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 세계 바벨의 도서관 6
찰스 하워드 힌턴 지음, 이한음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탈레스부터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는 시간 동안 고대 그리스의 과학적 사유가 발아한 것은 사실이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근대적 의미의 자연과학(Natural Science/Naturwissenshaft)이 성립한 것은 17세기의 과학 혁명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혁명의 중심에는 갈릴레이와 뉴턴 같은 유명한 과학자들이 있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두 가지 새로운 과학에 관한 논의와 수학적 증명』은 순수한 사고실험을 거쳐 탄생한 기하학적 원자론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과 결별하고자 했으며, 아이작 뉴턴은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뛰어넘는 직관적 사고로써 데카르트의 기계론을 뛰어넘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집필했다.

갈릴레이와 뉴턴의 수학적 작업이 각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와 데카르트주의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던 것은 당시의 세계관에서는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현세의 복잡한 현상들을 경험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체에 대한 범우주적 근거의 선험적 전제(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에테르, 데카르트에게는 코푸스켈)를 토대로 세계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자연관에서 갈릴레이와 뉴턴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끊임없이 ‘신비주의’의 의심을 받았던 것은 단지 그들의 (어쩌면 피타고라스적인)수비학적 태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경험적 검증이 불가능한 ‘신비’의 영역에 가까운 수학적 ‘증명’과 ‘원리’는 지금까지도 신비주의자들의 몫이며,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찰스 하워드 힌턴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 신비주의적 ‘혁명’을 설명하려면, 마흐(Ernst Mach)의 말을 빌리는 것이 수월할 듯하다: “비상식적인 불가해성이 상식적인 불가해성이 되었던 것”이다. 

뉴턴에서 아인슈타인까지 이어지는 근대과학의 혁명기 동안에도 신비주의자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과 공간과 신을 연금술과 수비학의 전통에 따라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해내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한 전통의 흐름 속에 찰스 하워드 힌턴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찰스 하워드 힌턴이 『평면 세계』에 실린 「평면세계」와 「네 번째 차원이란 무엇인가」에서 꼼꼼하게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시공간의 개념을 순수한 수학적 사고실험을 통해 확장하는 것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4차원의 신’을 이론적으로 증명해내는 것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2차원과 3차원의 비교를 통해 3차원과 4차원 간의 관계를 설명하려 한다. 필경 차원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제곱의 원리를 통해 다음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 즉 2차원의 세계가 제3의 방향을 추가할 때 3차원으로 확장되듯이 3차원 또한 새로운 방향을 부여하여 4차원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더 나아가 2차원의 세계·사물·사람(들의 세계이해)을 수학적으로 가정하여 이를 통해 4차원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마치 2차원에서 3차원적 신을 상정하듯, 우리의 3차원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4차원적 신이 존재하고 개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비주의적 세계관과 공간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연과학사의 흐름을 파악해야만 한다. 막스 야머의 『공간개념』(이 책은 찰스 하워드 힌턴에 대해 언급한 국내의 몇 안 되는, 어쩌면 유일한 책일 것이다)에서는 뉴턴의 절대공간 개념이 해체되고 리만기하학의 대두와 더불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세계를 지배한 시기 이전의 사람들이 ‘공간’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막스 야머가 고대 그리스의 공간개념 뿐 아니라 유대 기독교의 공간 개념 또한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물리학계에 자리잡기 이전 시대의 사람이었던 찰스 하워드 힌턴에게 공간이란 절대적인 것이었다. 힌턴이 4차원을 상상하기 위해 2차원과 3차원의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만 봐도 전통적인 유클리드 기하학에 입각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적이고 절대적인 공간개념의 기원은 유대교-기독교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또한 「페르시아의 왕」에서 볼 수 있는 (차라리 수학적이라고 해야 할) 견고한 윤리의식도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향취를 품은 것이다.  

하지만 비교秘敎적인 힌턴의 세계를 단순히 전통적인 수비학 문서 중의 하나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의 세계에는 비약적 추론이 없으며, 종교적인 옛 체계를 그대로 따르는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힌턴은 정신적인 세계를 묘사하기에 앞서 치밀하게 자신이 이해한 세계를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증명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힌턴의 글은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획득한다. 단순히 비교秘敎에 심취한 수학자의 정신 나간 에세이로 치부될 수도 있었지만, 그 엄밀함 덕분에 힌턴의 글은 보르헤스가 만든 ‘바벨의 도서관’에서 영원히 자신의 세계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책 뒤에 실린 해설에서도 나오듯, ‘차원’이라는 매력적인 테마는 시어도어 스터전,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 프레더릭 폴, 클리포드 시맥,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에 이르는, SF의 탄생부터 지금까지도 꾸준히 다뤄지고 있다. 최근에 번역된 『SF 명예의 전당』에 실린 루이스 패짓의 「보로고브들은 밈지였네」, 『저 반짝이는 별들로부터』에 실린 그렉 베어의 「탄젠트」와 같은 작품도 이러한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우리의 굳어진 인식체계를 확장하지 않고서는 다른 차원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신비주의자들이 늘 주장하는 바와 같다.

우리가 아는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완벽하지 않으며, 수많은 모순과 균열이 존재한다. 그러한 모순과 균열을 뛰어넘어 ‘너머’의 세계를 직시하기 위해서는 찰스 하워드 힌턴처럼 꾸준한 훈련, 세계이해를 확장하기 위한 수학적 사고의 엄밀함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SF의 역사는 결코 대중적인 펄프 픽션, 흥미로운 3류 읽을거리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힌턴은 비록 격변하는 과학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잊혀져갔지만, ‘작가들의 작가’ 보르헤스는 힌턴을 잊지 않고 29권의 ‘바벨의 도서관’ 한 귀퉁이를 힌턴의 책으로 채워넣었다. 그의 엄격한 윤리의식과 기하학적 추론의 엄밀함은 비록 이론적으로 낡을지언정, 정신적으로는 절대 낡지 않는 초시대적 공감의 대상이다.   


   
  왕이 계곡을 떠나자마자, 계곡에 있던 존재들은 왕이 처음 발견했던 그들과 똑같은 무감각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육체적 또는 정신적 노동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무감각 상태에 빠졌다. 쾌락의 잉여분을 그들에게 주던 외부 존재의 고통 분담분이 사라졌음을 그들이 가장 먼저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축적된 쾌락이 서서히 소진됩에 따라, 계곡 전체를 차가운 죽음이 휩쓸었다. 한 명 한 명의 운명을 묻는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전체를 휩쓴 똑같은 재앙에 모두가 휘말렸으니까. 모든 손은 손재주를 잊었다. 거리에서 부산하게 이루어지던 활동들은 잠잠해졌다. 시골에서는 천천히 움직이던 형태들이 서서히 휴지 상태에 들어갔다. 모든 곳이 그렇게 하염없는 침묵에 잠겼다. 모든 주민이 어떤 큰 잔치에 간 것처럼. 하지만 돌아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조금씩 하지만 끊임없이 잠식해 드는 붕괴와 몰락을 막을 세심한 눈도 준비된 손도 없었다. 도로는 풀로 뒤덮이고, 건물에는 흙먼지가 밀려들었다. 시간에 서서히 먹히다가 이윽고 모든 것이 묻혀 버렸다. 집, 들판, 도시가 사라졌고, 마침내 거기에 무엇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지워지고 말았다.  
   

 
『타임머신』, 『우주전쟁』, 『투명인간』, 『모로 박사의 섬』과 같은 작품에서 빛나는 웰스의 과학적 비전이 실제적 실현가능성과는 상관없이 우리 세계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으로 반짝이는 것처럼, 힌턴의 작품 또한 우주적 우화로써 정교하고 세밀하게 세계를 직조하고 그 세계를 엄밀하게 묘사한다. 힌턴의 작업은 SF-소설이라기보다는 SF-에세이에 가깝다. 그의 글은 소설과 에세이 같은 규정의 틀 자체를 벗어난, 우주를 담으려 노력하는 글쓰기이다.(다른 바벨의 도서관 책들이 그러하듯이.)

그는 스스로 창조한 세계를 Fiction보다 Nonfiction에 가까운 태도로 다루며, 그 세계의 윤리 또한 차라리 수학이라고 할 만큼 단단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다. 지금 보면 힌턴이 꼼꼼하게 검증한 기하학과 윤리의식이 낡아보일지 모르나, 그 밑바탕에 차곡차곡 깔려있는 수학적 의미를 곱씹을 수록 그의 작업은 단지 낡은 SF가 아니라 비의적 사상이자 하드SF적으로 틈없는 완벽하고 신성한 우주이다. 그가 수많은 유명 작가들을 제치고 보르헤스의 눈에 들었던 것은 외롭게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우직함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창조한 세계 자체가 바벨의 도서관이다. 사실 힌턴의 세계에 혼돈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세계를 혼란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신비를 잃어버린 채, 완벽함을 믿지 않는 시대로 건너와버렸기 때문이다. 신비를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을 버리고 ‘바벨의 도서관’을 읽는 것이다. 보르헤스 자신이 말하듯, 바벨의 도서관은 ‘혼돈으로서의 세계’가 아니라 우주, 영원, 무한, 인류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암호이자 단 한 권의 총체적인 책이다.  

   

 

ps. 바다출판사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는 2009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출판사라는 출판사 이름 대신 ‘바벨의도서관’이라는 브랜드명을 달고, ‘보르헤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2권을 출간했다. 그리고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량 회수조치된 후 절판된 채로 1년 반이 흘렀다. 이후에 트위터를 통해 당시의 사정을 알 수 있었는데, 책의 품질이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아 29권짜리 시리즈를 제대로 출간하기 위해 이미 발행한 2권을 회수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웬만한 출판사라면 일단 책을 내고 나서 나중에 슬그머니 재판을 찍을 때 수정했을 텐데, 그 결단과 장인정신이 놀라웠다. 게다가 시리즈를 다시 출간하면서 오히려 가격은 더 내려갔다.(9500원→8000원) 

디자인과 마감이 이전 판본보다 훨씬 더 훌륭해졌을 뿐 아니라, 가격도 요즘 책 답지 않게 저렴한 점이 돋보인다. 여담이지만 이 시리즈를 보면서 최남선의 ‘십전총서’와 육전소설’이 떠오르기도 했다. http://webzine.kookmin.ac.kr/site/ff1/article_3/page_3.htm 근대 출판의 역사에는 이처럼 선구자적인 역할을 맡아 도서를 통한 지식 보급에 매진한 사람들이 있었다. 더 이상 저렴하다고 보기 힘든 세계문학전집들, 디자인은 세련되게 바뀌었지만 그만큼 호주머니도 슬림해지게 만드는 책들을 보면서 한숨을 쉬곤 했는데, 다른 출판사에서도 ‘바벨의 도서관’처럼 ‘값 싸고 질 좋은’ 세계문학전집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밀 - 나와 나 사이에 숨겨진 열두 가지 이야기
요시다 슈이치 외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살아가면서, 우리는 그늘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그늘에서 얼굴보다 더 다양한 삶의 표정을 읽어낼 수 있기도 하지요. 그늘은 오히려 우리 내면에 대한 가장 솔직한 해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밀'에 실린 열두 가지 이야기들은 우리의 삶의 틈새에 숨어있던, 하지만 그대로 숨겨져있기엔 너무 아름다운 색채를 지닌 생의 한 단면들입니다. 각기 다른  두 명의 시점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가지를 뻗어나가며 서로 엇갈리고 이어지면서 서로의 시선에서 벗어나있던 그늘을 조금씩 보여주지요.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앨범 사이로 비집고 나온 비밀은 한 여인의 생에 가장 깊숙이 자리 잡힌 예술혼의 근원을 알려주며(전화 아티스트의 연인), 너무나도 전하고 싶은 말을 직접 전해줄 수 없는 남자의 비밀은 오히려 그 진심의 절절함을 전하며 감동을 선사합니다.(달링은 연기파)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을 알아챈 그녀는 그의 진심을 이해하며 비밀을 덮어주고(진도 4의 비밀), 마음을 흔드는 것은 꾸며낸 쾌활함보다 솔직하고 진심어린 눈빛임을 알려주지요. 그렇게 서로의 진심어린 모습들을 발견하면서 숨길 수밖에 없던 비밀은 따뜻한 미소가 되어 돌아옵니다. 어떻게 보면 감춰야 할 것처럼 느껴지는 우리의 그늘이, 사실은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죠.

우리는 삶의 틈새를 메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고 비밀을 간직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비밀보다 진심이 삶의 틈새를 아름답게 채워준다는 사실을 차근차근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얼마나 솔직한가요, 웃음 띤 얼굴 뒤에 숨겨진 초라한 뒷모습을 감추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쓰는가요. 하지만 그 숨기고 싶은 뒷모습도 우리의 일부이며, 진정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웃음 띤 얼굴보다 그 뒷모습을 보듬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서로에 대한 몰이해로 끝맺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긴 여운을 느끼면서도 어쩐지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비밀'은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는 이야기이며, 그 비밀 속에 숨겨진 진실이 쓰라린 것이든 부끄러운 것이든 혼자 간직하고픈 추억이든,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삶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들이 많이 있겠지요. 그리고 그 중에는 반드시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는 이야기가 숨어있을 것입니다. 이야기는 삶에 가깝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wallow (스왈로우) - Sun Insane
Swallow (스왈로우)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봄의 피로>부터가 이 앨범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허클베리 핀>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instrumental 곡이죠.

보통 그룹을 오래 하던 사람이 솔로 앨범을 내게 되면 첫 앨범의 경우는 자신의 색깔과 그룹의 색깔을 어느 정도 절충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조금 좋아지기도, 아주 나빠지기도 해요. 네, 결국은 그리 좋은 앨범이 나올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겁니다.

swallow의 앨범도 많이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히려 기대치가 낮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좋은 앨범인지 헷갈리고 있어요. 사실 제 취향에 묘하게 들어맞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첫곡 <봄의 피로>부터가 귀를 확 잡아끕니다. 클래식을 전면적으로 활용한 이 곡은 앨범의 전체적 분위기를 확실하게 각인하면서 '잔인한 4월'같은 이미지를 드러내며 분위기를 살짝 반전시키는 <몇 가지 오해들>로 이어집니다.

왠지 모르게 나른하게 늘어지는 느낌을 주는 곡 <어느 배우>, 잔잔한 피아노와 기타와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되다가 자연스럽게 볼륨을 높인 듯이 올라가는 감정. 차근차근히 쌓인 우울함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에 조금씩 내보이는 조절이 돋보입니다.

게다가 <킹맨의 거짓말>은 기타와 드럼이 들어간 전형적 락 트랙인데도 다른 곡들과 그리 상충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 앨범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이기용의 보컬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자연스럽게 보컬과 호흡이 맞는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보컬에 맞춰 앨범의 컨셉을 맞춘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앨범의 컨셉에 맞춰 보컬을 들여온 걸까요. 아무런 채색도 되지 않은 듯한 보컬은 이기용의 취향이기도 하지만 또 이 앨범 전체<저녁의 룸펜>은 아예 기타가 뒤로 물러서고 현이 가장 앞에 나와서 멜로디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긴 방랑이 끝나는 아침>은 어쿠스틱 기타의 잔잔하게 뒷받침되어 정말 '봄'의 기분을 잘 표현했습니다. <무엇이 나를 눈멀게 했을까>는 한술 더 떠서 피아노와 목소리만으로 만든 곡입니다.

뿐만 아니라 Deja Vu에서 보이는 작사의 스타일은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
[소리 없는 순간의 미명으로 모진 고된 시절을 마치면 장례식에 흐르는 Moon River 사라지지 않은 채 거리에 흐르고 있어]같은 가사는 근래 보기 드문 것이니까요.

마냥 슬프지도 않고, 극도로 우울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약한 느낌도 아닙니다. 정말 봄처럼 미친 태양이 녹아있는 앨범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호선 버터플라이 3집 - Time Table
3호선 버터플라이 노래 / 파스텔뮤직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저는 희한하게 3집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경향이 있나봅니다. 사실 3집이란 것이 상당히 안정적인 변화를 꾀하는 대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대표적인 예가 서태지이고, 롤러코스터나 언니네 이발관도 그래요. 역시 3호선 버터플라이도 그 목록에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앞의 네 곡은 전형적인 3호선 버터플라이의 색깔을 하나씩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귀에 들어오는 곡은 안녕, 나의 눈부신 비행기였어요. 굉장히 정통적이면서도 재미있는 곡이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펑크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삐뚤빼뚤 원래 그래는 사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원래 보컬색이 제 취향이 아니어서 좀 걸리더라고요. 첫곡이 너무 전형적인 3호선 버터플라이식 노래라고 생각해서 변화를 기대했던 저에게 실망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사랑은 어디에같은 곡은 대중적인 곡이지만 특징이 잘 잡히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맛보기로 약간씩 보여줄락말락하던 네 곡을 뒤로하고, Shush부터 본격적으로 변화가 시작됩니다. Shush는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왔다고 하는데, 분위기는 완전히 이국적입니다.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군요. 그냥 들어보셔야 해요, 이런 곡은. 보컬의 파격적인 변화도 변화이거니와 전체적인 소리색의 변화가 상당히 인상깊었어요.

그림으로 가는 사람들은 사랑은 어디에와 비슷하지만 약간 더 조용조용하고 감성적인 발라드식입니다. 할머니가 피었어요는 백보컬의 앙증맞은 목소리가 참, 귀여워요. 가장 유쾌한 노래가 아닐까 합니다. 김포 쌍나팔의 sonic youth스러움도 이젠 많이 거슬리지 않고. 재미있고 유쾌하게 들립니다. 죽여 밟아 묻어 같은 곡도 sonic youth의 그늘이 (더 짙게)남아있지만 오히려 더 인상적으로 들리면서 그늘은 걷혀집니다. 어떤 강박관념도, 고정관념도 없이 편안하면서도 강렬한 이번 앨범, 정말 강력히 추천할 만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란다스의 개
봉준호 감독, 배두나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역시, 제목과 홍보가 선입견을 만드는 대표적인 영화 중 하나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심리를 다루는 데 천재적입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관객들을 안심하게 만들지만 그것이 우리의 끔찍한 이기심임을 일깨우는 장면이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의 아내를 계속 좇아가는 범인을 비추다가 여고생과 스쳐지나가면서 범인의 목표가 바뀌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극단적인 감정의 대립을 보여줍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자신이 범인임을 알려주려는 사람과, 그가 주는 실마리를 전혀 잡지 못하는 사람을 보여줍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죽는 건 오직 한 마리 개입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살인의 추억보다 플란다스의 개가 더 잔인하죠. 살인의 추억은 적어도 일상적인 사건이 아니니까요. 살인의 추억에서 폭력은 일상적이지 않은 특수한 것이고, 소시민들의 죽음은 일상 아래로, 더 거대한 이름 아래로 묻힙니다.

그에 비해 플란다스의 개는 배경부터 매우 현실적인 생활공간, 아파트입니다. 그러한 '일상'의 공간에서 '우리'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폭력은 살인의 추억처럼 체계적이지도, 강하지도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잔인한 폭력입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오해, 서로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만들어진 폭력이니까요. 아파트라는 개인적 협소함의 중첩은 그러한 오해를 더욱 크게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아파트 밑에서는 또 다른 일들이 펼쳐지고 있지요.

아파트 지하실은 무자비한 폭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라는 오해를 뒤집어쓴 공간이지만, 사실 그러한 오해는 무관심의 공간이었다는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무관심은 부랑자에 대한 시선, '뉴스'라는 매체 - 온 세상의 소식을 독한 표백제로 씻어서 무감각한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 무관심의 폭력 - 로 이어집니다. 뉴스를 통해 모든 사람들은 이전까지 집중되었던 개인적인 폭력보다 더 커다란,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사회적'으로 재편성하는 폭력을 목도합니다.


배두나의 만화적 캐릭터리티를 과장하여 홍보한 것과는 달리, 이야기는 유쾌하다기보다 어딘가 신경을 긁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특히 이성재의 극한 연기가 그렇습니다) 늘어지는 듯한 전개도 의도적인 것처럼 보이고, 밝은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 분위기도 영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 영화와 맞아떨어집니다. 여러 모로 보아 지구를 지켜라!와 겹치네요. 그 말도 안되는 홍보전략도 그렇고요. :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