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는 인간의 실존을 '시지프 신화'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신들은 시지프에게 끊임없이 산꼭대기에 바위덩어리를 굴려 올리게 하는 형벌을 내렸다. 그러나 돌덩이는 무거운 무게로 인해서 그 꼭대기에서 다시 굴러 떨어지곤 하였다. 무의미 하고도 희망 없는 일보다 더 끔찍한 형벌은 없다는 것이었다.
시지프 신화에서 큰 바위를 산 위로 끊임없이 올리는 것은 부조리하고 모순으로 가득한 삶,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삶의 모습이다. 신은 의미 없이 바위를 옮기는 것을 통해 고통 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카뮈는 여기서 신의 결정을 조롱한다. 끊임없이 돌을 옮겨야하는 무의미하고 힘든 영겁의 고통, 즉 부조리를 직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돌을 옮기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랬을 때, 돌을 올리는 행위는 좌절과 절망의 행위가 아니라 의미 있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돌을 옮겨야 한다. 내일도.. 모레도.
하지만 매일 돌을 옮겨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여한다면 우리는 극복할 수 있다. 무의미함을, 부조리함을.
인간은 ‘삶이란 의미가 있는 것인가? 없다면, 우리는 삶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고,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으니까.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의 글이 생각난다.
“오래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죠. (중략)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