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별과 커피진주의 책읽기

  
정혜윤(CBS 라디오 프로듀서) 

 

  안녕, 동쪽별. 바야흐로 너의 계절이 왔구나. 넌 지금 혹시 어느 집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것 아니니? 혹시 연평도 떨고 있는 교회 위에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는 벌거벗은 천사처럼 올라가 있는 것은 아니니? 아니면 이 도시의 어느 곳에 네 영혼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니니? 거기서 지상의 낮은 별 하나 솟아나려나? 그렇다면 나는 높은 산 위에 올라 네가 있는 쪽을 내려다볼게. 깜빡여 줘.

  나는 어제 오늘 크리스마스 캐럴 생각을 좀 해봤어. 이 크리스마스에 궁극적으론 그 아무것도 너를 어둡게 하지 않길 바라서이고 너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고 싶어서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크리스마스 캐럴의 내용을 짠돌이 냉혈한 스크루지가 안개 낀 크리스마스 이브에 세 유령을 만나 개과천선한다는 것 정도로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의 크리스마스 캐럴 이야길 네게 들려줄게. 우선 스크루지가 세 유령을 만나는 것은 사실이야. 그런데 런던판 샤일록인 스크루지는 유령을 만나기 전에 죽어버린 동업자 말리를 자신의 음산한 집에서 만나게 돼. 스크루지는 죽은 말리의 얼굴을 보자 벌벌 떨면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해. 그러자 쇠사슬을 칭칭 감은 말리는 슬픔에 젖어서 이렇게 말해. 

   
  누구든 자기 안의 영혼이 주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멀리 여행도 다니게 해줘야 하는 법이네. 그러나 생전에 그러지 못한 영혼은 죽은 후에라도 그래야 하지. 비통하도다!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산 사람들이 누리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다니! 이승에 있다면 나 역시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나는 벌써 이 부분부터 죽은 말리가 가깝게 느껴져. 말리는 스크루지에게 이제 그만 인정을 베풀고 살라든가, 돈에 집착하지 말라든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야. 말리가 말한 것은 오로지 영혼이었어. 말리는 자신의 영혼이 쉴 수도 머물 수도 오래 지체할 수도 없이 지루한 고행을 계속하게 된 것은 평생 한 번도 경리 사무실, 환전소 소굴의 좁은 울타리 밖을 나간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해. 그리고 자신이 차고 있는 족쇄 역시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살아생전에 만든 거라고 말하고. 말리는 하루에도 열몇 번씩 스크루지 옆에 앉아 그를 지켜보다가 스크루지에게 단 한 번의 기회와 희망을 주고 싶어졌기 때문에 종이 울릴 때 세 유령을 차례차례 보내겠다고 말하지. 그런데 죽은 유령이 산 인간의 삶에 기회와 희망을 주기 위해 개입하고 싶어 한다면 그때의 유령의 정체는 뭐니? 말리의 말이 너무나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니? 사실 스크루지를 묘사하는 구절 중에 바깥이 춥든 덥든 스크루지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말이 나와. 그는 아무리 더워도 더위를 타지 않고 아무리 추워도 떨지 않는 자이며 눈보라도 장대비도 그를 이길 순 없어. 어떤 것도 스크루지의 마음을 움직이진 못해. 스크루지는 빈틈없는 자. 떨림과 망설임이 없는 자. 균열 없는 자. 그렇다면 스크루지는 살아 있으되 살아 있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살아 있는 스크루지가 더욱 비인간적이고 죽은 자 같고 죽은 유령 말리가 더 인간적이고 살아 있는 것같이 느껴지지 않니? 말리가 사라져간 크리스마스 이브의 하늘엔 유령들이 한가득 떠다니고 있어. 그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비탄과 후회, 자책과 한탄의 소리를 구슬프고 음산하게 내면서 하나같이 자신이 살아생전 만든 쇠사슬을 차고 있어. 이제 유령들은 인간적 유대감, 우정, 사랑으로 연대되지 못하고 오로지 쇠사슬로만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지. 그리고 그 형체 없는 유령들의 진정한 슬픔은 다름 아닌 이제라도 선의로 인간의 일에 개입하고 싶어도 영영 그럴 수 없다는 데 있었어. 

  이 부분까지 읽으면서 나는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의 하늘을 올려다봐.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것처럼 오늘 밤도 안개가 자욱해. 나는 유령과 유령의 개입에 대해서 생각해 봐. 나는 죽었다 깨어났다, 죽을 뻔했다, 죽은 셈치고, 다시 태어난 셈치고 등등의 말을 생각해 봐. (왜냐하면 이 유령들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너무나 원하겠지?) 이런 순간의 죽음이란 건 뭘까? 생물학적 죽음뿐 아니라 이렇게 상징적인 죽음도 진정한 죽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위해서 우리는 죽음 너머를 생각해 봐야 할지 몰라. 삶과 죽음에 지배당하는 게 아니라 그 너머를 보는 거야.

  나는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나온 그 문장(쿤데라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듣는 것과도 같은 충격적인 울림을 받았다고 한 그 문장)을 떠올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나는 이 문장을 알기 전에는 유령들을 공동묘지와 기괴한 집과 풀어헤친 머리와 복수와 광기, 피와 죽음과 죄의식과 범죄와 한의 불길하고 공포스러운 밤의 카니발의 느낌과 더 연결시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러나 이 문장을 읽고 나선 유령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어. 유령은 사회적으로 억눌린 자, 그러나 더 이상 억눌리기를 원치 않는 자, 낙오된 자, 희생양, 혁명을 원하는 자, 금지되었던 것을 감히 원하게 된 자, 집 없는 자이되 왜 집이 없느냐고 묻는 자, 사회적으로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자, 이기적이고 반성하지 않는 우리에게 꼭 할 말이 있는 자, 이런 이미지들과 더 연결되었어.즉 유령에겐 할 말이 있고 할 일이 있고 보여 주고 싶고 깨뜨리고 바꾸고 싶은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 그리고 그런 유령이라면 호감이 가는 걸 숨길 수가 없어. 유령을 위한 휴머니즘(혹은 어리석은 인간을 위한 유령들의 휴머니즘)이 필요할 거란 생각까지 들어. 그렇다면 크리스마스 캐럴의 유령은 어느 계열일까?

  스크루지는 이제 말리의 개입으로 세 유령들을 만나게 돼.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말이야. 과거, 현재, 미래를 본 그가 점점 어떻게 변하는지 이미 우리는 결론은 알고 있어.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할아버지 모델 같은 후덕한 인상, 누구나 존경하는 자선 사업가로 변했잖아. 말리의 선택은 옳았어. 스크루지는 기회와 희망을 갖게 돼. 그런데 스크루지에게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사람이 그렇게 극적으로 변하는 데는 우선은 두 가지 정도 동기를 들 수 있을 것 같아. 하나는 자기 자신이 원래는 더 괜찮은 사람일 수 있었다는 생각에서, 이 경우 자신이 뭘 잃어버리고 살았는지 깨닫고 그걸 회복하고 싶어 해. 두 번째는 반대로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란 인식에서, 이 경우 철저한 부정에서, 오히려 그 부정 때문에만 긍정으로 나가는 거야. 스크루지는 첫 번째 쪽에 더 가까워. 중요한 건 유령이 스크루지 죄의식의 이면, 균열 없음의 이면을 보고 균열을 내주었단 거야. 유령은 스크루지를 죽었다 깨어난 것같이 만들어. 나는 이제 스크루지의 변신을 지켜보는 말리에게도 평온이 있을까 궁금하지만 디킨스는 그걸 나의 상상의 영역으로만 남겨 두네. 나는 유령에 불과한 자,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죽은 거나 다름없는 인간에게 ‘개입’함으로써 준 선물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어.

  그런데 스크루지처럼 많은 재산을 갖고 있지 못한 우리는 어떻게 회심을 표현한다지? 그것에 대해서는 재산 없는 자의 대표로 내가 좀 고민해 봤어. 다음 주에 그 이야기 좀 더 해볼까?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 글을 읽을 너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  

   
  크리스마스 전날 밤, 12시
“지금 그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우리가 벽난로에서 꺼져 가는 불 옆에 무리지어 앉자
한 장로가 말했다.

우리는 밀짚 깔린 우리에서 살고 있는
온순한 동물들을 그렸다.
그 동물들이 그때 무릎을 꿇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의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 시대에 극소수의 사람들이 만들어낼
환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누군가가
우리가 어린 시절에 잘 알고 있었던

저기 험한 골짜기 옆 쓸쓸한 농가 마당에서
황소들이 무릎 꿇는 것을 와서 보라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며
그와 함께 어둠 속으로 들어가리라

                              (토마스 하디, 「황소들」)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며 눈 꼭 감고 기도하고 싶은 게 있니? 그렇다면 너의 유령이 되어서 길을 안내하고 싶어. ‘그와 함께 어둠 속으로 들어가리라.’ 이것이 나의 선물. 그런데 너 말이지? 크리스마스 이브에 우리 어디 조그만 묘지에서 만나는 건 어때? 우리도 죽었다 살아난 것처럼 이 한 해를 보내자! 이것이 너에게 보내는 나의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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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 캐럴> 

   찰스 디킨스 / 이은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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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별 / 민규동

영화감독, 제작자. 「창백한 푸른 점」, 「여고괴담 2」,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오감도」 등을 만들고 「키친」과 「김종욱 찾기」 등을 제작했다.


커피진주 / 정혜윤

CBS 라디오 프로듀서. 「김어준의 저공비행」,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행복한 책읽기」, 「송정훈의 올댓재즈」 등 시사교양, 휴먼다큐, 음악 전문 프로그램 등을 기획, 제작했다. 독서 에세이 『침대와 책』, 인터뷰 모음집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여행 에세이 『런던을 속삭여 줄게』 고전 탐독 에세이『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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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쪽별과 커피진주의 책읽기

  
정혜윤(CBS 라디오 프로듀서) 

 

  안녕, 동쪽별. 넌 늦잠 자는 걸 좋아하니?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날도 있니? 얼마 전에 청순한 미인을 쫓아서 (그런데 그녀가 물안경 벗은 모습을 보긴 봤니? 네가 완벽한 미인을 만나긴 만났는데 아직 물안경을 벗은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고 해서 나는 너의 상상력의 무한함에 놀라야 할지 반대로 너의 상상력의 절박함에 애틋함을 느껴야 할지 잠시 망설였어. 결국 감탄 반, 위로 반의 심정이 되었다고나 할까. 너는 어쨌든 강한 사람이야.) 거대한 목욕탕 같은 수영장으로 수영을 하러 다니기 전에는 네가 그랬던 걸 알고 있는데 요샌 어떠니? 오늘은 우리 회사 창사 기념일이라서 난 하루 종일 침대 밖으로 나오질 않고 자다 깨다 했어. 마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같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새벽녘에 꿈을 꿨어. 무척 기분 좋은 꿈이었고 나는 꿈속에서 깔깔깔 웃었는데 꿈을 깨고 나서도 계속 소리 내서 웃고 있는 거야. 웃음은 남았어도 꿈 내용은 하나도 생각이 나질 않았어. 에드거 앨런 포 식으로 말하자면 꿈의 거미줄을 뚫고 나오긴 했는데 그만 그 거미줄이 너무나 섬약해서인지 심연 너머의 그 무엇을 놓치고 만 거지. 어쨌든 아직까지도 내 이마에도 어젯밤 꿈의 흔적이 물결치며 남아 있을지 몰라. 그런데 우리의 앨리스는 모든 걸 기억하는 소녀 같아. 『거울 나라의 앨리스』 마지막 편에서 앨리스는 권장할 것은 못 되는 성격을 가진 붉은 여왕을 식탁에서 들어 올려서는 온 힘을 다해 흔들고 흔드는데, 그런데 여왕은 더 이상 여왕이 아니고 짧아지고 통통해지고 부드러워지고 동그래지더니 마침내 새끼 고양이가 돼버린 거야. 그래서 앨리스는 고양이 키티에게 이렇게 말해  

   
  자, 키티야,
이제 누가 이 모든 걸 다 꿈꾼 건지 생각해 보자.
이건 정말 진지한 질문이야.
그렇게 계속 발을 핥으면 안 돼.
키티야, 꿈을 꾼 건 분명 나이거나 붉은 왕이거나 둘 중 하나야.
붉은 왕은 내가 꾼 꿈속에 나왔지. ……그럼 나도 그가 꾼 꿈속에 나왔던 거란 말이야.
붉은 왕이었을까, 키티야?
여러분은 누가 꾼 꿈이라고 생각하나요?
 
   

  이렇게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대단원의 막을 내려.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앨리스의 꿈이었을까? 고양이 키티의 꿈이었을까? 아니면 둘이 동시에 꾼 꿈이었을까? 누가 꾼 꿈인지 따지는 것이 과연 중요한 의미가 있기나 한 걸까? 그런데 너는 인생이 한바탕 ‘꿈’이라고 생각하니, 아니면 언젠가는 ‘이뤄야 할 꿈’이라고 생각하니? 혹시 누군가는 이런 질문이 부질없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하지만 나에게는 중요해. 이런 질문들 안에서 타인은 나의 일방적인 욕망, 이해관계의 대상이길 멈추게 되고 그런 순간에 나는 타인의 영혼과 꿈을 진심으로 궁금해하게 되고 타인도 나의 삶에 참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분별력을 갖게 되니까. 나는 언젠가 이런 질문들을 무수히 테이블에 늘어놔 본 적이 있어. 하트나 클로버를 그리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그려가면서 말이야. 타로 점을 보는 친구를 따라가서 카드들이 순식간에 예언처럼 섞이는 것을 지켜볼 때였어. 그때 나는 타로 카드가 아니라 카드를 섞는 손가락을 눈이 빠지게 바라보는 내 친구의 절박한 시선에만 사로잡혔어. 인생은 혼란 속에서나마 꼭 듣고 싶어 하고 알고 싶어 하는 어떤 절실한 것들이 있을 때에만 한껏 신비로워질 수 있단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 반지를 향하는 욕망보다도 더 강렬하게 나의 절대 질문들을 여섯 장의 타로 카드처럼 뽑아 들었어. 이를테면 이런 질문들이야.  

  ‘인생은 매 순간 한 권의 책일까? 아니면 언젠가는 결말을 맺어야 할 한 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는 과정일까?’
  ‘내 인생은 나만의 고유한 것일까? 아니면 타인의 삶에 끼어든 낯설고 우연적인 것일까?’
  ‘인생을 무대로 생각한다면 난 단 한 번의 리허설 기회조차 갖지 못한 불운한 주연배우일까? 아니면 조연도 못 되고 오로지 신이 차려놓은 무대 밖에서 헛되이 소리만 지를 수 있는 관객에 불과할까?’
  ‘내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은 우연 혹은 운명이란 이름의 필연이었을까? 선택이었을까?’
  ‘이루어진 꿈, 입 밖으로 나온 말들이 중요할까? 아니면 마음속으로만 꿈꾸다 사라져버린 계획들, 결코 말로 표현되지 못한 것, 비밀들이 훨씬 더 중요할까?’

  나는 이런 질문들을 절대 잊고 싶지가 않아. 대답을 누가 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야. 세계가 그 대답이 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이 대답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울고 싶게 만드는 무수한 이야기들만이 대답 대신 남았다가 결국 사라져가게 될까? 그런데 묘하게도 도시의 허공에 떠도는 이런 이야기들은 비슷한 얼굴들처럼 서로서로 닮은 채로 어떤 특수한 영혼을 나눠 갖고 있을 것 같아.

  나는 언젠가 노란 개나리 나무에 일렁이는 햇살 아래서 눈이 부셔 눈을 찌푸릴 때 네가 이제 그만 공기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싶어 한다고 진심으로 느꼈고 그래서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너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사라지지 마라, 사라지지 마라!’ 주문을 걸었던 것을 기억해. 이런 기억들, 그리고 오로지 은유로만 외설적이었던 너의 기질들, 달의 뒷면에 홀로 있으려 하는 너의 고독을 생각해 보면 너는 인생은 ‘이뤄야 할 꿈’이 아니라 ‘밤의 꿈’, ‘잠의 꿈’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 그럼 나의 인생은 내가 꾼 꿈일까? 아니면 네가 나를 꿈꾸는 것일까? (허락도 없이) 만약 우리 둘이 동시에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면 슬픔조차도 달콤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도 꿈에서 깨어나면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깨어나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까? 그런데 내가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 나를 꿈꾸고 있다면? 그때 나는 꿈꾸지 말아주세요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깨어나야 할까?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그런데 인생을 한바탕 꿈이라고 생각해도 그 꿈은 홀로 꾸는 꿈인지, 사랑하는 연인 둘이서만 꾸는 꿈인지, 원수 같은 둘이서 꾸는 꿈인지, 우리 모두가 같이 꾸는 꿈인지, 신이 꾸는 꿈인지에 따라서 세계와 내가 맺는 관계가 달라지는 것 같아. 이 고민은 셰익스피어와 보르헤스와 우나모노와 토마스 만을 사로잡았던 게 틀림없어. 우나모노는 홀로 잠든다는 것은 단 하나의 꿈을 꾼다는 것이고 단 한 사람의 꿈은 환상이고 외양일 뿐이라고 말해. 그러나 두 사람의 꿈은 진실이고 현실이고 그런 식으로 현실 세계는 우리 모두가 꾸는 공통의 꿈이라고 말하면서 홀로 잠들지. 물론 같이 꿈꿀 사람을 찾으면서. 같이 꿈꾸기가 너무나 중요하니까. 우나모노의 결론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일 것 같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꿈 이론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 나와. 

   
  자신의 영혼으로만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이긴 하지만 다 함께 익명으로 꿈을 꾸기도 한다고 나는 말하고 싶어. 우리는 하나의 커다란 영혼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며 그 영혼은 자신이 몰래 늘 꿈꾸어 오던 대상에 관해 우리를 통해 각기 나름대로 꿈꾸는 것이다. 그 영혼의 청춘이며 희망에 관해 그 영혼의 행복이며 평화에 관해, 그리고 그 영혼의 피의 향연에 관해 꿈꾸는 것이다.  
   

  자, 말해 봐, 너는 나를 통해 무슨 꿈을 꾸고 있지? 세계는 나를 통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좀 더 궁극적으로 세계가 나를 꿈꾸지 않는다면 나도 없는 걸까? 만약 네가 내가 꾸는 꿈이라면, 그리고 만약 내가 네가 꾸는 꿈이라면 이런 자리바꿈은 뭘 의미하는 걸까?
  언젠가 나의 훌륭한 친구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이처럼 자리바꿈한 적이 있어. ‘네 몸을 네 이웃과 같이 사랑하라.’ 그 순간 그 말은 너무나 인간적으로 타당하게 들렸어. 그 말 안에서 다른 사람과의 거리는 숨 막힐 정도로 가까웠어. 우리는 다른 사람 때문에만, 다른 누군가가 나에 대한 꿈을 계속 꿀 때만 존재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 부탁해. 누구도 똑같은 꿈을 두 번 꿀 수는 없는 거라면 나를 꿈꾸기를 멈추지 말아 줘! 나는 또 나의 꿈속에서 너의 꿈에 도달하려고 꿈속에 머물려고 계속계속 움직일 거야.

  그런데 이런 꿈 이야기를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와 섞는 게 불가능한 건 아냐. 우리 모두는 꿈을 꾸고 있는데 이제 막 깨어났어. 그러고는 깜짝 놀라서 눈을 비비며 꿈속의 실수와 엄중 경고들을 잊지 않으려고 굳게 결심해. 꿈에서 깨어났으니 꿈의 조각들을 붙잡고 이제부터라도 잘해 보려고 하는 거지. 그게 누군지 아니? 『천일야화』의 왕자들이 그러했고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 영감이 그랬을 거야. 실은 나도 거의 매일 아침 그런 생각으로 우당탕 뛰어 나오긴 하지만. 그러니 우리 다음엔 스크루지 영감 이야기를 해볼까? 그런데 그래도 한 가지 의문은 남아. 오늘 아침 일어났는데 나는 어제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느끼는 거야. 그럼 나는 누구지? 나의 고요한 키티, 대답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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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 나라의 앨리스 _ 펭귄클래식 72 

 루이스 캐럴 / 삽화 존 테니얼 / 이소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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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하나 2010-12-17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허브차 마시면서 졸린 눈 부비부비하며 읽으니 더욱 꿈에 대한 이야기가 와닿습니다 ㅋㅋ
다음은 어떤 고전을 들고오실 건가요? 기대되용 >ㅅ <

esprit 2010-12-17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이쁜 글들이네요^-^ <거울 나라의 앨리스> 잘 따라서 읽었습니다! 다음 회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딱 맞게 스크루지 영감을 만날 수 있겠군요!
 

 

  동쪽별과 커피진주의 책읽기

  
정혜윤(CBS 라디오 프로듀서) 

 

  안녕. 동쪽별. 지난주 아주 추운 밤에 촬영 중이었다고 들었어. 네가 영화를 준비하고 찍는 동안 네 자신이 영화 만드는 기계가 아니란 걸 잊지 않기 위해 하는 일이 있을까,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상상해 봤어. 어쩌면 너는 영화를 찍는 동안에는 네가 인간임을 숨기려고 애쓰는 쪽일 수도 있을까? 난 요새 편집실에 많이 앉아 있어. 그런데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가끔 모니터에게 말을 걸고 있는 나를 발견해. 엄밀히 말하면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한 인간의 음성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게 맞겠지만 더 따지고 들면 그것도 틀린 것 같아. 어쩌면 말로 표현되지 못한 것. 들리지 않는 것에 말을 걸고 있다는 쪽이 더 맞는 것 같아.나는 사람들이 잃어버리려고 말하는 건지 되찾으려고 말하는 건지 가끔 궁금해.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빠른 톤의 말, 높은 톤의 말. 느린 톤의 말, 낮은 톤의 말, 그것들이 병원 환자용 모니터의 심장 박동처럼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져. 뭔가 움직인다는 건 날 늘 안심시켜. 주파수, 신호들. 이런 것들이 날 안심시켜. 모니터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헛된 움직임은 없는 것만 같이 느껴지고, 또 모든 움직임은 단 하나의 욕망, 즉 살아 있으려는, 존재하려는 공통된 욕망을 표현하는 것같이도 느껴져. 가끔 편집실에서 모니터의 파동들을 지그시 눌러봐. 내 손가락 끝에서 파동들은 명멸하면서 파르르 약하게 떨려. 그러면 누군가에게 손가락 하나 대는 일도 엄청난 무게로 다가와. 

  그런데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내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둘이나 남았으니까 서둘러야겠지. 우리 뚱뚱보 험프티 덤프티는 허리인지 목덜미인지에 벨트인지 넥타이인지를 매고 있지. 당연히 앨리스는 그게 넥타이인지 벨트인지 나처럼 아리송해하지. 그래서 자상하고 친절하고 다소 뻐기기 좋아하는 험프티 덤프티는 이렇게 설명하지.
   
“넥타이란다. 얘야. 하얀 왕과 하얀 여왕이 선물한 건데
안생일 선물로 주신 거란다.”
앨리스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뭐라고요?”
“난 화 안 났는데..”
“제 말은요. 안생일 선물이 뭔가요?”
“당연히 생일이 아닌 날에 주는 선물이지.”
“전 생일 선물을 제일 좋아해요.”
“넌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구나. 1년에 며칠이 있지?”
“물론 365일이 있죠.”
“그리고 생일이 며칠이나 있지?”
“하루요.”
“365일 중에 하나를 고르고 나면 며칠이 남지?”
“364일이 남죠.”
험프티 덤프티가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종이에 써서 보는 게 낫겠다”
앨리스는 공책을 꺼내면서 슬그머니 미소가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계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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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프티 덤프티는 공책을 받아들더니 자세히 살펴보았다
“제대로 한 것 같은데.”
그가 입을 열었다
“거꾸로 들고 계시잖아요.”
앨리스가 말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아 그렇군……. 그러니까 계산할 걸 보면 안생일 선물을 받을 날은 364일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엉뚱한 것으로 치자면 험프티 덤프티가 그 옛날의 너에게 결코 뒤떨어지지 않지. 나는 이 장면을 읽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 어린 시절의 이데아 같은 것이 엿보여서일까? 그렇다기 보다는 이 장면은 나에겐 생일과 선물 각각의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아. 오늘은 생일에 대해서만 말할게. 우리는 생일이라 하면 일 년 중 단 하루만을 생각해. 그렇지만 우린 다른 생일도 상상해 볼 수 있어. 『이웃』이란 책에 나오는 이런 문장을 너에게 말해 주고 싶어
    
“자연적인 출생일은 개별성의 운명에 커다란 의미를 갖는 날이다. 왜냐하면 보편성 안에서 공유하는 것이 그것을 바탕으로 특수한 것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이날은 어둠속에 감춰져 있다. 자기의 출생일은 인격의 출생일과 동일하지 않다. 자기뿐 아니라 성격 또한 그 자신의 출생일이 있다. 어느 날 그것은 무장한 인간처럼 인간을 급습하여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성취한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인간은 세계의 한 파편. 심지어 그의 고유한 의식 이전의 존재이다.”(『이웃』 중에서)

  우리의 인격, 성격에도 출생일이 있다는 생각 혹시 해본 적 있니? 도저히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날이 너에겐 있니? 깨달음의 파도가 널 덮친 날이 있니? 새로 태어난 것 같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도 있니? 그런 식으로 너에게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제2의 생일 아침, 그런 빛이 있니? 괴테는 여행자로서 로마에 처음 들어가던 날을 제2의 생일이라고 명명했어. 제2의 생일이란 제2의 탄생, 즉 재탄생을 의미하는 거겠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 그 가능성은 환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이고 절박한 이야기 같아. 나는 인간과 책의 공통점을 궁금해하듯이 인간과 기계,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 어쩌면 기계에게는 ‘안생일’이 없을지도 몰라. 한번 태어난 기계에게 남은 운명은 재탄생이 아니라 마모됨와 수리됨, 처리됨뿐일지도 몰라   
  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몇 개의 제2의 생일이 있다고 생각해. 나는 가끔 눈을 꼭 감고 제2의 생일들을 과거의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해 보곤 해. 제2의 생일들과 그날의 이야기들은 해가 갈수록 선명해져. 그리고 그때마다 “음! 시작은 나쁘지 않았군.”이란 기쁨과 함께 내 인생(내가 편의상 운명 내지 운명적이라고 표현하는 것까지 포함해서)은 나에게도 많은 것이 달려 있다는 꽤 대단한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게 돼, 그리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희열과 맘속 깊은 곳의 자유 같은 걸 느껴.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한 바퀴 같이 도는 것같이 느껴진다고도 할 수 있어. 그러고 나서 눈을 뜨고 나면 뭔가 시작해 볼 결심 같은 것도 하게 되곤 했어. 일 년 364일 안생일 선물을 받으려는 험프티 덤프티의 이 황당함은 ‘의지’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어느 날  아침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지 않으려는 의지 말이야. 해산을 마친 어머니의 고통과 기쁨과 함께 다른 고통과 기쁨도 느끼려는 의지 말이야. 

  그런데 생일날 자기 자신에게 최고의 선물을 준 사람을 하나 알고 있는데 짧게라도 소개해도 되지? 까뮈의 스승이기도 했던 장 그르니에야. 그 사람은 자신의 생일날 자신에게 바캉스를 줘. 그때의 바캉스는 휴가의 바캉스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러니까 일체의 행동이나 생각, 의사의 교환, 오락, 유흥 들을 하지 않는 완전한 무, 중단된 시간을 말하는 거야. 장 그르니에는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몽롱한 몽상의 시간이라고도 하고  공백의 시간이라고도 말해. 그런데 그는 왜 생일을 그렇게 보내고 싶어 했던 걸까? 그에겐 이런 일이 있었어. 그는 생일날 알제의 바다를 보려고 아랍인들 동네 꼭대기로 올라가고 있었어. 날씨가 나쁜데도 그는 엄청난 정적을 느꼈어. 마치 우리가 오늘 같은 함박눈 속에서 정적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건지도 몰라. 그는 그냥 걸어갔어. 그런데 그건 무를 향한 발걸음이 아닌걸 알게 되었어. 왜냐하면 눈앞에 보이는 장밋빛과 흰빛의 바둑판무늬 같은 아랍인들 마을, 중학교의 직사각형 교사들, 군데군데 쪽빛으로 짙어지는 푸른 바다가 장 그르니에를 저희들의 존재에 참여시켜 준다고 느꼈던 거야. 의지가지 없는 존재들끼리 서로서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처럼. 그래서 장그르니에는 그때의 감정을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절대적 통일을 실감했다’고 말해. 장그르니에의 이 문장을 읽어보렴.  
 
“나는 오늘 아무것도 하는 일 없는 공백의 페이지다. 완전히 공백 상태는 오늘만이 아니다. 내 일생 속에는 거의 공백인 수많은 페이지들이 있다. 최고의 사치란 무상으로 주어진 삶을 얻어서 나에게 그것을 준 이 못지않게 흐드러지게 사용하는 일이며 무한한 값을 지닌 것을 국부적인 이해관계의 대상으로 만들어놓지 않는 일이다.” (『섬』 중에서)

  그런 생일을 보내고 장 그르니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과 ‘자신’을 더 이상 구분하지 않게 돼. 나는 장 그르니에야말로 매해 자신의 생일을 재탄생의 날, 제2의 생일로 만들었을 거라고 믿어. 아침 꽃을 저녁 꽃과 만나게 하는 것 같은 신비로운 기분이었겠지?

  내가 널 실망시킬 때마다 ‘무상으로 얻은 내 삶을 내 사소한 이해관계의 대상으로 만들어놓지 않기 위해’ 란 말을 나에게 또박또박 들려줘. 나는 다시 삶과 가까워질 거야. 다시 인간과 가까워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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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롤 지음, 존 테니억 그림, 이소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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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쪽별과 커피진주의 책읽기

  
정혜윤(CBS 라디오 프로듀서) 

 

  안녕 동쪽별! 첫눈은 봤니? 난 일요일 밤에 인천의 영안실에 가는 길에 첫눈을 봤어. 영안실 가는 길에 보는 첫눈의 느낌은 어떤 절실함의 감각을 불러일으켰어. 가로수 나뭇가지들은 모두  창백했고 눈은 내 쪽으로 사정없이 쉴 새 없이 날아왔어. 가로등의 노란색은 접시같이 큰 눈으로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어. 저 깃털같이 날아가는 눈이 어쩐지 우리 삶을 말해 주는 것 같지 않니? 사라지는 삶, 사라지면서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삶. 그런데 눈들은 마치 꼭 있어야 할 곳을 찾아가는 사람같이 급히 날아가지 않니? 아직 사라지기 전의 모습을 꼭 기억해야만 한다고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더 황급히 가버리는 것 같지 않니? 그러니 저 눈은 사람의 속마음을 꼭 닮지 않았니?

  나와 동행한 후배는 숲 해설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어. 나는 그에게 물어봤어.
  “저렇게 나뭇잎을 다 떨어뜨린 나무를 보고도 그 이름을 알 수 있어?”
  “네, 선배 알 수 있지요. 나무껍질과 그리고 순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나는 눈 속에서 마치 자작나무처럼 희끄무레하게만 보이는 나무들을 유심히 바라봤어. 찬미할 사람을 곁에 두지 못한 나무들은 일순간 하얀 노인들처럼 보였어. 나는 나무순과 나무껍질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고 속으로 생각했어. 입에 성에가 끼는 기분이 들었던 건 내 가슴에 뭔가 뜨거운 것이 뭉클하게 올라와서였을까?

  그날 돌아와서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마저 쓰려고 끙끙댔어. 어쩐지 하얀 기사의 시가 계속 생각이 났어.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해. 잠시 무릎에 너의 따뜻한 손을 올려놓고 들어볼래? 

   
  하얀 기사의 노래

그대에게 모든 걸 다 말하겠어요.
말할 게 거의 없지만요.
문 위에 앉아 있던,
늙다리 남자를 만났지요.

“누구신가요, 어르신?” 내가 물었지요.
“어떻게 사시나요?”
그러자 그의 대답이 내 머릿속을 졸졸 흘렀네.
체 사이로 물이 빠져나가듯이.

그는 말했네. “나는 나비를 찾고 있었지.
밀밭에서 잠자는 나비를.
나는 나비를 양고기 파이로 만들어
거리에서 판다네,
거친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나는 밥을 벌어먹는다네.
조금 들어보겠나.”

하지만 나는 수염을 녹색으로
물들일 생각을 하고 있었지.
그리고 항상 커다란 부채를 쓰면
사람들이 보지 못하겠지.
그래서 노인이 한 말에
대답할 거리가 없어서
나는 외쳤지. “여보세요, 어떻게 사시는지 말씀해 달라니까요!”
그리고 노인의 머리를 탁 쳤네.

 
   

  그러니까 이 시 속의 어떤 사람은 한 노인을 만나서는 누구냐고 물어보고는 속으로는 딴생각에 사로잡혀 있어. 노인의 말이 머릿속에 남아 있을 턱이 없으니까 그는 도리어 버럭 소리 지르는 거지. “여보세요, 어떻게 사시는지 말씀해 달라니까요!” 그럼 노인은 또 자기 이야기를 계속해. 길을 가다가 시냇물을 만나면 나무껍질에 하얀 표적을 새긴다고도 하고 대구의 눈을 사냥해서 조끼 단추로 만든다고도 하지. 하지만 노인의 말이 들리기 시작하는 것은 그가 딴생각을 마친 후의 일이야. 그런데 이 시는 그렇게 무심하게 끝나지만은 않아. 먼 훗날 갑자기 노인이 생각이 나는 거야. 그게 언제일까? 바로 이럴 때.

   
  혹시라도
내 손가락에 풀이 묻거나,
오른쪽 발을 미친 듯이
왼쪽 신발에 구겨 넣는다면,
혹은 발등에 아주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한다면
나는 울어버릴 거야. 그러면 꼭
예전에 알았던 그 노인이 생각나거든.
겉모습은 상냥하고 목소리는 느릿느릿하고
머리카락은 눈보다 더 희고,

얼굴은 까마귀를 닮은,
(……)
오래전 여름날 저녁,
문 위에 앉아 있던 그 노인
 
   

  어떤 느낌이 들어? 후회와 좀 늦게 찾아온 양심의 회복을 말하는 걸까? 그래서 구슬픈 느낌이 드는 걸까? 여름날 저녁에 문 위에 앉아 있던 노인은 아마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엔 없겠지? 사실은 우린 이미 다 알고 있어. 지금 흰머리의 노인들을 우리가 최고로 사랑하고 있진 않지만 그러나 먼 훗날은 사랑하게 되리라는 걸. 그것은 어린 시절 마당에 심겨 있던 느티나무를 그리워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언젠가 엉뚱한 실수를 한 뒤 무안함 속에 고개를 들 때, 뭔가를 애도하고 있을 때, 잘못 신은 신발을 갈아 신듯 엉킨 실타래를 풀고 바로잡고 싶을 때, 이미 죽고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우리 귀에 흘러들어 오는 느낌을 받을지도 몰라. 약간의 회한, 약간의 우수, 약간의 그리움이 뒤섞인 감정 속에 어렵사리 우리는 뭔가 배우게 되겠지. 상실 속에서 뭔가 배우게 되듯이. 물론 이 모든 일들은 웬만큼 인생의 맛을 본 다음에야 일어날 일일 거야. 왜냐하면 삶이 매끄럽지 않다는 걸 알아야 맘 속 깊은 곳에서 비밀스러운 화해를 원하니까.
 
  모험을 하느라 온갖 기이한 일을 겪은 우리의 앨리스는 이 시를 듣던 날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아주 또렷하게 기억해. 마치 어제 일처럼, 그 기억 속에서 하얀 기사의 두 눈은 부드럽고 푸르고, 저물녘 햇빛은 기사의 머리카락 사이로 내비치고. 기사의 말은 목에 고삐를 건 채 조용히 이리저리 걷고. 그들 뒤로 앨리스는 숲 그늘을 바라보고 있었어. 우리의 순수한 어린아이는 아직은 삶이 이유 없다는 걸 모르니까 이 장면에서 어떤 결핍도 못 느껴. 그래서 앨리스는 “노래를 불러줘서 정말 감사해요!” 하고 씩씩하게 외친 다음 기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수건을 흔들고 시냇물을 폴짝 뛰어넘어 여덟 번째 칸으로 달려가. 여왕이 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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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 나라의 앨리스 - 펭귄 클래식 72>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이소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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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2-03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속에 등장하는 노래와 시들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거 같습니다. 그래서 <앨리스>라는 작품이 단순히 어린이 동화가 아닌
수수께끼 같은 작품이라서 더욱 흥미가 있네요.

esprit 2010-12-06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보다 덜 알려졌지만 거울 나라의 앨리스도 읽는 재미가 쏠쏠한 것 같네요~ 따라가면서 읽으니 더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