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림을 그려서 상을 받아본 적도 없을뿐더러 작가와 작품들을 꿰고있지도 않다. 하지만 이 한 문장으로 인해 나는 위로 받는다. '그림을 아는 사람은 설명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일상 생활 속에서도 거기에 그려지는 대상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에는 우리 옛 그림과 함께 옛 사람들의 정겨운 삶과, 자연과 인간을 대하는 따뜻하고 절절한 마음이 녹아있다. 그림을 대할 때의 눈의 만족감과 함께 저자가 들려주는 그림을 둘러싼 에피소드들이 호기심 을 만족시켜 준다.

이 책을 보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 그림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이 참으로 반가왔다. 한국인을 가장 한국적인 정겨움으로 표현하는 김홍도는 사실 뛰어난 화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음악가이자 시인이었음을,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인왕산의 웅혼함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라 60년지기 이병연의 쾌차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획 한 획 붓을 그은 것임을, 윤두서의 서슬 퍼런 '자화상'이 사실은 작품의 손상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옛 그림들의 공통점인, 소싯적부터 귀따갑게 들어 온 '여백의 미'가 왜 그토록 강조되고 중요 시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여백은 정말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백에는 그려진 형상보다 더 심오한 것이 더 많이 담겨있음이 감지된다. 가득히 채우는 것보다 비움으로서 표현해 내는 방식은 긴 인생살이 온갖 역경을 이기고 난 뒤에야 구현되는 인생철학임을 배운다. 개개의 작품들을 넘나들 때마다 '동양미의 가치 기준은 언제나 '살아있다'는 말 한마디에 있다.'고 했던 조지훈 선생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는 우리의 옛 그림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옛 사람의 눈과 옛 사람의 마음으로 읽는 것'이라고 한다. 옛 그림은 학문적으로 대할 때는 까다로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한 인간의 혼이 담긴 살아있는 존재로 대할 때 그 의미는 달라진다고 조용히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도 안다. 주변의 소소한 아름다움도 쉽게 감지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저 먼 옛날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여유가 있을까, 그렇게 닫힌 마음으로 열린 그림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일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 옛 그림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기에는 많은 인내심이 소요된다. 화려한 색채에 이미 눈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 화려함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마치 커피나 청량음료의 진한 향에서 녹차의 풋풋한 싱그러움에 익숙해지는 시간만큼이나. 그러나 그 풋풋함에 매료되면 진한 향이 거북스럽듯이 우리의 옛 그림 또한 그런 것이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은 가끔은, 사색하는 시간이 나 자신에게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 깨닫게 해 준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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