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레드 에디션, 양장)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영옥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그녀는 동경하고 선망하는 언니가 되어있다. 좋았던 것이 훨씬 더 좋아지고 뭐든 따라 하고 싶어지면서 나를 자주 자극하는 이런 언니가 주위에 있으면 좋겠다고 종종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느낌은 소설보다는 산문이나 에세이에서 더 감응하게 된다. 올 초 발표한 예전과는 다른 밀도의 소설을 읽고 난 이후 요즘 잘 지내고 있는 건지 안부가 궁금했었는데 평소 작가가 좋아한다고 했었던 빨강머리 앤에게 바치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빨강머리 앤'을 좋아하는 유년기를 보낸 작가와는 달리 나는 빨강머리 앤과 말괄량이 삐삐를 자주 혼동하며 빨강머리 앤에 관해서라면 추억할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지만 앞서 여러 작품의 작가 소개 글에서 빨강머리 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는 백영옥 작가가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들려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반가운 출간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평소의 고집 대로였다면 어떡해서든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을 다 챙겨보고 난 뒤 이 책을 읽으며 작가와 함께 공감했어야 하지만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이 어엿한 숙녀로 성장하는 과정들을 애니메이션이 아닌 이 책을 통해 지켜보는 일이 우려와 달리 나쁘지 않았다. 평소 동경하던 언니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느낌으로 펼쳐들었지만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닌 설렘으로 내내 두근거렸다. 빨강머리 앤과 백영옥 작가가 동시에 이야기를 건네고 마음을 두드리며 위로해준다고 느끼며 읽어나갔는데 책을 다 읽고 나자 어느새 나는 빨강머리 앤과 백영옥 작가에게 구원을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연애란 인간관계의 압축판이고, 그것의 본질은 끊임없는 질문이다. 연애에 있어 가장 좋은 상대는 어떤 사람일까.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비슷한 듯 다르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아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사람이 좋다. 함께 있을 때 마냥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지 않아도 좋은 사람. 조금더 정확히 말해, 함께 있지 않음이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은 사람이 내겐 최고의 상대다. 

 누군가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준다는 건, 그 사람의 불안을 막아주겠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결핍을 누군가가 끝내 알아보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 결핍 안에서 공기가 되어 서로를 옥죄지 않고, 숨 쉬게 해야 한다. 그 사람이 옆에 없기 때문에 불편하고 불안해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위성처럼 내 주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힘이 되고 따뜻한 사랑. 이것이야말로 떠날 필요가 없는 관계이다. p.217-218

 

내게 있어서 백영옥 작가는 예측 가능한 작가가 되어주었다. 소설도, 에세이도, 산문도, 작가 백영옥도, 인간 백영옥도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예측 가능한 사람이라 믿고 있다. 작품 소식이 뜸해도 어디선가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기에 불안하지 않고 힘이 된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역시 예측대로 좋았다. 백영옥 작가가 수없이 보았다는 '빨강머리 앤'에서 시선이 머무른 장면, 명대사의 갈무리와 백영옥 작가가 끝없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에 이번에도 역시 자주 자극을 받으며 백영옥 작가가 더 좋아졌다. 그리고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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