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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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정말 훌륭한 이야기꾼들이 많다.

이토록 큰 찬사도 천명관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조금 부족한 수식어가 되어버리고 만다. 타고난 이야기꾼 천명관 작가의 신작이 발표됐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라는 제목과 유머스러운 일러스트의 표지만 봐도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천명관'이라는 장르의 소설이 또 한 권 탄생하였음을 직감하게 해주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이야기는 나를 어느 세상으로 인도해줄까 기대감을 품으며 책을 읽어나가는 동시에 실로 오랜만에 천명관 작가의 작품세계에 다시 빠져들었다.

 

밀수 다이아몬드, 종마, 호랑이 등 지켜야 할, 혹은 쟁취해야 할 것들을 가지기 위한 전국 각지의 건달들 이야기가 각각의 이야기처럼 펼쳐지다가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지는 구성과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역시 천명관이다. 수많은 캐릭터들과 그들에게 펼쳐진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의 구성이 짧지만 읽는 즐거움을 충분하게 만끽하게 해준다. 수컷들의 뒤틀린 삶이 어떤 것인지 유감없이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묘사와 스토리는 천명관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해준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려온 천명관 작가의 소설이 제목과 몇 줄의 줄거리만으로 '여혐', '남혐'의 극단적인 문제의 논란 속에서 소비되고 이야기되고 있다는 점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삼류 건달들의 범죄 이야기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라고 하였으니 몇 줄만 가지고 충분히 오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아쉬웠던 점은 수많은 삼류 건달들 사이에서 유일했던 지니라는 여성 캐릭터였다. 너무나도 실망스럽게도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속 지니는 설자리를 잃은 한국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과 진배없이 너무나도 진부했고 무의미했다. 『고래』를 썼던 그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였고 차라리 없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실망도 기대와 신뢰가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천명관 작가가 짊어진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왕관이 어쩌면 그에게 더 높은 기대와 잣대를 들이미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소설에 대한 실망이 없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천명관 작가가 소설 속에 수시로 파놓은 맨홀에 수시로 빠져들었던 덕이다. 제대로 돈이 되는 일엔 고급 오 데 코롱처럼 가볍고 상쾌한 냄새가 나고... 제대로 독서가 되어준 천명관 작가의 신작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에서 독자들은 어떤 냄새를 맡을지 상상하는 것도 소설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해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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