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단지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만 비겁했던 것뿐이었다. 사오 일 동안 그는 손바닥에 올려놓은 주사위만 쳐다보며 지냈다. 오늘도 아직 손에 쥐고 있었다. 빨리 운명이 밖에서 찾아와서 그 손을 가볍게 쳐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손에 쥐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다.-257쪽
"물질이나 자연현상, 또는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영원한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수학은 그 모습을 해명하고, 표현할 수 있어. 아무것도 그걸 방해할 수는 없지."-164쪽
배가 고픈 것을 참아가면서 사무실 바닥을 닦고 루트를 걱정하고 있는 내게는 박사가 말하는 영원하고 옳은 진실이 필요했다.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실감이 필요했다. 넓이도 없이 장엄하게 어둠을 뚫고 한없이 뻗어 나가는 한 줄기 진실한 직선. 그 직선이야말로 내게 잠시의 평온을 가져다주었다.-165쪽
한국에서 내가 제일 좋아한 말이 '괜찮다'였어요. 힘든 일이 있으면 친구한테 전화해서 '괜찮다'는 말 세 번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진짜 괜찮은 게 뭔지 알았어요. 날씨가 더워도, 아프고 돈이 없어도, 사람들이 약속을 어겨도 다 괜찮아요. 전에는 괜찮아지고 싶어서 괜찮다는 말을 했다면, 지금은 괜찮아서 괜찮다고 말해요. 무엇을 해도 다 괜찮은 내가 됐어요.-80쪽
매일 파스타를 먹고, 화창한 오후에는 온갖 경치를 보러 나가요. 다리가 아파질 때까지 걷고, 포도주를 마시고, 같은 방에서 자요. 여름에는, 더워서 미칠 듯한 빛 속에서, 지금과는 다른 기분을, 서로 다른 창문에서 보도록 해요. 그럴 수 있을 때까지, 당신을 잊는 일은 없을 거예요.-134쪽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만약에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하고, 또 하나의 인생을 멋대로 상상하면서 그것에 질투하는 거지. 언제나 내가 살지 않은 쪽의 인생에 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말이지. 사실 그런 건 아무 데도 없는데, 인생은 한쪽 길로밖에 갈 수 없는 것인데 말이야.-3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