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갔어, 버나뎃
마리아 셈플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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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좋아하던 영화감독들이 줄줄이 범작을 내놓으며 '좋아하는'이라는 수식어를 계속해서 붙이기를 머뭇거리게 하고 있다. 하지만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절대 나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는 희귀한 존재다. 좋아하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작품들을 읊는 건 그의 작품들을 다 읊어내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가족 여행을 앞두고 사라진 버나뎃의 이야기 『어디갔어, 버나뎃』을 향한 호기심은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화'라는 소개 글에서 그만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바뀌고야 말았다. 호기심과 관심을 끌었던 책은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이 되었다.

 

 

사람들이 엄마를 두고 뭐라고 떠들어대건 엄마는 인생을 재미있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니까. p.76


 사실 버나뎃은 아주 적은 수의 건물을 지었고 그래서 모두가 그녀를 칭송하는 거죠. 성녀 버나뎃! 남성의 세계에 뛰어든 여성! 환경운동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환경운동을 시작한 사람! 위대한 가구 제작자! 위대한 조각가! 건축자재를 낭비하는 게티에 대항했던 여자! DIY 운동의 창시자! 뭐라고 부른들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p.168

 

 

버나뎃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변 사람들의 이메일, 서신, 서류 등으로 증언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흥미로운 요소들을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어떻게 연출해낼지 궁금해하며 책을 읽어가는 내 머릿속에서는 내가 그려내는 한 편의 영화가 펼쳐진다. 버나뎃의 딸 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녀를 긍정적으로 증언하지 않는다. 가족여행을 앞두고 갑자기 사라진 그녀의 행방을 궁금해하지만 그녀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사람조차 없을 정도로 엄청난 캐릭터를 만나게 되는 즐거움은 물론이고 버나뎃의 행방을 찾아가면서 탄탄한 스토리에 반하고 만다. 호기심과 강한 흡입력 덕분에 도저히 아껴 읽을 수 없는 책이다.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영화화하는 작품의 원작이고, 버나뎃의 행방에 대한 호기심이 크기도 했고 무려 84주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이라고 하고... 아껴 읽지 못하고 단숨에, 그리고 재밌게 읽어냈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탔인지 아쉬움도 조금은 남는다. 그래도 걱정이 되지 않는 건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모자람 없는 영화로 탄생시켜 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작까지 주로 남성 중심의 영화를 만들어온 그가 재창조해낼 캐릭터 버나뎃의 모습이 기대가 된다. 강력한 캐릭터 버나뎃은 물론이고 진지한 상황 속에서 쉴 새 없이 터지는 유머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스크린으로 옮겨놓을지 또다시 참을 수 없을 만큼 궁금해지고 만다. 

 

기상청의 일기예보는 도무지 맞지 않고, 계속되는 폭염주의보는 버나뎃을 바라보는 그녀의 이웃들처럼 혹은 버나뎃이 처한 상황들과 같이 짜증의 연속이지만 이번 여름 사라진 버나뎃의 목격자가 되어 그녀의 행적들을 따라가는 일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우중충한 시애틀이 그리워진다. 밀도 높은 소설을 가볍게, 단숨에 읽어나간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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