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엄마들이라면 아기띠로 아이를 업고 절벽 꼭대기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주 오래전에 내가 다른 엄마들이랑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비단 육체적인 불편함(혹은 넘어질 위험)만이 거북한 건 아니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아이를 등에 업은 채 걷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오늘날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은 ‘전쟁’이 아니라 ‘나라’라고 계속해서 강조한다."
철도는 흔히 식민주의자들이 자원을 얻으려 하는 과정에서 깔아둔 궤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일제는 조선, 타이완 그리고 랴오둥반도에 하나하나 철도를 설치해 나가면서 과거 중국의 화외지지化外之地(문명이 미치지 않는 곳)를 ‘근대화’시켰다.
화華’(Chinese)라는 글자에는 복잡한 역사와 정체성의 문제가 담겨 있다. 영어로는 형용사로서 ‘문화’를 형용할 수 있고 명사로는 ‘언어’가 될 수도 있다. 외국인에게 있어서 이 글자에 담긴 문화・역사적 의의를 이해하는 것은 상형문자를 식별하는 것만큼이나 난해한 일이다.
국가, 국민, 정체성 등은 당시 타이완 내에서 뜨거운 주제였다. 사실 내게 있어서는 그것들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잘 안 잡히고, 중요한 듯하면서도 당장은 시급하지 않은 이슈로 보였다. 그런데 이 순진한 섬나라 국민은 국경 근처에 와서야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의 의미는 ‘나’라는 한 개인에 있는 게 아니라, 나와 타인 사이에 놓인 연결과 단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