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듬지
김현중 지음 / 아키텍스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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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우듬지의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나무의 우두머리라는 뜻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끝이기도 했고, 꼭대기이기도 했습니다. 뜻을 알게 되자 모호했던 느낌의 표지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각져있는 사각의 물체들은 건물이었고, 그것을 엄지로 치켜세운 손으로 비교하며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 자체와 배경들을 모두 나무로 깎아 만들어 낸 조각품의 모습 같았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엄지를 올린 뒤, 한쪽 눈을 감은 채 사물들을 바라보곤 합니다. 때로는 붓이나 펜을 들어 하는 이 행위는 기준을 잡기 위한, 그림을 그리기 전 하는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중요한 작업 중 하나입니다. 어쩌면 저자는 스스로 기준을 잡기 위해 하는 행동을 조각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문에서 무엇인가 얻었으면 한다는 저자의 말이 함께 알아보자는 일종의 초대장처럼 느껴졌습니다. 비록 그 초대장은 쉬운 언어들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은 갑갑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고, 부차적으로 수식하는 말들이 많이 있는 이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때문에 초대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거나 초대장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초대에 상관없이 우리들은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초대장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인지 시킬 뿐입니다. 그래서 이 초대장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면서, 기능적으로는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서문부터 이어진 다소 어려움이 있을 문체에 더해, 1장부터 내용의 이해가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공감이 형성되지 않았으며, 어딘가 확실함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해하고자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더 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는 아마도 그의 이야기가 과거에서 시작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 삼아 전개된 이야기들은 천천히 퍼지면서 점차 현재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었지만,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이어져 있는지는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실재 과거가 있기 때문에 현재가 있고, 그렇게 둘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직접적으로 또 때로는 무척이나 모호하지만 분명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특정의 무엇인가는 다소 분명하게 떠오르지만 대부분은 아주 희미하고 불분명하며,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흐릿해져 갈 것입니다.

이 특색을 그대로 살리는 듯한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과거를 분명히 담고, 강렬했던 기억은 확실하게 표현했으며, 불분명한 이음새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이 노골적인 드러냄은 과거가 있기에 현재의 내가 존재한다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쉽게 잊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듯했습니다. 또한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당당하게 고백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태도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다거나, 말하고자 하는 바가 오락가락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떠한 일을 이유 없이 혹은 아주 사소한 계기로 부끄럽게 여기곤 합니다. 그때 자신도 모르게 감추거나 때때로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으며,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그 모호함을 더더욱 인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인 것 같습니다.

이어진 2장에서는 누군가의 죽음, 기억의 소실, 꿈 등을 다루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보였습니다. 이전과 문체는 동일했지만, 분위기 자체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내용들이 이해됐고, 생생하게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이미 저자의 방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꿈이 갖고 있는 특성이 드러났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꿈은 불확실하고 휘발성이 강해 금세 잊히지만 깼을 때만큼은 선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론 그것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하거나 생각나는 대로 기록을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저자는 그때의 선명함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붙들려고 노력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무릇 누군가의 심연을, 의식의 밑바닥을 보는 것은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저자가 죽음이나 꿈을 대하는 자세를 살펴보는 것이 우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죽음이나 꿈이 심연인지, 혹은 의식의 밑바닥인지 딱 잘라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어딘지 어둡게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글들을 연속으로 마주하게 되자, 저자의 말들은 묘하게 힘이 있게 느껴졌고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서는 내용 자체가 길어지면서 이러한 특징과 매력들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어떠한 소재를 이용해 내용을 시작하는 것은 탁월해 보였지만, 길어지는 문장 속에서 그것들을 유지해 나가는 힘이 부족해 보였고, 이야기의 방향성이 많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모습은 이전과 다르게 타인을 이야기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알기 어렵고, 그만큼 그를 규정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그것들을 전부 활용함으로써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들이 뒤를 이었고, 그만큼 내용이 길어지고 점점 더 의미가 불분명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기본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말을 하는 특성이 더해지니 풍성한 묘사가 아닌 과도한 수식어의 남발로만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타인에 대한 공감을 전혀 하지 못한 상태로, 자신의 잣대로 그를 규정하고 섣부르게 결론지어 버린 것일지도 모르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혼자가 아닌 타인이 늘 함께 한다는 사실 때문에 드러난 일종의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늘 타인과 비교당하며, 비교하며 살아왔기에 이런 두려움은 당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나의 기준을 세우는데 영향을 끼친다면 더 이상 나의 기준이 아닌 타인이 기준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에게 초점을 맞췄어야 했으며, 이전의 장들에서 보여줬던 태도를 유지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전반적인 저자의 말들에 대한 공감을 떠나 각 소제목을 뒷받침하는, 가장 먼저 등장하는 그림들은 또 다른 매력 포인트이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전혀 관계없어 보일 때도 있었지만, 내용을 읽고 나면 그 그림 하나에 모든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저자가 갖춘 함축의 능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이따금 내용을 전개하다 갑자기 다른 사실들을 툭툭 내던지는 이야기 방식이, 어딘가 분명한 맺음 없이 다음으로 넘어가는 글들이, 맺음이 없음에도 제대로 분류되고 모호하지만 어떤 것은 선명하게 쓰여있는 모든 글들이 시처럼 느껴졌던 것은 그 능력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그것이 이후에 나올 그의 글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끝까지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좋게 본다면 뚝심이 있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자신만 만족스러운, 전혀 배려가 없는, 약간은 이기적인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에 도서 전체가 약간의 허세가 끼어 있는 모습처럼 느껴짐으로써 쉽게 다가가기 어렵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독서를 시작하고 마무리하고 나서까지 모호함과 아이러니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의 도서인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

  • 어려운 단어, 한자 등이 과도하게 많이 등장합니다.

단순하게 등장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닌 수식어로 활용하며, 전혀 단순하지 않은 형태를 선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는 자주 쓰이지 않을 뿐, 분명 한때는 익숙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반가웠지만,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조금만 더 정제하면서 적절하게 사용했다면, 더 극적인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어딘지 모호한 분위기가 진하게 느껴져 내용의 이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독서를 모두 마친 후에 다시 생각해 보아도,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분명하게 파악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호함이 과거이며, 꿈이고, 누군가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는 어딘지 분명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어딘지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 '자신'의 이야기에서 '타인'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매력들이 단점으로 일순간 변합니다.

많은 수식과 한자 등이 사용되는 것들도 짧은 호흡을 통해 매력적이게 다가왔지만, 길게 이어진 내용에서는 과도하게 느껴졌고,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스스로도 방향을 잃고 있는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타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지만, 매개가 되는 매개체가 타인이 되었고, 그에 대한 충분한 공감 없이 자신의 관점으로만 섣부르게 판단함으로써 이전보다 더 길어졌던 것 같습니다.

  •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소제목과 그림들이 낯설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내용을 일고 나면,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문장과 그림으로 충분히 함축되어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저자가 얼마나 함축하는 능력이 뛰어난지 알 수 있었으며, 내용들이 난해하고 어딘가 시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되면서 글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총 평

이제는 보기 어려운 방식의 많은 수식어를 활용하는, 잘 쓰지 않는 한자나 단어들을 이용해 꾸려가는 내용들은 어딘지 그리움이 느껴지면서도 이해를 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짧은 호흡을 통해 방해적인 느낌을 완화했고, 매개가 되는 요소와 일치되는 듯한 분위기를 풍김으로써 매력 요소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졌을 때 한정이었으며, '타인'을 매개 혹은 초점을 맞추었을 때는 과도함으로 다가왔고, 끝까지 이러한 방식을 고수해야 한다는 강박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간결함과 짧은 호흡은 사라지고 길고 늘어지는 듯한 글들로 마무리되었으며, 도서 전체가 약간의 허세처럼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어쩌면 뚝심이 있는 것일지 모르지만, 전반적으로 스스로만 만족한 배려심이 보이지 않는 조금은 이기적인, 그러면서도 함축의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다음이 기다려지는 모호함과 아이러니가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6 구성 7 재미 6 재독성 6 표현력 7 가독성 5 평균 6.16)

무결점으로 보여 매력적이던 조각이 빈틈투성이의 처녀작임을 알았을 때.


감상자(鑑賞者)


감상자(鑑賞者)의 감상(리뷰) 블로그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20387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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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 P11

요리하며 이따금 베이고 데이기도 했을 당신의 수고에 대한 이해라고는 보이지 않는 아들의 무례에도 어머니는 양념이 제대로 배었을지, 짜지는 않을지, 양이 적지는 않을지, 손이 무겁지는 않을지 걱정만 한가득했다. - P64

지금의 나는 무엇으로 살고 있나. - P101

이 꿈, 현상의 시공간에서 벗어나 복귀할 현실과 미래는 이미 그늘에 잠겨버렸다. 그러니 비극을 점지한 꿈의 끝자락에서 또다시 울음을 터뜨려야만 했다는 기억이다. - P155

개봉되면서부터 여느 식품보다 높은 산패 위험을 띠게 되는 통조림처럼, 어제까지의 요람이 오늘의 묘지로 변하기엔 한순간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은 어느 관계에서건 예외 없이 통용될 일이었다. - P163

그 집착은 전진하는 시간을 가두려는 절박함이었는지 몰랐다. 아니, 온전한 비움과 채움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엎는 모습은 분명 시간을 가두다 못해 되돌리려는 몸짓이었다. - P172

역학적 절차의 거듭으로 나는 한 마리의 유연한 뱀이 된다. 어느 하루는 혼자, 어느 하루는 누군가와 함께. 출장과 같이 열린 외부와의 교류로 향상되는 내부 에너지에 조금은 서툰 감이 있다는 건 아직까진 안정을 더 선호한다는 경향성의 방증이겠다만, 나는 인지적 구두쇠가 아니다. 고독만을 고수하지 않겠다는 거다. - P218

일찍이 진실로 굽힐 줄 알았다면, 모두와 함께 겨워할 수 있었을까요.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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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듬지
김현중 지음 / 아키텍스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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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결점으로 보여 매력적이던 조각이 빈틈투성이의 처녀작임을 알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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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주명리 - 언젠가 한번은 자신의 힘으로 사주를 풀어 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안내 나의 사주명리
현묘 지음 / 날(도서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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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누군가는 평생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연례 행사처럼 사주를 보러 가곤 합니다. 그들은 매번 비용을 지불한 뒤 풀이를 듣고, 때로는 신기해하기도, 의아해하기도 한 감정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잘 본다는 곳을 찾아가 긴 시간을 할애했던 그때의 기억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엔 모두 까맣게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해당 도서의 '언젠가 한번은 자신의 힘으로 사주를 풀어 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안내'라는 소개가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주 보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판단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역량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깔끔하게 만들어진 표지 디자인이 무척 눈을 끌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주라고 하면, 어려운 한자와 용어들이 난무하고 그것들을 해석하면서 풀이를 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깔끔한 느낌의 표지는 직관적으로 내용을 전달할 것 같았습니다. 물론 해당 도서가 정말로 그러한 느낌을 주었는가는 조금 판단을 유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주를 보러 갔을 때처럼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안내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함인지 단순한 사주 풀이를 넘어 각각이 가지는 의미를 심도 있게 풀어내며, 그것이 진정으로 내포하고 있는 가치들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어쩌면 동양철학으로써의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반적으로 직관적으로 내용을 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지만, 결국 한자들은 끊임없이 등장했습니다. 기본적인 개념만 읽어 나가는 것이고 뚜렷한 규칙성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내용들은 독서의 시간을 늘려갈 뿐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많지 않은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어려운 시간들은 빠르게 마무리되었지만 결국 제대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몇 번을 되짚어 봐야 했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편하고 쉽게 풀어져있었기 때문에 따분하지 않게 공부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의미를 알아가는 배움의 과정이라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감각들은 결과적으로 아쉬움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분명 풀이를 길게 설명했지만, 왜 그런 의미를 갖고 있는지, 왜 그것들이 품고 있는 부속적인 사항들이 있는지, 그것들은 무슨 의미인지 등 깊이 있는 내용들이 노골적으로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지지에 들어서자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자수에 왜 계수와 임수가 섞여 있고, 왜 계수가 더 비율이 높은지 등이 전혀 설명되지 않은 채, 근원적인 것들이 누락된 채 내용이 이어졌습니다. 천간에 이어진 지지에 대한 풀이에도 이런 모습은 계속됐습니다.

비율적인 부분부터 각 지지가 품고 있다는 부속적인, 연관된 지지들에 대한 설명이 너무 모호했습니다. 마치 그냥 그런 게 있으니 외우거나 알고 있으라고 통보하는 듯했습니다. 이들의 특성들을 키워드로 정리한 것은 좋았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만큼 깊이감이 얕았고, 배움의 과정이라 느꼈던 부분들은 다소 답답한 강제적인 의미 부여로 느껴지게 됐습니다. 결국 각 용어들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어떤 식으로 접근하면 조금 더 편안하고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대략적인 청사진만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사주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직접적인 사주 풀이보다는 기본적인 부분들을 소개하는 것이 더 많았고, 각각이 가진 의미들을 풀어내는데 집중하긴 했습니다. 대략적인 흐름을 통해 각 사주가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설명하며, 단편적인 특징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후반에는 이런 단편적인 부분들을 해소할 만한 깊이 있는 내용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갔고, 결국 하나의 도서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부분들이 많이 보이게 됐습니다. 재성, 편재 등에 대해 길게 풀었지만, 수재성과 목재성이 강한 것 등의 차이를 알 수 없었고, 결국 심화까지 봤을 때 알게 되는 내용일 것 같았습니다.

결국 동양철학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아주 짧게만 맛보게 해 주었고, 사주 풀이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듯했지만 누락된 부분들이 많이 보이는, 전반적인 기본서의 역할도 부족해 보이는, 오히려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편하게 볼 수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오히려 심화 과정의 도서를 찾을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전체적인 평가는 그 도서를 본 뒤 다시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한 권으로 온전한 기능을 하지 못하기에 어쩌면 평가 내리지 못할 도서일 수도 있습니다.


아쉬운 점

  • 한자들이 많이 등장하여 피로도를 느끼기 쉽습니다.

물론 해당 글자들을 풀이해가며, 그 의미를 심도 있게 바라보기 때문에 따로 옥편이나 검색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글자 자체가 주는 압박감을 무시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직관적인 키워드로 풀어 나갔으나, 충분히 염두에 두고 독서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누락된 사실이 많은 사주들이 갖는 깊은 의미들.

기본서의 느낌으로 각 글자들의 풀이가 이어지는 와중에 등장하는 사주로서의 접근 때문에 이해도가 높아지지만, 그것들과 연관되어 있는 깊은 내용들이 누락된 채 대략적으로 내용을 이어나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는 이후의 도서에서 다룰 부분이라 빠져 있는지도 모르지만, 노골적인 누락 때문에 이해가 갑자기 끊긴 기분이 들었습니다.

  • 한 권으로 온전하다고 하기 어려운 도서.

기본을 다질 수 있는 도서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결국 다 담아내지 못한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이후의 도서를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해당 도서를 통해 기본적인 해석을 할 수는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얕은 수준이기 때문에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심화 편이라는 명칭보다는 2권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전한 도서 한 권으로 바라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 아쉬운 정체성

뜻풀이에 집중하다 보니 동양철학이 보여줄 수 있는 내용들을 깊이 있게 다루는 듯싶었습니다. 그러나 사주풀이로 일순간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이마저도 누락된 내용들이 많아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모든 책임을 다음으로 미루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딘지 어중간한 위치에 놓인 상태로 끝을 맞게 되는 듯했으며, 이런 부분을 해소하거나 전체 내용을 다시 판단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다음 도서를 봐야 하는 강제성을 부여했습니다.


총 평

의미 풀이에 초점을 맞춘듯한 내용 전개는 일순간 사주에 직접적인 내용들로 넘어갔습니다. 이 때문에 동양철학이 보여줄 수 있는 부분과 사주 풀이의 편리성에 대한 내용의 중간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느끼게 됐습니다. 뚜렷한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한 채, 누락된 내용들이 많이 보인 채 도서는 마무리되었고, 결국 한 권으로 온전치 못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직관적으로 볼 수 있게 키워드로 정리한 포인트들을 통해 내용들을 쉽게 익힐 수 있었고, 분명 어려운 용어들임에도 충분히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짜인 구성 때문에 이후의 도서를 조금은 더 쉽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7 구성 6 재미 5 재독성 8 표현력 7 가독성 7 평균 6.6)

한 권으로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익숙해졌기에 나름 유의미한.


감상자(鑑賞者)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201834288

우리를 구성하고 둘러싼 모든 시간은 숫자가 아니라, 의미이다. - P18

사주는 너무 많은 오해와 억측, 과장 탓에 세상에 잘못 알려졌다. 사주는 이치를 통찰할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철학적인 체계이다. 또한 무속의 도구, 마술사의 지팡이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는 소중하고도 효과적인 도구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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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카뮈 2024-07-10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된 사주명리 책 아시면 추천부탁드립니다
 
나의 사주명리 - 언젠가 한번은 자신의 힘으로 사주를 풀어 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안내 나의 사주명리
현묘 지음 / 날(도서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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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익숙해졌기에 나름 유의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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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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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느낌의 표지가 주는 귀여움과 작은 사이즈에 한 페이지당 고작 스무 줄로만 채워져 있는 도서는 시작을 죽음으로 열었으며,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운 사투리들로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이와 함께 등장한 한문이 아니었으면 이해하기 힘들었을 단어들이, 옛말들이 자주 등장했고, 이 때문에 독서의 과정은 무척 더디게 되었습니다.

몇 번씩 그들의 대사를 다시 읽어야만 했고, 요즘과 달리 길고 부차적인 말들로 서로의 언어들을 꾸며주었습니다. 오직 내용을 전개하는 화자만 표준어를 구사했을 뿐이었고, 대부분의 말들은 어렵게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더 깊이 있는 내용들로 다가왔고, 상황을 빠르게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더 확실하게, 사실적인 상상을 하게 했고, 어쩌면 더딘 시간은 그 상상에 빠져 그만큼 시간이 흘려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표현들이 부질없거나 쓸데없다고 느껴지지 않았으며, 요즘은 보기 힘든, 어쩌면 전통적이고 과거부터 이어져 오던 소설의 참 형태를 유지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듯 자꾸만 책장을 앞으로 넘기며 좋은 구절들이 많음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이야기에 매료되기 충분했고, 어딘지 강하고 짙은 여운을 계속 남겼습니다.

이런 말들로 표현되는 전반적인 내용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을 언급하면서 종교적인 부분들도 다루고 있기에 결코 쉬운 독서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시선은 화자를 통해서 냉소적으로 담아냈습니다. 그 말들은 날카로운 칼 같았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벌어진 사건은 비극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하나의 사실이나 진리 등을 가운데에 두고 옳고 그름으로 편이 갈려 대립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는 무척 호의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단으로 분류되고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쩌면 정말 이단이며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진실은 시간이 판단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들이 옳았는지, 정말 그른지 분명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직접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저 어떤 종교에서 말하는 '그들은 나쁘다, 사이비다'라는 말만을 믿고 따라서는 안됩니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 그들이 실제로 어떤지 알아보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도 없이 편견을 갖고 무조건적인 부정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당 도서에서 너무 많은 언급과 묘사를 했기 때문에 찬양처럼 느껴졌고, 과도한 반복이 불편한 감정을 만들어내기까지 했습니다. 어쩌면 조금은 덜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런 논쟁거리들을 앞세운 저자는 그렇다고 특정한 사상이나 종교를 지지하거나 따르라는 식의 언급은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것을 가운데에 두고 서로가 옳다고 싸우는 모양새를 만들어 냈으며, 또한 그 자체를 배경으로 활용해 아버지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그의 모든 날을 알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초반에는 그것들을 무조건적인 부정의 요소로 다루었습니다. 특히 여러 표현들을 통해 사회주의자의 딸로 살았던 지난 세월을 이야기함으로써 받았던 피해들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뿐, 어느새 그런 것들은 모두 제쳐두고 그저 아버지를, 한 인간을 온전히 바라보게 했습니다.

어쩌면 그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사실이나 진리 등을 가운데에 두고 아등바등 부대끼며, 때로는 싸우고, 또 때로는 웃으며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진실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 거짓일 수 있으며, 누군가는 믿지만 또 다른 이는 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반대 급부의 생각을 가진 이들이 이 사회에서 언제나 뒤엉키고 있습니다.

그만큼 해당 도서는 특별히 특정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강요하지도, 마냥 좋은 것이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 안에서 느끼고 겪었을 감정들과 여러 사건들을 담아냄으로써 아버지를 추억하고, 분명하게 그 존재를 느끼고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사이엔가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고, 온전하게 감정이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말미에 이르러 차분하게 정돈이 됐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에 집중하게 했고, 그를 통해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만큼 짙은 여운이 남아있었습니다.

분명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어느 한쪽을 강요하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으며, 결국 불편할 수 있는 요소들이 전혀 불편하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아쉬운 점

  • 어려운 말들과 사투리들이 뒤섞여 내용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표준어를 구사하는 것은 화자 한 명뿐이며, 모두가 사투리를 쓰고 옛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한자로 이루어진 말들을 많이 쓰곤 합니다. 다행히 한자가 나오는 것 때문에 이해가 되기도 했고, 어느 정도 패턴에 익숙해져 자연스럽게 받아들 일 수 있었지만, 처음부터 나오는 이것들은 분명 독서에 방해가 되기 충분했습니다.

  • 이데올로기적 논쟁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물론 도서 자체는 그런 것들에 구애받지 않은 채, 배경으로만 사용하곤 했습니다. 정확히는 그것보다 사람에게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배경은 계속해서 함께 했고, 누군가에는 그것만으로도 불편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사람에 집중했음을 알고 끝까지 독서를 이어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 특정 종교에 대한 과도한 언급이 불편했습니다.

물론 그 종교를 맹목적으로 찬양하거나 지지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해당 종교를 권유하지도 않았지만, 생각보다 많이 언급되면서, 오히려 찬양하듯 보였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옳지 않다, 이단이다, 나쁘다는 판단을 한다면 직접적으로 알아보고 판단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총 평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언급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결국 한 사람에 집중하며,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돌아보게 합니다. 어쩌면 그의 장례식은 이 세상을 축소해놓은 서로의 이념이 대립하는 장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이며, 우리가 그, 그리고 모두이듯 결국 삶을 살아간 한 사람이며,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이었습니다. 비록 그가 누군가는 지지하지 않는 이데올로기적 사상을 갖고 있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저자는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냉정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흡인력 있고 매력적인 언어들은 조금은 떨어질지 모르는 가독성을 충분히 만회했습니다. 불편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은 기분을 느끼게 됐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9 구성 7 재미 8 재독성 8 표현력 9 가독성 7 평균 8)

부정적인 모습이건 긍정적인 모습이건 결국 한 사람, 한 남자, 한 아버지의 이야기.


감상자(鑑賞者)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198544128

그날 이후 아버지는 그에게 동생 대신이었다. 그러니 나는 동생이 살아 있었다면 용돈 쥐여주며 귀여워했을 조카였던 셈이다. 그 마음 쌩 깐 것이 늙어서야 마음에 걸렸다. 그래봤자 그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이 그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란 이렇게나 미욱하다. - P28

그런데도 두고두고 아버지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날, 아버지와 내가 무언가를, 사람 살이에 아주 중요할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놓친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 P32

이가 하나도 없어 합죽이였던 할머니는 허리끈을 풀지도 못한 채 마루에 털썩 주저앉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 합죽합죽 웃었다. - P36

그러게, 아버지의 사정은 아버지의 사정이고, 작은아버지의 사정은 작은아버지의 사정이지, 그러나 사람이란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사정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아버지는 그렇게 모르쇠로 딴 데만 보고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 P42

다만 하염없이 남은 인생을 견디고 있을, 만난 적 없는 아버지 친구의 하염없는 인생이 불쑥불쑥 내 삶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 P50

고요한 눈빛으로. 아버지의 죽음뿐이 아니라 곧 닥칠 자신의 죽음까지 덤덤하게 수긍한, 아니 죽음 저편의 공허를 이미 봐버린 눈빛이었다.

...

(중략)

...

삶이란 것이 오빠의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오빠가 밝은 햇빛 속으로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오빠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조문을 마치고 자신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 P85

한편으로 아버지는 입만 열면 옳은 말하는 잘나고 똑똑한 양반, 또 한편으로는 잘나서 빨갱이짓 하다가 집안 말아먹은 양반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고씨 집안의 자랑인 동시에 고씨 집안 몰락의 원흉인 것이다. - P90

먼지에서 시작된 생명은 땅을 살찌우는 한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법, 이것이 유물론자 아버지의 올곧은 철학이었다. 쓸쓸한 철학이었다. - P98

그 시간 속에는 우리 아버지 손잡고 가슴 졸이며 수술을 기다리던 순간도 존재할 터였다.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 P110

그때 잃은 아버지를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도 되찾지 못한 게 아닐까? 아버지를 영원히 잃은 지금, 어쩐지 뭔가가 억울하기도 한 것 같았다. - P159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 - P181

"또 올라네."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 P197

사무치게,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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