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별과 커피진주의 책읽기

  
정혜윤(CBS 라디오 프로듀서) 

 

  안녕, 동쪽별. 넌 늦잠 자는 걸 좋아하니?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날도 있니? 얼마 전에 청순한 미인을 쫓아서 (그런데 그녀가 물안경 벗은 모습을 보긴 봤니? 네가 완벽한 미인을 만나긴 만났는데 아직 물안경을 벗은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고 해서 나는 너의 상상력의 무한함에 놀라야 할지 반대로 너의 상상력의 절박함에 애틋함을 느껴야 할지 잠시 망설였어. 결국 감탄 반, 위로 반의 심정이 되었다고나 할까. 너는 어쨌든 강한 사람이야.) 거대한 목욕탕 같은 수영장으로 수영을 하러 다니기 전에는 네가 그랬던 걸 알고 있는데 요샌 어떠니? 오늘은 우리 회사 창사 기념일이라서 난 하루 종일 침대 밖으로 나오질 않고 자다 깨다 했어. 마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같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새벽녘에 꿈을 꿨어. 무척 기분 좋은 꿈이었고 나는 꿈속에서 깔깔깔 웃었는데 꿈을 깨고 나서도 계속 소리 내서 웃고 있는 거야. 웃음은 남았어도 꿈 내용은 하나도 생각이 나질 않았어. 에드거 앨런 포 식으로 말하자면 꿈의 거미줄을 뚫고 나오긴 했는데 그만 그 거미줄이 너무나 섬약해서인지 심연 너머의 그 무엇을 놓치고 만 거지. 어쨌든 아직까지도 내 이마에도 어젯밤 꿈의 흔적이 물결치며 남아 있을지 몰라. 그런데 우리의 앨리스는 모든 걸 기억하는 소녀 같아. 『거울 나라의 앨리스』 마지막 편에서 앨리스는 권장할 것은 못 되는 성격을 가진 붉은 여왕을 식탁에서 들어 올려서는 온 힘을 다해 흔들고 흔드는데, 그런데 여왕은 더 이상 여왕이 아니고 짧아지고 통통해지고 부드러워지고 동그래지더니 마침내 새끼 고양이가 돼버린 거야. 그래서 앨리스는 고양이 키티에게 이렇게 말해  

   
  자, 키티야,
이제 누가 이 모든 걸 다 꿈꾼 건지 생각해 보자.
이건 정말 진지한 질문이야.
그렇게 계속 발을 핥으면 안 돼.
키티야, 꿈을 꾼 건 분명 나이거나 붉은 왕이거나 둘 중 하나야.
붉은 왕은 내가 꾼 꿈속에 나왔지. ……그럼 나도 그가 꾼 꿈속에 나왔던 거란 말이야.
붉은 왕이었을까, 키티야?
여러분은 누가 꾼 꿈이라고 생각하나요?
 
   

  이렇게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대단원의 막을 내려.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앨리스의 꿈이었을까? 고양이 키티의 꿈이었을까? 아니면 둘이 동시에 꾼 꿈이었을까? 누가 꾼 꿈인지 따지는 것이 과연 중요한 의미가 있기나 한 걸까? 그런데 너는 인생이 한바탕 ‘꿈’이라고 생각하니, 아니면 언젠가는 ‘이뤄야 할 꿈’이라고 생각하니? 혹시 누군가는 이런 질문이 부질없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하지만 나에게는 중요해. 이런 질문들 안에서 타인은 나의 일방적인 욕망, 이해관계의 대상이길 멈추게 되고 그런 순간에 나는 타인의 영혼과 꿈을 진심으로 궁금해하게 되고 타인도 나의 삶에 참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분별력을 갖게 되니까. 나는 언젠가 이런 질문들을 무수히 테이블에 늘어놔 본 적이 있어. 하트나 클로버를 그리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그려가면서 말이야. 타로 점을 보는 친구를 따라가서 카드들이 순식간에 예언처럼 섞이는 것을 지켜볼 때였어. 그때 나는 타로 카드가 아니라 카드를 섞는 손가락을 눈이 빠지게 바라보는 내 친구의 절박한 시선에만 사로잡혔어. 인생은 혼란 속에서나마 꼭 듣고 싶어 하고 알고 싶어 하는 어떤 절실한 것들이 있을 때에만 한껏 신비로워질 수 있단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 반지를 향하는 욕망보다도 더 강렬하게 나의 절대 질문들을 여섯 장의 타로 카드처럼 뽑아 들었어. 이를테면 이런 질문들이야.  

  ‘인생은 매 순간 한 권의 책일까? 아니면 언젠가는 결말을 맺어야 할 한 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는 과정일까?’
  ‘내 인생은 나만의 고유한 것일까? 아니면 타인의 삶에 끼어든 낯설고 우연적인 것일까?’
  ‘인생을 무대로 생각한다면 난 단 한 번의 리허설 기회조차 갖지 못한 불운한 주연배우일까? 아니면 조연도 못 되고 오로지 신이 차려놓은 무대 밖에서 헛되이 소리만 지를 수 있는 관객에 불과할까?’
  ‘내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은 우연 혹은 운명이란 이름의 필연이었을까? 선택이었을까?’
  ‘이루어진 꿈, 입 밖으로 나온 말들이 중요할까? 아니면 마음속으로만 꿈꾸다 사라져버린 계획들, 결코 말로 표현되지 못한 것, 비밀들이 훨씬 더 중요할까?’

  나는 이런 질문들을 절대 잊고 싶지가 않아. 대답을 누가 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야. 세계가 그 대답이 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이 대답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울고 싶게 만드는 무수한 이야기들만이 대답 대신 남았다가 결국 사라져가게 될까? 그런데 묘하게도 도시의 허공에 떠도는 이런 이야기들은 비슷한 얼굴들처럼 서로서로 닮은 채로 어떤 특수한 영혼을 나눠 갖고 있을 것 같아.

  나는 언젠가 노란 개나리 나무에 일렁이는 햇살 아래서 눈이 부셔 눈을 찌푸릴 때 네가 이제 그만 공기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싶어 한다고 진심으로 느꼈고 그래서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너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사라지지 마라, 사라지지 마라!’ 주문을 걸었던 것을 기억해. 이런 기억들, 그리고 오로지 은유로만 외설적이었던 너의 기질들, 달의 뒷면에 홀로 있으려 하는 너의 고독을 생각해 보면 너는 인생은 ‘이뤄야 할 꿈’이 아니라 ‘밤의 꿈’, ‘잠의 꿈’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 그럼 나의 인생은 내가 꾼 꿈일까? 아니면 네가 나를 꿈꾸는 것일까? (허락도 없이) 만약 우리 둘이 동시에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면 슬픔조차도 달콤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도 꿈에서 깨어나면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깨어나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까? 그런데 내가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 나를 꿈꾸고 있다면? 그때 나는 꿈꾸지 말아주세요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깨어나야 할까?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그런데 인생을 한바탕 꿈이라고 생각해도 그 꿈은 홀로 꾸는 꿈인지, 사랑하는 연인 둘이서만 꾸는 꿈인지, 원수 같은 둘이서 꾸는 꿈인지, 우리 모두가 같이 꾸는 꿈인지, 신이 꾸는 꿈인지에 따라서 세계와 내가 맺는 관계가 달라지는 것 같아. 이 고민은 셰익스피어와 보르헤스와 우나모노와 토마스 만을 사로잡았던 게 틀림없어. 우나모노는 홀로 잠든다는 것은 단 하나의 꿈을 꾼다는 것이고 단 한 사람의 꿈은 환상이고 외양일 뿐이라고 말해. 그러나 두 사람의 꿈은 진실이고 현실이고 그런 식으로 현실 세계는 우리 모두가 꾸는 공통의 꿈이라고 말하면서 홀로 잠들지. 물론 같이 꿈꿀 사람을 찾으면서. 같이 꿈꾸기가 너무나 중요하니까. 우나모노의 결론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일 것 같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꿈 이론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 나와. 

   
  자신의 영혼으로만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이긴 하지만 다 함께 익명으로 꿈을 꾸기도 한다고 나는 말하고 싶어. 우리는 하나의 커다란 영혼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며 그 영혼은 자신이 몰래 늘 꿈꾸어 오던 대상에 관해 우리를 통해 각기 나름대로 꿈꾸는 것이다. 그 영혼의 청춘이며 희망에 관해 그 영혼의 행복이며 평화에 관해, 그리고 그 영혼의 피의 향연에 관해 꿈꾸는 것이다.  
   

  자, 말해 봐, 너는 나를 통해 무슨 꿈을 꾸고 있지? 세계는 나를 통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좀 더 궁극적으로 세계가 나를 꿈꾸지 않는다면 나도 없는 걸까? 만약 네가 내가 꾸는 꿈이라면, 그리고 만약 내가 네가 꾸는 꿈이라면 이런 자리바꿈은 뭘 의미하는 걸까?
  언젠가 나의 훌륭한 친구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이처럼 자리바꿈한 적이 있어. ‘네 몸을 네 이웃과 같이 사랑하라.’ 그 순간 그 말은 너무나 인간적으로 타당하게 들렸어. 그 말 안에서 다른 사람과의 거리는 숨 막힐 정도로 가까웠어. 우리는 다른 사람 때문에만, 다른 누군가가 나에 대한 꿈을 계속 꿀 때만 존재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 부탁해. 누구도 똑같은 꿈을 두 번 꿀 수는 없는 거라면 나를 꿈꾸기를 멈추지 말아 줘! 나는 또 나의 꿈속에서 너의 꿈에 도달하려고 꿈속에 머물려고 계속계속 움직일 거야.

  그런데 이런 꿈 이야기를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와 섞는 게 불가능한 건 아냐. 우리 모두는 꿈을 꾸고 있는데 이제 막 깨어났어. 그러고는 깜짝 놀라서 눈을 비비며 꿈속의 실수와 엄중 경고들을 잊지 않으려고 굳게 결심해. 꿈에서 깨어났으니 꿈의 조각들을 붙잡고 이제부터라도 잘해 보려고 하는 거지. 그게 누군지 아니? 『천일야화』의 왕자들이 그러했고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 영감이 그랬을 거야. 실은 나도 거의 매일 아침 그런 생각으로 우당탕 뛰어 나오긴 하지만. 그러니 우리 다음엔 스크루지 영감 이야기를 해볼까? 그런데 그래도 한 가지 의문은 남아. 오늘 아침 일어났는데 나는 어제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느끼는 거야. 그럼 나는 누구지? 나의 고요한 키티, 대답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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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 나라의 앨리스 _ 펭귄클래식 72 

 루이스 캐럴 / 삽화 존 테니얼 / 이소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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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하나 2010-12-17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허브차 마시면서 졸린 눈 부비부비하며 읽으니 더욱 꿈에 대한 이야기가 와닿습니다 ㅋㅋ
다음은 어떤 고전을 들고오실 건가요? 기대되용 >ㅅ <

esprit 2010-12-17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이쁜 글들이네요^-^ <거울 나라의 앨리스> 잘 따라서 읽었습니다! 다음 회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딱 맞게 스크루지 영감을 만날 수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