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별과 커피진주의 책읽기

  
정혜윤(CBS 라디오 프로듀서) 

 

  안녕, 동쪽별. 바야흐로 너의 계절이 왔구나. 넌 지금 혹시 어느 집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것 아니니? 혹시 연평도 떨고 있는 교회 위에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는 벌거벗은 천사처럼 올라가 있는 것은 아니니? 아니면 이 도시의 어느 곳에 네 영혼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니니? 거기서 지상의 낮은 별 하나 솟아나려나? 그렇다면 나는 높은 산 위에 올라 네가 있는 쪽을 내려다볼게. 깜빡여 줘.

  나는 어제 오늘 크리스마스 캐럴 생각을 좀 해봤어. 이 크리스마스에 궁극적으론 그 아무것도 너를 어둡게 하지 않길 바라서이고 너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고 싶어서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크리스마스 캐럴의 내용을 짠돌이 냉혈한 스크루지가 안개 낀 크리스마스 이브에 세 유령을 만나 개과천선한다는 것 정도로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의 크리스마스 캐럴 이야길 네게 들려줄게. 우선 스크루지가 세 유령을 만나는 것은 사실이야. 그런데 런던판 샤일록인 스크루지는 유령을 만나기 전에 죽어버린 동업자 말리를 자신의 음산한 집에서 만나게 돼. 스크루지는 죽은 말리의 얼굴을 보자 벌벌 떨면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해. 그러자 쇠사슬을 칭칭 감은 말리는 슬픔에 젖어서 이렇게 말해. 

   
  누구든 자기 안의 영혼이 주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멀리 여행도 다니게 해줘야 하는 법이네. 그러나 생전에 그러지 못한 영혼은 죽은 후에라도 그래야 하지. 비통하도다!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산 사람들이 누리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다니! 이승에 있다면 나 역시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나는 벌써 이 부분부터 죽은 말리가 가깝게 느껴져. 말리는 스크루지에게 이제 그만 인정을 베풀고 살라든가, 돈에 집착하지 말라든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야. 말리가 말한 것은 오로지 영혼이었어. 말리는 자신의 영혼이 쉴 수도 머물 수도 오래 지체할 수도 없이 지루한 고행을 계속하게 된 것은 평생 한 번도 경리 사무실, 환전소 소굴의 좁은 울타리 밖을 나간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해. 그리고 자신이 차고 있는 족쇄 역시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살아생전에 만든 거라고 말하고. 말리는 하루에도 열몇 번씩 스크루지 옆에 앉아 그를 지켜보다가 스크루지에게 단 한 번의 기회와 희망을 주고 싶어졌기 때문에 종이 울릴 때 세 유령을 차례차례 보내겠다고 말하지. 그런데 죽은 유령이 산 인간의 삶에 기회와 희망을 주기 위해 개입하고 싶어 한다면 그때의 유령의 정체는 뭐니? 말리의 말이 너무나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니? 사실 스크루지를 묘사하는 구절 중에 바깥이 춥든 덥든 스크루지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말이 나와. 그는 아무리 더워도 더위를 타지 않고 아무리 추워도 떨지 않는 자이며 눈보라도 장대비도 그를 이길 순 없어. 어떤 것도 스크루지의 마음을 움직이진 못해. 스크루지는 빈틈없는 자. 떨림과 망설임이 없는 자. 균열 없는 자. 그렇다면 스크루지는 살아 있으되 살아 있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살아 있는 스크루지가 더욱 비인간적이고 죽은 자 같고 죽은 유령 말리가 더 인간적이고 살아 있는 것같이 느껴지지 않니? 말리가 사라져간 크리스마스 이브의 하늘엔 유령들이 한가득 떠다니고 있어. 그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비탄과 후회, 자책과 한탄의 소리를 구슬프고 음산하게 내면서 하나같이 자신이 살아생전 만든 쇠사슬을 차고 있어. 이제 유령들은 인간적 유대감, 우정, 사랑으로 연대되지 못하고 오로지 쇠사슬로만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지. 그리고 그 형체 없는 유령들의 진정한 슬픔은 다름 아닌 이제라도 선의로 인간의 일에 개입하고 싶어도 영영 그럴 수 없다는 데 있었어. 

  이 부분까지 읽으면서 나는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의 하늘을 올려다봐.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것처럼 오늘 밤도 안개가 자욱해. 나는 유령과 유령의 개입에 대해서 생각해 봐. 나는 죽었다 깨어났다, 죽을 뻔했다, 죽은 셈치고, 다시 태어난 셈치고 등등의 말을 생각해 봐. (왜냐하면 이 유령들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너무나 원하겠지?) 이런 순간의 죽음이란 건 뭘까? 생물학적 죽음뿐 아니라 이렇게 상징적인 죽음도 진정한 죽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위해서 우리는 죽음 너머를 생각해 봐야 할지 몰라. 삶과 죽음에 지배당하는 게 아니라 그 너머를 보는 거야.

  나는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나온 그 문장(쿤데라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듣는 것과도 같은 충격적인 울림을 받았다고 한 그 문장)을 떠올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나는 이 문장을 알기 전에는 유령들을 공동묘지와 기괴한 집과 풀어헤친 머리와 복수와 광기, 피와 죽음과 죄의식과 범죄와 한의 불길하고 공포스러운 밤의 카니발의 느낌과 더 연결시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러나 이 문장을 읽고 나선 유령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어. 유령은 사회적으로 억눌린 자, 그러나 더 이상 억눌리기를 원치 않는 자, 낙오된 자, 희생양, 혁명을 원하는 자, 금지되었던 것을 감히 원하게 된 자, 집 없는 자이되 왜 집이 없느냐고 묻는 자, 사회적으로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자, 이기적이고 반성하지 않는 우리에게 꼭 할 말이 있는 자, 이런 이미지들과 더 연결되었어.즉 유령에겐 할 말이 있고 할 일이 있고 보여 주고 싶고 깨뜨리고 바꾸고 싶은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 그리고 그런 유령이라면 호감이 가는 걸 숨길 수가 없어. 유령을 위한 휴머니즘(혹은 어리석은 인간을 위한 유령들의 휴머니즘)이 필요할 거란 생각까지 들어. 그렇다면 크리스마스 캐럴의 유령은 어느 계열일까?

  스크루지는 이제 말리의 개입으로 세 유령들을 만나게 돼.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말이야. 과거, 현재, 미래를 본 그가 점점 어떻게 변하는지 이미 우리는 결론은 알고 있어.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할아버지 모델 같은 후덕한 인상, 누구나 존경하는 자선 사업가로 변했잖아. 말리의 선택은 옳았어. 스크루지는 기회와 희망을 갖게 돼. 그런데 스크루지에게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사람이 그렇게 극적으로 변하는 데는 우선은 두 가지 정도 동기를 들 수 있을 것 같아. 하나는 자기 자신이 원래는 더 괜찮은 사람일 수 있었다는 생각에서, 이 경우 자신이 뭘 잃어버리고 살았는지 깨닫고 그걸 회복하고 싶어 해. 두 번째는 반대로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란 인식에서, 이 경우 철저한 부정에서, 오히려 그 부정 때문에만 긍정으로 나가는 거야. 스크루지는 첫 번째 쪽에 더 가까워. 중요한 건 유령이 스크루지 죄의식의 이면, 균열 없음의 이면을 보고 균열을 내주었단 거야. 유령은 스크루지를 죽었다 깨어난 것같이 만들어. 나는 이제 스크루지의 변신을 지켜보는 말리에게도 평온이 있을까 궁금하지만 디킨스는 그걸 나의 상상의 영역으로만 남겨 두네. 나는 유령에 불과한 자,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죽은 거나 다름없는 인간에게 ‘개입’함으로써 준 선물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어.

  그런데 스크루지처럼 많은 재산을 갖고 있지 못한 우리는 어떻게 회심을 표현한다지? 그것에 대해서는 재산 없는 자의 대표로 내가 좀 고민해 봤어. 다음 주에 그 이야기 좀 더 해볼까?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 글을 읽을 너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  

   
  크리스마스 전날 밤, 12시
“지금 그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우리가 벽난로에서 꺼져 가는 불 옆에 무리지어 앉자
한 장로가 말했다.

우리는 밀짚 깔린 우리에서 살고 있는
온순한 동물들을 그렸다.
그 동물들이 그때 무릎을 꿇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의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 시대에 극소수의 사람들이 만들어낼
환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누군가가
우리가 어린 시절에 잘 알고 있었던

저기 험한 골짜기 옆 쓸쓸한 농가 마당에서
황소들이 무릎 꿇는 것을 와서 보라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며
그와 함께 어둠 속으로 들어가리라

                              (토마스 하디, 「황소들」)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며 눈 꼭 감고 기도하고 싶은 게 있니? 그렇다면 너의 유령이 되어서 길을 안내하고 싶어. ‘그와 함께 어둠 속으로 들어가리라.’ 이것이 나의 선물. 그런데 너 말이지? 크리스마스 이브에 우리 어디 조그만 묘지에서 만나는 건 어때? 우리도 죽었다 살아난 것처럼 이 한 해를 보내자! 이것이 너에게 보내는 나의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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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 캐럴> 

   찰스 디킨스 / 이은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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