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누나 속편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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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으로 오가는 대화 중 외동은 외로워서 안 좋다는 말들이 오갈 때면 난 늘 형제가 있어도 외롭다고 반박한다. 그러면 그 대화는 남매라서 그렇다고 역시 자매가 있어야 제일 좋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반박 불가다. 같이 옷과 악세사리를 공유하고 퇴근 후 집이 아닌 장소에서 만나 맛집을 가고 쇼핑을 하고 나란히 집으로 돌아가는 자매들은 나에겐 언제나 로망이었다. 자매가 함께 연휴나 휴가 기간에 여행을 다녀온다고 하면 부러움을 넘어서 사촌이 땅을 살 때보다 더 배 아픈 질투를 느끼곤 했다. 남동생과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지만 멀리 사는 데다 동생이 결혼한 뒤에는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어떨 수 없노라고 변명해보지만 참 못났다.

 

공감의 아이콘 마스다 미리의 작품을 접할 때면 이미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 감을 잡다가도 작가 특유의 세심함과 엉뚱함의 반전을 만나 놀라움을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 누나』 역시 남동생을 둔 내가 그 누구보다 크게 공감할 거라 예상했다. 책장을 펼쳐든 내내 고개를 끄덕이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읽어나갔다. 하지만  『내 누나』를 읽고 공감한 부분들은 대부분 나의 뻔한 예감을 벗어났다. 역시 마스다 미리에겐 뭔가 있다. 남동생과 그리 살가운 관계가 아님에도 퇴근 후 지하루와 준페이의 대화 속에서 나와 남동생이 보인다. 지하루는 나와 닮기도 하고 철없지만 사랑스러운 후배를 닮기도 하고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선배 언니를 닮기도 하다. 마스다 미리가 온 세상의 여자들을 모아 따뜻하게 녹여낸 캐릭터가 틀림없다. 일상 공감 만화가 이렇게나 독자를 집중시키고 마음을 빨아들이다니 책에 마법이라도 걸어놓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요즘 잘 지내고 있냐는 안부 인사를 부쩍이나 많이 받고 있다. 갑자기 많은 일들이 벌어졌는데 싸울 힘도 버텨낼 힘도 없이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여기저기 휩쓸리고 다녔다. 조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엉뚱한 곳에 가서는 나의 성향과 동떨어진 일들을 짊어지려 하고 있다. 이제라도 버텨낼 힘을 길러야 하는지 조금 더 휩쓸리고 다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 사람은 아는 동생이다. 나에게 벌어진 상황에 대해 가장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그 동생의 위로와 안부가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내 상황을 공감해주고 위로를 해주는데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동안 마스다 미리의 무수한 책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공감을 얻었나 되짚어보면 마스다 미리에게도 빚을 많이 졌다. 빨리 마음의 안정을 잡고 아는 동생에게 그리고 내 동생에게 "나 왔어~" 하며 인사를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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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나서 2 (2017 플래너 세트) - 그리고 누군가가 미워진다, 177 true stories & innocent lies 생각이 나서 2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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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 가고 싶은 전시회가 있다. 보고 싶은 영화가 많다. 읽고 싶은 책도 많다.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정신없이 바쁘기만 한 요즘 규칙적으로 해내는 일이라곤 몸이 아프거나 눈물을 찔끔 흘리는 일밖엔 없다. 바쁜 와중에 귀하게 읽어내려간 황경신 작가의 신작 『생각이 나서2』를 처음 마주했을 때 부제를 보고 실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 바쁜 와중에 내가 규칙적으로 하는 일이 또 있었음을 이 책의 부제를 보는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가장 열심히, 꾸준히 하는 일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다.

 

세상은 여전히 상처투성이고 우리는 여전히 여린데, 이제, 떠나야 하는 길은 멀고 다시 만날 날은 아득한데, 어떻게 되는 걸까, 너와 나는? p.270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현재 나에게 가장 간절한 것을 묻는다면 주저 없이 일상의 평온함을 꼽겠다. 요즘 입에 달고 사는 투정을 글로 옮겨보니 조금은 우습다. 뭐 그리 대단한 일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새해 첫 서평을 책에 관한 이야기는 시작도 못한 채 허세 가득한 글들로 주절거리나 싶다. 그러니까 요즘 나는 조금 복잡하다.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 틈에서 만난 황경신 작가의 짧은 에세이들이 나에게 약이 될지 독이 될지 궁금했다. 간증에 가까운 지난 황경신 작가의 작품들에 관한 서평을 본다면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체한 것처럼 앙금으로 남은 일이 있는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입을 다무는 것이 최선이므로, 마음이 깊어도, 가 아니라 마음이 깊어서, 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변함이 없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겠으나, 아무 말없이 홀로 견디겠다고 작정한다. p.296 「마음이 깊어도」

 

황경신 작가에게 이 세상에 말도 안 되게 쉬운 것이 있다면 에세이를 써 내려가는 것, 그 글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무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황경신 작가의 글에 가장 크게 감응할 수 있는 시기에 황경신 작가의 무수한 글들을 만나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일요일이 다 가는 것이 너무나 아쉽고 다시 정신없이 바빠질 예정이고 여전히 누군가가 밉지만 황경신 작가의 조용한 한방은 치유의 힘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떤 글귀는 다시 되짚어 읽기도 하고, 어쩐 글귀는 숨죽여가며 읽으면서 나 자신도 자세히 알지 못 했던 내 무의식을 들여다본 것 같다.

 

 친구는 할 말을 잃었으나 나는 진심이었다. 슬픔과 아픔에 잠겨 있던 날들도 많았지만 이렇게 기쁘고 환한 순간도 있었다는 걸,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한때 선명하게 존재했던, 언젠가 그날이, 내게도 분명히 있었다고, 살아 있는 동안 앞으로도 있을 거라고, 지금의 나 자신에게 가르쳐주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p.59 「언젠가 그날」

 

그러니 봄이 오기 전에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한다.

내일이 아니라 그저 오늘을 살자고.

아무쪼록 나는 살아남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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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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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정말 훌륭한 이야기꾼들이 많다.

이토록 큰 찬사도 천명관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조금 부족한 수식어가 되어버리고 만다. 타고난 이야기꾼 천명관 작가의 신작이 발표됐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라는 제목과 유머스러운 일러스트의 표지만 봐도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천명관'이라는 장르의 소설이 또 한 권 탄생하였음을 직감하게 해주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이야기는 나를 어느 세상으로 인도해줄까 기대감을 품으며 책을 읽어나가는 동시에 실로 오랜만에 천명관 작가의 작품세계에 다시 빠져들었다.

 

밀수 다이아몬드, 종마, 호랑이 등 지켜야 할, 혹은 쟁취해야 할 것들을 가지기 위한 전국 각지의 건달들 이야기가 각각의 이야기처럼 펼쳐지다가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지는 구성과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역시 천명관이다. 수많은 캐릭터들과 그들에게 펼쳐진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의 구성이 짧지만 읽는 즐거움을 충분하게 만끽하게 해준다. 수컷들의 뒤틀린 삶이 어떤 것인지 유감없이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묘사와 스토리는 천명관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해준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려온 천명관 작가의 소설이 제목과 몇 줄의 줄거리만으로 '여혐', '남혐'의 극단적인 문제의 논란 속에서 소비되고 이야기되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삼류 건달들의 범죄 이야기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라고 하였으니 몇 줄만 가지고 충분히 오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아쉬웠던 점은 수많은 삼류 건달들 사이에서 유일했던 지니라는 여성 캐릭터였다. 너무나도 실망스럽게도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속 지니는 설자리를 잃은 한국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과 진배없이 너무나도 진부했고 무의미했다. 『고래』를 썼던 그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였고 차라리 없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실망도 기대와 신뢰가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천명관 작가가 짊어진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왕관이 어쩌면 그에게 더 높은 기대와 잣대를 들이미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소설에 대한 실망이 없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천명관 작가가 소설 속에 수시로 파놓은 맨홀에 수시로 빠져들었던 덕이다. 제대로 돈이 되는 일엔 고급 오 데 코롱처럼 가볍고 상쾌한 냄새가 나고... 제대로 독서가 되어준 천명관 작가의 신작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에서 독자들은 어떤 냄새를 맡을지 상상하는 것도 소설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해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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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레드 에디션, 양장)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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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옥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그녀는 동경하고 선망하는 언니가 되어있다. 좋았던 것이 훨씬 더 좋아지고 뭐든 따라 하고 싶어지면서 나를 자주 자극하는 이런 언니가 주위에 있으면 좋겠다고 종종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느낌은 소설보다는 산문이나 에세이에서 더 감응하게 된다. 올 초 발표한 예전과는 다른 밀도의 소설을 읽고 난 이후 요즘 잘 지내고 있는 건지 안부가 궁금했었는데 평소 작가가 좋아한다고 했었던 빨강머리 앤에게 바치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빨강머리 앤'을 좋아하는 유년기를 보낸 작가와는 달리 나는 빨강머리 앤과 말괄량이 삐삐를 자주 혼동하며 빨강머리 앤에 관해서라면 추억할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지만 앞서 여러 작품의 작가 소개 글에서 빨강머리 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는 백영옥 작가가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들려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반가운 출간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평소의 고집 대로였다면 어떡해서든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을 다 챙겨보고 난 뒤 이 책을 읽으며 작가와 함께 공감했어야 하지만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이 어엿한 숙녀로 성장하는 과정들을 애니메이션이 아닌 이 책을 통해 지켜보는 일이 우려와 달리 나쁘지 않았다. 평소 동경하던 언니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느낌으로 펼쳐들었지만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닌 설렘으로 내내 두근거렸다. 빨강머리 앤과 백영옥 작가가 동시에 이야기를 건네고 마음을 두드리며 위로해준다고 느끼며 읽어나갔는데 책을 다 읽고 나자 어느새 나는 빨강머리 앤과 백영옥 작가에게 구원을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연애란 인간관계의 압축판이고, 그것의 본질은 끊임없는 질문이다. 연애에 있어 가장 좋은 상대는 어떤 사람일까.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비슷한 듯 다르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아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사람이 좋다. 함께 있을 때 마냥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지 않아도 좋은 사람. 조금더 정확히 말해, 함께 있지 않음이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은 사람이 내겐 최고의 상대다. 

 누군가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준다는 건, 그 사람의 불안을 막아주겠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결핍을 누군가가 끝내 알아보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 결핍 안에서 공기가 되어 서로를 옥죄지 않고, 숨 쉬게 해야 한다. 그 사람이 옆에 없기 때문에 불편하고 불안해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위성처럼 내 주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힘이 되고 따뜻한 사랑. 이것이야말로 떠날 필요가 없는 관계이다. p.217-218

 

내게 있어서 백영옥 작가는 예측 가능한 작가가 되어주었다. 소설도, 에세이도, 산문도, 작가 백영옥도, 인간 백영옥도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예측 가능한 사람이라 믿고 있다. 작품 소식이 뜸해도 어디선가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기에 불안하지 않고 힘이 된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역시 예측대로 좋았다. 백영옥 작가가 수없이 보았다는 '빨강머리 앤'에서 시선이 머무른 장면, 명대사의 갈무리와 백영옥 작가가 끝없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에 이번에도 역시 자주 자극을 받으며 백영옥 작가가 더 좋아졌다. 그리고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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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어, 버나뎃
마리아 셈플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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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좋아하던 영화감독들이 줄줄이 범작을 내놓으며 '좋아하는'이라는 수식어를 계속해서 붙이기를 머뭇거리게 하고 있다. 하지만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절대 나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는 희귀한 존재다. 좋아하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작품들을 읊는 건 그의 작품들을 다 읊어내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가족 여행을 앞두고 사라진 버나뎃의 이야기 『어디갔어, 버나뎃』을 향한 호기심은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화'라는 소개 글에서 그만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바뀌고야 말았다. 호기심과 관심을 끌었던 책은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이 되었다.

 

 

사람들이 엄마를 두고 뭐라고 떠들어대건 엄마는 인생을 재미있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니까. p.76


 사실 버나뎃은 아주 적은 수의 건물을 지었고 그래서 모두가 그녀를 칭송하는 거죠. 성녀 버나뎃! 남성의 세계에 뛰어든 여성! 환경운동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환경운동을 시작한 사람! 위대한 가구 제작자! 위대한 조각가! 건축자재를 낭비하는 게티에 대항했던 여자! DIY 운동의 창시자! 뭐라고 부른들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p.168

 

 

버나뎃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변 사람들의 이메일, 서신, 서류 등으로 증언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흥미로운 요소들을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어떻게 연출해낼지 궁금해하며 책을 읽어가는 내 머릿속에서는 내가 그려내는 한 편의 영화가 펼쳐진다. 버나뎃의 딸 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녀를 긍정적으로 증언하지 않는다. 가족여행을 앞두고 갑자기 사라진 그녀의 행방을 궁금해하지만 그녀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사람조차 없을 정도로 엄청난 캐릭터를 만나게 되는 즐거움은 물론이고 버나뎃의 행방을 찾아가면서 탄탄한 스토리에 반하고 만다. 호기심과 강한 흡입력 덕분에 도저히 아껴 읽을 수 없는 책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영화화하는 작품의 원작이고, 버나뎃의 행방에 대한 호기심이 크기도 했고 무려 84주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이라고 하고... 아껴 읽지 못하고 단숨에, 그리고 재밌게 읽어냈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탔인지 아쉬움도 조금은 남는다. 그래도 걱정이 되지 않는 건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모자람 없는 영화로 탄생시켜 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작까지 주로 남성 중심의 영화를 만들어온 그가 재창조해낼 캐릭터 버나뎃의 모습이 기대가 된다. 강력한 캐릭터 버나뎃은 물론이고 진지한 상황 속에서 쉴 새 없이 터지는 유머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스크린으로 옮겨놓을지 또다시 참을 수 없을 만큼 궁금해지고 만다. 

 

기상청의 일기예보는 도무지 맞지 않고, 계속되는 폭염주의보는 버나뎃을 바라보는 그녀의 이웃들처럼 혹은 버나뎃이 처한 상황들과 같이 짜증의 연속이지만 이번 여름 사라진 버나뎃의 목격자가 되어 그녀의 행적들을 따라가는 일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우중충한 시애틀이 그리워진다. 밀도 높은 소설을 가볍게, 단숨에 읽어나간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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