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난후 갑자기 동생친구녀석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랑 나랑 한잔 하고 싶다고.한참  김장용 마늘을 까고 계시던 엄마는 바톤을 나한테 넘기셨고, 결국 집앞으로 온 동생친구녀석과 히레 사케를 마시게 되었다. 

난 이제까지 살면서 내동생과도 술을 마신적이 없었고, 동생녀석 군대면회도 간적이 한번 없었지만( 내동생은 용산 미8군에 있었고,매주 금욜마다 집에 왔다.도무지 면회를 가고 싶어도 갈 틈이 없었다), 동생 친구와는 3번정도 술을 마셨고, 강원도로 놀러가다가 군대 면회까지도 간적이 있다. 

어머니가 요즘 항암치료를 받으셔서 갑자기 우리엄마 생각이 나서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서 들렀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잘 지내고 있냐고 물었는데 어제같은 오늘을 보내고 있고,오늘같은 내일을 맞이할거라고 말하면서 나는 속으로 요즘 무지 힘든일이 있었고, 그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좀 나아질지도 몰라라는 말을 혼자서 마구 속으로 해댔다. 

난 술을 마시면서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지나온 날들을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그 속에 들리지 않게 난 너무너무 힘들고 ,속상하다는 이야기를 혼자 속으로 지껄여대었다. 사케 2잔을 마시면서 아마 그 녀석도 나에겐 들리지 않는 무수한 이야기들을 속으로 했을것이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우리둘은 서로에게 그동안  있었던 무수한 이야기들을 했을것이다. 술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난 그녀석이 엄마 가져다 드리라고 사준 피칸 파이를 신나게 들고 들어왔고, 가슴 속에 막혀있던 길 하나를 뚫고 왔다. 그녀석도 그렇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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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좋아 2010-11-16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네요. 파비아나님의 친구, '동생친구'라 불리우는 파비아나님의 친구...
계속 읽게 되는 글이에요..

L.SHIN 2010-11-16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같은 동생친구군요.
'가슴 속에 막혀있던 길 하나를 뚫고 왔다'...문학적이고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전 술을 아무리 마셔도 그런 친구가 없어서 그런지 가슴이 뚫리지는 않던데 말입니다.(웃음)

paviana 2010-11-16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좋아님 / ㅋㅋ 아니에요. 그녀석은 저의 지도편달이 필요한 동생친구녀석이에요. 밥그릇 갯수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데요. 맞먹으려 들면 바로 응징이 들어가야 합니다.ㅎㅎ 근데 과분한 칭찬에 감사드려요(__)

엘신님 / 맞아요. 가족이나 마찬가지지요. 아빠 돌아가셨을 때도 삼일 내내 옆에 있었으니까요.요즘 광고에도 나오잖아요. 우리 엄마를 '어머니'라 부르는 사람이라고요. 그냥 어제 그제 술이라도 한잔 하고 싶었는데, 상대가 없었거든요. 그녀석도 무슨 일로 답답했는지 모르겠지만 타이밍좋게 나타난거지요. 왜 그런때 있잖아요. 그냥 술한잔 마시면 속이 좀 풀릴거 같은 날이요.

2011-02-01 0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