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학의 종언' 앞에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가라타니 고진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그저 문학의 아우라에만 집착하는 그의 비평은, 그의 에티카는 이미 훼손될 운명에 놓인 것 아닐까. '전복을 위한 전복'의 에티카를 꿈꾸지만 그 전복의 수혜는 독자의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부질없어 보인다. 종언에 대해 온전히 몸부림치지도 못하면서 곁눈질하는 양 비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