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커피진주
편지를 읽고는 그대가 본능적으로 퀴즈의 정답을 맞힌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 『무도회가 끝난 후』라는 멋진 소설. 「가장자리에서 불 비추기」라는 멋진 시. 마치 모든 게 내 퀴즈의 전후 배경으로 귀결되는 멋진 텔레파시의 화답. 역시 넌 대단해.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가 몹시 나쁜 사람이란 걸 발견했을 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물었지. 난 이내 사랑이 식었다고 이야기하는 그 남자랑은 다를 거 같아. 그 아버지는 그녀의 일부이지만, 전부는 아니니까. 난 그저 우리 사랑의 드라마가 좀 더 강해진 거라 믿을 거 같아. 우연도 환경도 날 지배하지 못할 거라고 우길 거 같아. 하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 여자가 나의 일시적 갈등을 눈치 채거나, 그래서 부친을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떠나간다면, 그때 난 이렇게 대답할 거 같아.
“3 *4*2 *45.”
“*1*** *2.”
뭐냐고? 자, 답을 알려줄 시간이구나. 나의 퀴즈 속 숫자는 1부터 5까지 있어. 문자 중 5개의 요소를 갖춘 건 영어의 모음. 즉, 각각의 숫자는 a, e, i, o, u에 해당해. 그러므로 첫째 문장은 'I *o*e *ou.' 이고, 둘째 문장은 '*a*** *e'야. 둘의 관계로 미뤄볼 때, 첫 번째 문장은 연인이 불편해하는 걸 알고 냉정하게 먼저 떠나가는 여자에게 털어놓는 남자의 매우 급한 사랑 고백이야. 즉, “I love you.”라는 문장이야. 둘째 문장을 볼까? 조금 어려워 보이지만, 아냐. 쉬워. *e의 자리에 모든 알파벳 자음을 넣어봐. 존재하는 단어는 me밖에 없어. 그렇다면, 앞의 단어는 뭘까? Catch? 정황을 볼 때 ‘날 잡아줘!’라는 여자의 메시지야. 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버지라는 장애물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걸 각오한 남자는 본능적으로 던진 마지막 카드라면, 그건 그토록 미뤘던 프러포즈라고 볼 수 있어. “Marry me.” 라고 말이야.
물론, 홈즈가 왓슨을 놀라게 하며 늘 보였던 이런 패턴의 결론에는 너도 불만이 있을 거야. 시시하다고 포기하지 말고, 내 퀴즈에 존재하는 빈틈을 들여다보듯, 홈즈에게도 훨씬 엄격하게 그 수사법의 빈틈들을 따지고 들어서, 끝내 우릴 만족하게 할 어떤 냉정한 ‘추리 비평’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예를 들자면, 소포클래스의 『오이디푸스 왕』의 라이오스 살해에 대한 전통적 버전에 의혹을 품는 것처럼 말이야. 라이오스 살인의 유일한 증인인 시종은 왕이 여러 사람에게 살해당했다고 단언했어. 그런데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유죄를 털어놓자, 다른 증인은 아무도 호출되지 않았어. 이 모순되는 증언과 판결을 놓고, 우린 이렇게 얘기할 수 있잖아. 오이디푸스는 자기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상처가 날 수도 있겠지만, 저 너머의 진실이 무고하게 희생된 자를 구해낼 수도 있다고 보면, 가치 있는 문제제기 아닐까 싶어. 또, 셰익스피어의 『햄릿』도 따져볼 수 있어. 햄릿은 숙부 클로디어스가 살인자임을 확신하고 배우들을 시켜서 왕의 귀에 독을 넣는 살인 장면을 연기시켜. 벌컥 화를 내고 나가버리는 숙부의 반응을 보고 유죄를 단정하지. 하지만,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본 공연 앞에 반드시 무언극 하이라이트를 먼저 공연했대. 즉, 이 장면은 본 공연 직전에 이미 클로디어스에게 보였다는 거지. 왜 처음 공연엔 가만있다가 두 번째 공연에 화를 냈을까. 작품의 지문에서 밝혀져 있듯, 그저 햄릿이 내는 시끄러운 소리에 짜증이 났기 때문 아닐까.
이렇듯, 문학이 품은 불완전한 세계는 사실 한 번도 완전했던 적이 없었어. 그래서 우린 즐겁게 그 구멍 난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고 봐. 가상과 실제 사이에 존재하는 이 중간지대는 텍스트 속 인물을 실재와 혼동하며 자신의 삶과 묘한 접점을 찾으려는 독자들의 공간으로 볼 수 있어. 도일은 바로 이 중간지대 영역의 확장 가능한 최대치를 선보이며 독자들을 현혹했던 거고.
하지만, 역시 재밌는 건, 도일은 홈즈를 중간지대에 풀어놓음으로써 모든 걸 이뤘지만, 갈수록 불행하다고 느꼈다는 사실이야. 어째서 그는 원치 않는 성공의 욕구 속에서 가장 큰 성공을 이뤄냈을까. 거기에 혹시 예술가의 삶의 비밀이 있는 걸까. 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도 계승된 이 거대한 성공의 아이러니인 『바스커빌 가문의 개』를 놓고는, 왠지 삐딱한 질투의 뱀 눈을 뜨고 홈즈의 빈틈들을 찾아보고 싶어졌어. 즉, 그의 날카로운 추리력을 그대로 반사시켜 겨눠보고 싶어진 거지. 그러다가, 피에르 바야르의 『셜록 홈즈가 틀렸다』라는 책을 읽고 만 거야. 그제야 난 뭔가 숨통이 트이고 말았어. 살펴보니 역시 이 소설의 동기는 순수하지 않았더구나. 기실, 도일은 시간이 갈수록 홈즈에 대해 뼛속 깊은 증오, 경멸, 혐오를 지니게 됐어. "내가 홈즈를 안 죽이면, 홈즈가 날 죽일 거야!”라는 절박한 심정 말이야. 그래서 어느 날 홈즈를 죽였지만, 결과는 오히려 홈즈를 더욱 큰 인물로 만들어 버렸어. 좌절한 그는 질투심과 앙심을 품고 홈즈의 명성에 치명타를 입히려고 쓸개를 씹어. 하지만, 결국 대중의 욕망에 굴복하고 『바스커빌 가문의 개』를 쓰고 말아. 하지만, 여기엔 도일을 모욕한 홈즈를 향한 치명적인 복수의 칼날이 담겨 있어. 그러니까,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홈즈의 우상화 작업에 사망 선고를 내린 거야. 즉, 홈즈가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하며, 오류와 자기 독선에 빠진 인간인지를 낱낱이 밝힌 거지. 물론 아는 사람만 알 수 있게 말이야.
원제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에서 ‘Basker’는 가운데 철자 ‘s’가 빠진 Baker로 생각할 수 있어. ‘Villes’이 마을을 뜻하니까, 바스커빌은 즉, 베이커 마을, 즉, 베이커 거리로 볼 수 있는 거야. 즉, 홈즈의 사무실이 있는 곳이지. 결국, 이 소설 제목에 숨겨진 암호는 홈즈가 사는 ‘베이커 가의 사냥개’가 되는 거야. 그러니까, 도일은 대영제국의 슈퍼히어로 홈즈를 사냥개로 깎아내린 거지. 사실 셜록 홈즈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탐정을 사냥개에 비유했어. 『주홍색 연구』에서도 왓슨이 홈즈의 첫인상을 이렇게 묘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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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과 중얼거림, 휘파람, 격려와 희망을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는 혈통 좋고 잘 훈련된 개를 생각나게 했다. 수풀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달려갔다가 다시 왼쪽으로 달리고, 흔적을 찾으면 흥분해서 줄곧 끙끙대는 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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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탐정과 개의 동일시는 근거 없는 비방만은 아냐. 뭔가 단서를 캐내는 수그린 자세, 그리고 ‘늑대 사냥꾼들의 나팔 소리를 듣고 달려가는 늙은 개처럼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는 그 활동들에 대한 암묵적인 메타포로 볼 수 있어. 재밌는 건, 소설 속 바스커빌 가문의 개는 전설 속에 전해지는 지옥 불에서 온 무시무시한 살인견이라는 거야. 즉, 홈즈의 정체성이 악의 상징으로 비유되면서 도일에게 상징적 살해를 당하는 거야.
도일이 돌려주는 모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아. 홈즈는 이 사건의 핵심을 ‘개를 살인 도구로 쓴 자’의 소행으로 보고, 곤충학자 잭 스테이플턴을 범인으로 지목해. 그 사람은 마지막에 도망치다가 안개 자욱한 늪에 빠져 죽어. 그 후, 홈즈가 최종 정리하는 사건의 개요를 들어보면, 앞뒤로 너무나 말끔해서, 우리가 그의 추리에 문제를 제기하는 게 불가능해 보여. 근데, 잘 살펴보면, 홈즈는 여기서 엄청난 실수를 했어. 왜냐면, 범죄자는 사건의 결과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인데, 잭 스테이플턴은 얻은 게 아무것도 없거든. 게다가 처음 살인의 동기부터도 너무 허술해. 유산을 노렸으면서도 범행 대상 근처로 이사와 살고 있다는 건 너무 속 보이는 처사인데다가, 개를 이용해 상속자를 놀라게 해 죽이겠다는 건데, 그 커다란 개를 데리고 돌아다니는 부주의함도 그렇지만, 개가 상속자를 만났을 때 놀라게 할지, 물지, 그냥 도망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또 놀랐다고 심장마비에 걸릴지도 알 수 없는 일이지. 또 그런 식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쳐도, 굳이 런던으로 여행 와서 새로운 상속자를 미행해서 홈즈가 알아차리게 하고 굳이 수사에 뛰어들게 할 이유가 있을까. 최종 결론이 난 후에도, 도무지 실익이 없는, 즉 동기가 성립되지 않는 그 서툰 인물에게 살인을 뒤집어씌운 찝찝함에 대해 홈즈 스스로도 갸우뚱하면서 얼렁뚱땅 넘어가는 바람에, 어쩌면 한 세기 넘게 문학 역사상 가장 지독한 살인자가 이 텍스트 속에 멀쩡히 은둔하고 있는지도 몰라. 어쩌면 홈즈가 그 진짜 살인자에게 거꾸로 이용당한 건 아닐까, 질문해 볼 수 있어. 홈즈 자신도, 세상의 모든 셜로키언도 모르는 사이에, 홈즈의 권위를 빌어 엉뚱한 자를 공식적인 살인자로 몰아놓고 자신의 완전범죄를 완성한 그 희대의 살인마, 그는 누구일까.
난 공식적인 살인자인 스테이플턴의 아내, 베릴이라는 여자를 용의자로 지목해. 거대 재산의 상속자인 헨리 바스커빌은 늘씬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베릴에게 한눈에 반해버려. 당연히 결혼을 꿈꾸지. 사실 소설의 끝을 지나 결국 시간이 지나면 실질적인 상속자는 이 여자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게다가 베릴이 황무지에서 왓슨을 처음 만나는 순간, 이렇게 털어놔.
“그는 바스커빌 저택의 주인으로 꼭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돌이켜보면 남편의 살해 동기를 시작부터 고백한 거야. 왜냐고. 완전 범죄를 저지르고 그걸 남편에게 뒤집어 씌울 생각이었으니까. 코스타리카의 미인대회 출신이기까지 한 아내를 그저 평범한 삶 속에 가뒀다는 게 남편 살해의 욕망을 크게 자극했을 거야. 물론 홈즈가 무의식적으로 여러 차례 그 진실에 근접하긴 해. 베릴을 구해줬을 때, 남편 욕을 쏟아내면서 여자나 밝히는 추잡한 인간이라고 비방하는 걸 보고, 홈즈가 본능적으로 물어. “부인은 남편이 잘되길 전혀 바라지 않으시는군요!”
맞아. 이 연쇄 살인으로 최대 이익을 보는 사람은 바로 베릴이야. 왜냐면 그토록 증오하던 남편은 죽었고, 거부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이 기다리기 있으니까. 모든 걸 조작한 건 그 여자야. 유일한 목격자인 마부에게 들킨 인상착의도 비슷하고, 끊임없이 남편이 범인이라고 흘렸고, 상속자를 멋지게 유혹했어. 게다가 어이없게도 홈즈를 사건 현장으로 끌어들였어. 그 유명한 해결사를. 왜? 홈즈가 개입돼야만 자신의 범죄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지! 세헤라자데가 재밌는 얘기로 목숨을 지켰다면, 베릴도 비슷한 방법을 쓴 거야. 칼도 총도 위협도 없이, 뛰어난 상상력과 적절한 언변으로, 엉뚱한 희생자가 만인의 환호 속에 응징당하는 완벽한 살인을 저지른 거지. 근데, 홈즈는 그 사실을 놓쳤고, 대신 무고한 자를 죽이고 악당의 승리를 내버려뒀어. 경쟁심에 눈이 멀고 증오심에 사로잡힌 도일은 이렇게 홈즈의 치명적 실수를 노출해서 2번의 상징적 살해를 한 거야. 자신에게 창조 당한 피조물 주제에 창조주를 초월해 버린 놈을 제거함으로써 스스로 만든 홈즈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친 거지.
따지고 보면, 도일은 홈즈를 단순히 글쓰기의 방해자가 아니라, 일종의 위협적인 분신으로 여겼던 거야. 모파상의 ‘오를라’처럼 정신을 엄습해버리는 분신으로 말이야. 엄청난 성공을 가능하게 해준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증오하는 게 가능할까. 자신의 성공이 캐릭터 덕이었다는 게 그토록 기분 나빴던 걸까. 물론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한 사람을 우리는 왜 원망할까?’라는 인간의 양가성은 오랜 정신분석학의 단골 메뉴야.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겉으로는 유익하지만, 실은 우리를 약점과 격렬히 대면시켜. 그래서 남한테 진 이 막대한 빚은 성인이 된 다음에도 유년기의 근본적인 무능력을 끊임없이 잔인하게 상기시키는 거대한 부모의 얼굴처럼 꼿꼿이 우리 앞에 존재하는 거야.
자, 결론적으로 나의 제멋대로의 추리비평을 통해, 이 소설을 한때는 사랑했지만 보잘것없는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열정이 점점 증오로 변해간 한 유부녀의 범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지만, 우리가 내릴 결론은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할 거 같아. “완벽한 육체와 우아한 드레스 덕분에 그녀는 인적이 드문 황무지에서 마치 기묘한 환영처럼 보였다.” 이렇듯, 베리를 귀신처럼 묘사한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홈즈를 속인 그녀는 훨씬 예전에 휴고 바스커빌에게 납치당했다가 탈출했지만 추격당하고 결국 벼랑에 떨어져 비참하게 죽은 처녀의 자리를 차지한 걸 수도 있다고 봐. 그 오랜 비극의 길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 (어쩌면 빙의된 채) 그 여자의 원혼에 화답한 거라고 말이야. 휴고는 여자를 쫓다가 스스로도 개에 쫓겨 죽었는데, 그의 후손은 개를 구하려 애쓰다가 여자의 손에 죽었으니까, 이 소설의 결말에 숨겨진 속죄의식의 전모를 잘 살펴본다면, 반드시 씁쓸하지만은 않아. 왠지 명탐정의 실수라는 훌륭한 우연의 도움으로 완성된 필연적인 정당한 복수 같단 말이지.
살펴보면, 대공황 때마다 멋진 탐정이 등장했어. 필립 말로, 메그레 경감, 내 사랑하는 괴도 뤼팽까지. 아마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공황 상태일 땐, 더 많은 사람이 범죄에 빠져들기 때문이겠지. 덕분에 홈즈는 그 시절 민중들이 꿈꾼 탈출구의 가이드가 되었고. 탐정의 숫자를 압도하는 범죄의 시대, 예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혼동의 우리 시대, 그 원인제공자들의 칙칙한 음모들을 파헤쳐 줄 영웅이 나타날만한 타이밍이기도 한데 말이야. 여긴 누구 없을까. 만약이 시대에도 홈즈가 살아 있다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살인의 추억」의 엔딩은 그처럼 미제로 열리지 않고 끝장을 봤을 수도 있을 텐데. 거대 반도체 회사가 수년 후에야 겨우 산재를 일부 인정했지만, 애초에 잘못된 역학 조사 때문에 제대로 밝힌 것도 아닐진대, 그때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홈즈를 투입시켰다면 어땠을까. 쉰 살이 넘은 여자 혼자 왜 반년이 넘게 저 높은 크레인 위에서 버티고 있는지, 파헤쳐지는 강산의 외양이 결국 무엇의 증거인지, 이 신경쇠약 직전의 한반도를 해결해줄 시국탐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거 아니? 도일이 실제로 작가에서 실제 현실세계의 탐정으로 진화했다는 거. 그는 많은 독자한테 범죄를 해결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불의를 못 참고 전선으로 나섰었어. 요즘 트위터 세계에서 박애주의적 열정의 화신이 된 어느 배우처럼, 누명 쓴 자들을 위한 구명운동에 나서고, 독재자들의 범죄를 고발했어. 그래서인지, 도일의 묘비명은 참 독특하게 남아 있어. “기사, 애국자, 의사, 작가. 강철처럼 진실하고 칼날처럼 곧았다.” 그의 정체성 중 작가가 네 번째에 불과하다니. 놀랍지 않니?
이 순간, 다시, 콜롬보가 생각나. 그는 전혀 시공간이 관련 없는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 형사 콜롬보로 등장해. 허구와 실재가 묘하게 겹쳐지는 그 중간 지대에서 말이야. 그 사람은 알고 보면 천사였어. 묘한 능력을 갖춘. 스치기만 해도 그 사람들 마음속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 말이야. 그는 인간의 속물적인 삶을 욕망하는 바람에 천사의 능력을 버리고 한낱 형사로 살아가지만, 그래도 우리가 추구하는 탐정의 본질은 ‘남의 마음속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능력’이 아닐까, 라고 속삭여 줘.
퀴즈의 여담인데, 한참 후, 그 둘이 다시 만났을 땐 여자는 이미 결혼 후였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어. 남자도 마찬가지. 하지만, 남자의 마음속엔 질문이 하나 남아 있었어. 그 여자가 자신의 메시지를 해독했던 걸까. 그러고도 거부했던 걸까. 혹은 전혀 읽어내지 못했던 걸까. 그 어긋난 우연의 결과가 결국 어떤 필연으로 재등장할까. 그래, 사실 그 남자는 여자의 마음속 목소리가 너무 궁금해, 미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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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바스커빌 가문의 개>
아서 코난 도일 / 남명성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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