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읽는 로마사 - 1,000년을 하루 만에 독파하는 최소한의 로마 지식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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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윤덕노선생님은 신문기자를 거쳐 현재는 음식문화 저술가로 활동하고 계시다고 한다.

그가 로마역사와 음식 간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계기가 된 건 굴 때문이라고... 1세기 중반 로마 황제 비텔리우스는 앉은 자리에서 생굴 1,000개를 먹었다고 한다. 그것을 읽고 더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신듯 하다.


먹는 음식을 보면 그 사람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위치를 알 수 있으므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회 문화 계층에 속해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로마인의 식탁이 특별할까?

처음엔 로마인의 주식은 죽과 빵이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로마가 부유해져서 모든 사람이 풍족하게 빵을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식사때마다 와인을 마셨고 올리브와 가룸(garum)이라고 하는 생선 젓갈도 필수 였다고 한다.

그렇게 할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당연히 전쟁의 승리 다.

부족집단이었던 로마가 국가로 발전하게 된 첫번째 계기가 북쪽 에트루리라 왕국과의 전쟁이었고 승리의 전리품으로 얻은 로마부근 해변의 천연 소금밭 오스티아는 소금장사를 통해 로마에게 경제적인 세력을 쌓을수 있게 해 주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전성기 때 로마는 29개의 고속도로가 이탈리아 바깥의 13개 속주를 향해 뻗어 있었고, 372개의 간선도로가 당시의 서양 세계 구석구석을 거미줄처럼 연결했다.

이 모든것의 바탕에는 소금이 있었다. 최초의 로마 가도로 기원전 7세기 무렵에 시작된 '비아 살라리아'를 꼽는다. 여기서 살은 라틴어 소금이다. 고대에는 소금이 햐얀 황금이라 불리울 정도로 귀한 상품이었고 이 소금으로 인한 부의 축적이 로마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소금은 또한 정치적인 도구로도 사용되어 그 비싼 소금이 로마에서는 무상분배로 쓰이며 민심을 잡는데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 황제 사후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이후 무상분배가 사라졌다.

소금인 식품뿐만 아니라 로마에서는 공급이 많았기 때문에 미용, 의약등 여러분야로도 활용되었다. 소금때문에 샐러드도 생겨났고 소시지도 만들어지게되었다.(살라미가 짠 이유가 납득) 또한 풍족한 소금덕분에 젓갈도 풍족하게 만들어 낼수 있었고 이로 인해 식탁위에 다양한 젓갈의 활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로마인들의 가장 중요했던 '가룸'을 풍족히 만들어 먹을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로마의 가장 중요한 전쟁 포에니 전쟁을 통해 로마는 밀밭을 확보하게 되고 그 후 로마의 식탁에는 빵이 가득해 진다. 로마시대 먹던 빵은 현재 우리가 먹는 빵과는 달랐다. 현재 우리가 먹는 빵은 대부분 18세기 후반에 이후에 만들어졌다. 빵의 주 원료인 밀의 공급이 전쟁의 승리로 원활해 지면서 로마에는 죽에서 빵으로 주식이 옮겨 가게 되었으며 빵의 공급으로 현재의 빵집과 같은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또한 로마는 빵의 무상 배급으로 인해 경제가 위태로운 지경까지 갔지만 민심을 잡기 위한 가장 좋은 도구는 "식"과 관련된 것이었다. 결국 나중엔 무상으로 배급받는 인원도 늘어나게 되고 품목도 기름, 와인, 돼지고기까지 공짜로 나누어주는 아노나는 빈민을 위한 구제 공공복지 제도에서 출발했으나 마지막은 포퓰리즘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로마인들은 모든 식사가 아닌 제대로 차려진 저녁식사나 만찬에서만 트리클리닝움이라고 불리우는 소위 다이닝룸엣 삼면에 클리나이라는 코치 형태의 의자를 낮은 식탁 주위에 놓고 누워서 식사 하였다. 여기서 여성, 아이, 하인과 노예는 제외되었으며 다만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자격으로 만찬에 참가하였을 경우에는 같은 포즈로 식사를 하였다.

이것은 "자격이 있는 성인이 격식을 갖춘 식사에 참석해 요리를 먹을 때 취하는 자세"를 의미했다.

이것의 기원은 고대 아시리아왕국의 풍속에서부터 엿볼수 있다. 로마는 그 커다라 콜로세움을 지어놓고도 이집트와 아시라아왕국의 유물과 비교를 하는 시등을 지은것을 보면 아시리아왕국의 위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살짝 가늠이 된다.(주관적인 생각)

보미토리움은 먹고 토하는 방으로 알고 있으나 저자는 사실은 콜로세움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번에 나오는 걸 의미한다고... 로마인들이 많이 먹기 위해 먹고 토한것은 사실이나 토하는 방이 따로 있었던걸로 보이지는 않는다.

로마시대에도 지금과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패스트푸드의 기원이라고 불릴만한 음식의 형태들이 거리에서 많이 팔고 유통되기도 했다.


작가는 로마의 길이 발전하게 된 원인을 사람들의 식탐으로 인해 로마로 많은 식자재를 나르기 위해 로마의 도로망이 발전하게 되었으며 굴 양식장에서 겨울에도 굴이 얼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난방기술을 개발하였는데 이것이 나중에 목욕문화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그들이 사랑했던 와인과 올리브 또한 그들의 모든 문화에 빠지지 않는 재료들이었다.


로마가 그렇게 풍족하게 사치스럽게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전쟁의 승리 였고 그들이 망하게 된 원인은 민심을 잡기 위해 먹는 것으로 빈민구제 사업을 시작했던 것이 나중에는 포퓰리즘으로 번져 민심의 커져버린 욕구를 채울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로마라는 나라는 사라졌으나 그들의 문화는 각 세계로 뻗어서 지금도 우리나라의 식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놀랍다.


*이 책은 리딩투데이서 지원받아 읽고 작성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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