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13 - 완결
박하 글, 허영만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1998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일컬어지며 이현세와 함께 한국 만화계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만화계의 거목 허영만. 그리고 야설록 이후 최고의 스토리작가로 떠오르며 허영만과 환상의 콤비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는 박하가 만나서 만든 희대의 걸작만화가 있었으니 일찍이 정우성과 고소영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비트>가 그것이다.
사실 <비트>는 만화자체로도 워낙에 히트친 작품이긴 하지만 영화로 제작되어 또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상당히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인 이 민은 고교시절 폭력써클의 짱으로서 상당히 이름을 떨쳤던 주먹이었지만 뒷골목생활을 청산하고 착실하게 살아보고자 발버둥치는 가련한 인생이고 그의 연인이자 히로인인 로미는 부잣집귀한 따님에 일류대출신의 재원이며 성격이 상당히 독단적이고 이기적이고 싸가지없고 제멋대로이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점차 보다 성숙해지고 여유로워지고 인간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민은 학창시절 '누워서 뜨는 소'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워낙에 탁월한 파이팅센스를 타고난 인간이라 주변폭력조직에서의 유혹이 끊이지 않을뿐더러 급전을 마련하기위해 친구를 돕기위해 어쩔수없이 주먹세계에 몸을 담게 되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점점더 암흑의 뒷골목세계로 빠져들어가게만 된다. 그러한 별 희망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한 상황속에서 오직 구원의 빛이 되주는건 여자친구인 로미뿐이다.

주인공인 이민은 정말 말도 안되는 격투실력을 보여주는데 아마도 예전의 김두한이나 시라소니, 혹은 최영의선생 정도의 레벨을 능가하지 않을까 생각될정도로 엄청나게 강한 격투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비록 그가 싸움의 천재이고 주인공인 이상 너무나 멋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지는건 어쩔수 없는 일이겠지만 극중에서 민이의 일상은 싸움처럼 녹록치만은 않다. 싸움터에서야 누구보다도 가장 빛나는 민이이지만 현실생활에서 그는 툭하면 사고치는 사고뭉치에다 대학도 못나온 저학력자요 돈도 없고 빽도 없고 가진거라곤 먹고사는데 별 도움도 안되는 싸움실력이 전부인 깡패나부랑이일뿐이다.

작가는 이러한 민이와 그의 친구들을 통해서 비록 가진건 없지만 세상을 열심히 살아보려는 젊은 영혼들이 부조리하고 썩어빠진 냉혹한 사회속에서 냉대받고 실패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그리며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점과 부패상을 고발하고 있으며 또한 이 땅에서 방황하는 스무살젊은 영혼들의 고뇌와 갈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최강의 범죄신디게이트를 조직하여 주먹계를 장악하려는 친구 태수로 인해 뒷세계에 발을 담그게되는 민이의 활약상에서 비정하고 냉혹한 주먹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로미와 그 주변인들의 모습을 통해 돈 썩어넘칠정도로 남아돌고 일류대에 재학하며 빵빵한 학벌과 재력과 권력과 호사스런 취미를 자랑하는 황금족들의 모습과 달동네밑바닥인생들의 모습을 대비시키며 빈부격차와 계층간 위화감에 시달리는 우리사회의 모습도 보여준다. 민이의 초인적인 쌈마이활동과 로미와의 로맨스를 제외하고 보면 이 만화는 그야말로 20세기 대한민국의 어두운 단면들을 아주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는 작품이라는 걸 알수있다.

마지막 결말은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어찌보면 맥이 탁 풀리는 허무하고 기운빠지는 결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웬지 독자를 배신한듯한, 작가에게 속은듯한 기분이 드는건 나뿐일런지. 그동안 일반적인 만화의 결말관행상 아마도 민이와 로미가 맺어지는 해피엔딩이나 민이가 비참하게 맞아죽는 배드엔딩일거라 짐작했던 보통독자들의 예상을 보기좋게 무너뜨리고 참 싱겁고도 허망하게 결말을 내버리는 그 끝맺음에 참 씁쓸한 입맛을 다셨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건 어찌보면 가장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귀결이며 어쩌면 최고의 해피엔딩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너무나 상투적이고 허구적인 이야기에 익숙해져있었기에 오히려 현실적인 결말이 허구적이고 이색적으로 느껴지게 되었던것 같다. 이 땅의 모든 고뇌하는 젊은 영혼들에게 권하고 싶은 만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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