 / 199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에 빠져본다. 무인도에 홀로 표류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안락한 오두막집에서 낮에 사냥한 고기와 물고기로 배를 채우며 신나게 뛰어 다니는 모습. 운이 좋으면 사냥을 나갔다가 또 한 명의 생존자, 그것도 이성을 만나 해피한 나날을 보내는 꿈... 그래 그것은 말 그대로 꿈이다.

아니면 무릉도원쯤 되겠다. 여기에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가 빠져있다. 아무 것도,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당장 어떻게 물을 마실 것이며 불은 어떻게 지필 것이며 맹수의 갑작스런 습격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아, 우리들은 만화와 영화를 너무 열심히 본 것 같다.

이 책은 무인도 표류라는 가정 하에서 시작된다. 책의 주 내용은 노빈손이라는 로빈슨 크루소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대학생이 여행 중 비행기사고로 홀로 무인도에 표류해 생존을 위해 애쓰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신세대인 노빈손은 무인도에 떨어지면서 모든 인생관이 바뀐다. 표류 전 그의 꿈은 영화배우였으나 표류 후 무인도 탈출로 바뀌었다. 무인도 표류 전 그가 존경하는 인물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였으나 표류 후 존경하는 인물은 로빈슨 크루소로 바뀌었다. 노빈손은 과연 살아남을 것인가?

그렇다고 이 책이 모험담이나 스릴러물은 절대 아니다. 노빈손이라는 대책 없는 주인공을 앞세우긴 했지만 생활 속의 과학원리를 흥미롭게 설명한 세미 과학서적이라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단지 무인도를 배경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그래야만 더욱 절실하고 머리에 쏙쏙 박힐 테니까. 책의 공동 저자가 과학소설 평론가이자 과학 칼럼니스트이며 여행, 문화 칼럼니스트라는 명함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구차한 설명은 생략해도 좋다. 거기에 보태어 도널드 닭으로 친숙한 이우일씨의 재미있는 일러스트가 책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독자는 바로 책으로 들어가기 전에 무시무시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식수 만들기, 식량 구하기, 불피우기, 뗏목 만들기 등 단계별 테스트를 통해 할 줄 아는 일이 2개 이상이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사망'이 된다. 심심풀이로 한다해도 통과되지 못하면 영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 만약 몇 단계를 통과했다면 조금은 자신감을 가지고, 첫 단계부터 막혀버렸다면 조금은 진지하게 책을 접하는 것이 좋다.

단순한 생활물리학적인 지식뿐 아니라 식물학, 식용학, 의학, 집짓기, 고립된 인간의 정신적인 압박에 따른 심신장애까지 다루고 있으며 이야기 전개에 중요한 과학용어나 과학상식들은 별도로 작은 공간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어 꼼꼼히만 읽으면 좋은 정보들을 많이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렌즈와 필름을 이용해 불을 피우면서 왜 검은 먹지나 필름은 잘 타는지, 인류가 최초로 불을 사용한 건 언제쯤인지를 설명한다. 주인공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보여주면서 날씨와 기분의 밀접한 관련이나 스트레스에 대해 설명하고 우울증에 대한 원인을 얘기한다.

어쨌든 재미있게 책장을 넘겼다. 게다가 생활에 필요한 지식들도 많이 배웠다. 그러나, 책을 읽고 절대적으로 느끼는 것은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것, 아는 만큼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절대로 무인도에 표류되기 싫다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림을 그려서 상을 받아본 적도 없을뿐더러 작가와 작품들을 꿰고있지도 않다. 하지만 이 한 문장으로 인해 나는 위로 받는다. '그림을 아는 사람은 설명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일상 생활 속에서도 거기에 그려지는 대상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에는 우리 옛 그림과 함께 옛 사람들의 정겨운 삶과, 자연과 인간을 대하는 따뜻하고 절절한 마음이 녹아있다. 그림을 대할 때의 눈의 만족감과 함께 저자가 들려주는 그림을 둘러싼 에피소드들이 호기심 을 만족시켜 준다.

이 책을 보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 그림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이 참으로 반가왔다. 한국인을 가장 한국적인 정겨움으로 표현하는 김홍도는 사실 뛰어난 화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음악가이자 시인이었음을,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인왕산의 웅혼함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라 60년지기 이병연의 쾌차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획 한 획 붓을 그은 것임을, 윤두서의 서슬 퍼런 '자화상'이 사실은 작품의 손상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옛 그림들의 공통점인, 소싯적부터 귀따갑게 들어 온 '여백의 미'가 왜 그토록 강조되고 중요 시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여백은 정말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백에는 그려진 형상보다 더 심오한 것이 더 많이 담겨있음이 감지된다. 가득히 채우는 것보다 비움으로서 표현해 내는 방식은 긴 인생살이 온갖 역경을 이기고 난 뒤에야 구현되는 인생철학임을 배운다. 개개의 작품들을 넘나들 때마다 '동양미의 가치 기준은 언제나 '살아있다'는 말 한마디에 있다.'고 했던 조지훈 선생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는 우리의 옛 그림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옛 사람의 눈과 옛 사람의 마음으로 읽는 것'이라고 한다. 옛 그림은 학문적으로 대할 때는 까다로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한 인간의 혼이 담긴 살아있는 존재로 대할 때 그 의미는 달라진다고 조용히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도 안다. 주변의 소소한 아름다움도 쉽게 감지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저 먼 옛날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여유가 있을까, 그렇게 닫힌 마음으로 열린 그림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일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 옛 그림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기에는 많은 인내심이 소요된다. 화려한 색채에 이미 눈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 화려함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마치 커피나 청량음료의 진한 향에서 녹차의 풋풋한 싱그러움에 익숙해지는 시간만큼이나. 그러나 그 풋풋함에 매료되면 진한 향이 거북스럽듯이 우리의 옛 그림 또한 그런 것이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은 가끔은, 사색하는 시간이 나 자신에게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 깨닫게 해 준 고마운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의 누드
신현림 지음 / 열림원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나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정말 맘에 드는 책은 선뜻 책을 펼치지 못하고 표지만 만지작거릴 뿐이다. 책을 펼친다는 것은, 곧 작가와 만나게 된다는 것인데, 과연 작가와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건지,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에 내가 쉽게 수긍을 할 수 있는지 한참을 망설이기 때문이다. 아니, 마음을 다지는 준비라 함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나는 책을 고를 때 작가를 본다. 그리고 신현림이라는 작가는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문단에 등단한 작가들이 자신의 취미 혹은 관심분야를 살려 책을 발간하는 일이 종종 있다. 최영미의 <시대의 우울>이 그렇고, 황지우의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가 그렇다. 그것은 글을 쓰게 만드는 상상력의 근원이자 원동력에 대한 뜨거운 고백이다.

이들 외에도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는 작가들은 많다. 신현림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녀는 화제작 <세기말 블루스>를 포함해 두 권의 시집을 발표한 시인이지만 시를 통해 미처 얘기하지 못하고 묵혔던 시선들, 생활의 편린들을 사진을 통해 드러낸다.

<희망의 누드>는 신현림이 두 번째로 묶어내는 사진 에세이이다. 그녀의 사진에 대한 애정은 이미 그의 시집 [세기말 블루스]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시와 사진의 결합은 신선하게 다가왔고 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했다.

<희망의 누드>의 산문들은 일단 편하게 다가온다. 기교가 없으며 무엇인가를 느끼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들, 작가가 생활 속에서 겪는 희노애락, 정인들과의 관계, 소소한 만남과 헤어짐들을 편안하게 풀어놓았다. 그래서 부담 없이 속도를 내어 읽을 수 있는 글이다. 하지만 여타 자전적 에세이들과는 거리를 둔다. 소박한 문장 속에는 그냥 지나치기 힘든 무게감이 있다.

'하루는 공짜로 오지만 인생의 재미와 축복은 공짜로 생기지 않더라.' '인생의 비극은 먼 훗날 행복의 배경이다. 그러리라 믿고 살아야만 비극을 넘어선다.' '만사 보답을 바라고 기대를 하는 것도 중병이다.' '삶은 광활한 어둠 속에서 자기만의 토굴을 파들어가는 것일 게다.'

얼핏 마음을 울리는 한 편의 경구다. 글 속에 묻혀있는 삶의 진실을 따라가다가 보면 여러 가지 상념들이 꼬리를 문다. 그리고 그 끝에서 상념들과 부합되는 사진들을 만나게 된다. 때로는 음악이 슬픔을 위로하고 영화가 삶의 위안을 주기도 하듯이 사진은 내가 가진 마음을, 그러나 표현하기 힘든 그 추상을 대신한다.

<희망의 누드>는 사진과 시가 어우러진 멋진 아우라를 제공한다는 점 이외에도 책을 읽으면서 신현림이라는 작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 것도 이 책의 큰 공로다. 이전의 시들이 도발적인 제목과 감각적인 시어들로 '작가'라는 틀 속에 그를 가두었다면 <희망의 누드>를 통해 그는 일상인들의 틈으로 들어왔다.

작은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고마워할 줄 알고 세상살이에 힘들어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소박하면서도 여리고 따뜻한 속내를 읽어낼 수 있어 더 없이 좋았다.

작가에게 있어서 상상력만큼 큰 밑천은 없다. 나를 있게 하고 작품을 써 내려가게 만드는 힘이다. 사진은 신현림이라는 작가에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더 없이 고마운 촉매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촉매제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그녀가 제시한 사진과 글을 따라 가보자. 그 안에서 만나는 빛나는 감성을 만끽하면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71 | 7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