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2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은 신비로웠다. 증오와 저주와 고문과 화형이 있는 지옥 같은 세상이건만, 다른 한편에는 이렇게 선한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자신을 양녀로 받아들이고 도피시켜준 유겸, 객주에서 불한당을 제지하던 이름 모를 노인과 손님들, 모두 자신이 힘들어지더라도 남을 위해 나서는 거룩한 이들이었고 영원히 기억에 남을 이들이었다. 은수는 목에 걸린 은십자가 목걸이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목걸이에 새겨진 글귀를 되뇌었다.

 "템푸스 푸지트, 아모르 마네트 (Tempus Fugit, Amor Manet)." 

 은수는 라틴어를 깨우치면서 이 글귀가 '세월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는 뜻인 걸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이 목걸이가 모든 악귀를 물리치는 영물이라고 했는데, 결국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준 것도 사랑이었다고 느꼈다. p.157

 

소설의 2권이 시작되자마자 소설은 조선시대로 무대를 옮기고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여 1권을 건너뛰고 2권만 읽더라도 개별 된 한 권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기구한 운명인 양은수의 일생을 통해 한글의 창제 과정과 금속활자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다. 조선, 중국, 로마, 독일 등 소설 속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빠른 흡인력으로 진실을 파헤친다. 김진명이라는 장르의 플롯이 익숙하지만 여전히 그의 작품은 흥미롭고 광범위한 취재력과 사회문제에 관한 날카로운 시선은 감탄을 자아낸다. 

 

 "여하튼 청주에 한번 와줘야겠어요."

 "일이 있으면 김 교수님이 오세요. 전 바빠요."

 기연은 부지불식간에 형성된 두 사람 사이의 호칭이 상당히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는 자신을 기연 씨니 김 기자니 하고 부르는데 자신은 꼬박꼬박 김 교수님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교수와 기자, 기자와 교수 간에 계급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이런 구도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서른둘, 상대는 서른여덟이니 나이 차이가 그리 큰 것도 아니었다. "다음엔 김 교수라 불러야지"라고 기연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p.256-257

 

진실을 찾아가는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지나칠 수 없는 음모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전에 이어 따뜻한 화해와 애국심의 처방을 건네는 것 역시 김진명이라는 장르의 필살기다. 이번 신작 역시 김진명 작가는 묵직한 메시지를 건넨다. 출간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와 한글 창제라는 소재와 등장인물들이 겹쳐 이 시기에 이 작품을 읽었다는 자체가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김진명 작가의 다음 작품의 소재는 무엇일까? 여전히 흥미롭게 읽히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변주에 대한 갈망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직지 1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래 그분이 라틴어를 가르치기는 하셨지만 학교 밖의 일은 관심이 없는 분이었어요. 그런데 직지와 관련되었다고 볼 수 있는 교황의 편지를 접하고 난 위 사건에 휘말려 피살된걸로 여기서는 보고 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은 한국인에게 피살된 게 아니에요. 누군가 귀를 베어내고, 목을 물어 피를 빨아내고, 창으로 찔려 죽였어요. 셋 중 어느 하나도 한국에서 발생한 적이 없는 희귀한 범행이에요. 전문가는 그것이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유럽의 범죄라고 해요." p.142

김진명 작가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이자 장르이다. 신간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이번엔 무엇을 소재로 숨 막히는 이야기를 보여줄지 궁금해하곤 하는데 이번 신작은 직지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에 관한 미스터리를 추적해간다. 김진명을 읽어본 독자라면 작가의 사진만 보더라도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형사보다 더 발 빠르게 사건에 개입하여 배후세력에 맞서 사건의 미스터리를 밝혀내고 오래전 진실을 밝혀내는 김진명이라는 장르의 플롯이 선명하게 그려지지만 책을 펼쳐들고 사건을 마주하고 나면 공기부터 달라지는 것을 인정해야 함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이 사건을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동기를 따르자니 현장이 울고, 현장을 따르자니 동기가 운다잖아요." p.136

라틴어를 전공 때문에 직지에 관해 관련된 일을 조사하다가 기괴한 모습으로 처참하게 살해된 전형우 교수의 죽음에 대해 형사보다 빠르고 치밀하게 사건을 파헤쳐 가는 김기연 기자는 살인 사건에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와 인쇄술의 혁명으로 세계 인쇄 역사를 바꾼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에 대한 학계의 대립과 숨겨진 진실이 있음을 간파하고 진실을 파헤쳐 가며 한국, 독일, 프랑스를 종횡무진하며 사건에 깊숙이 침투할수록 반전의 반전이 거듭되며 긴장감이 더해진다. 미스터리를 추적해가는 과정과 종교적 형태의 살인 현장에 『다빈치코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직지의 어머니 박병선 박사부터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발명에 직지의 영향을 받았는지에 관한 학계의 팽팽한 대립된 입장까지 이번 작품 역시 김진명이라는 장르만의 흥미로운 접근과정과 탄탄하고 치밀한 취재 과정이 돋보이면서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만다.

정말 쿠텐베르크 금속활자본은 직지의 영향을 받은 건지, 미스터리한 인물 카레나의 정체와 그녀가 쥐고 있는 사건의 비밀이 무엇인지에 관한 궁금증이 커진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력인지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 역시 김진명이라는 장르가 가진 매력이다. 마치 당연한 수순처럼 이번에도 역시 무방비 상태로 빠져들고 말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래서 말이야 오빠가 자이툰 부대에 파병을 갔을 때 말야, 미군 새끼들이……"고대를 나와서 무슨 건설회사에 다닌다는 남자가 아무도 묻지 않은 군대 얘기를 꺼내고 난리였다. 나는 남자가 떠드는 동안에 혼자 청하를 따라서 연거푸 들이켰다. "거기 술 잘 마시는 친구는 아직 대학생?" "아뇨. 졸업했는데요." "군대는 갔다 왔겠네. 어디 출신이에요?" 나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재희가 내 눈치를 보며 말을 돌렸다. "오빠, 나이 서른 넘어서 언제까지 군대 얘기야 재미없게." 재미없음에도 등급이 있다면 오늘의 술자리는 월드 클래스.

 

박상영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한 순간을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박상영 작가의 등장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로 오랜만에 주목할만한 남자 소설가의 발견이라며 반가워하고 환영하는 마음 이면엔 이 작가 당분간은 나만 좀 알고 싶다는 얌체 같은 바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박상영 작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전투적으로 발표하며 한국 문단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실하게 구축하고 있다. 작년 첫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발표하고 채 일 년도 안 된 시기에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을 발표하며 요즘 한국 문단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사라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너무나도 빠른 속도감에 내가 이 작가를 부지런히 따라 읽어야 하는데 뒤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할까 봐 벌써부터 노파심이 생기기도 한다. 신작 『대도시의 사랑법』의 출간 소식만으로 SNS가 뜨거워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박상영 작가 앞에서 '나만 알고 싶은'이라는 수식어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버렸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평단 맛집 창비에서 출판한 덕분에 수록된 소설 중 「재희」와 「대도시의 사랑법」 가재본을 랜덤으로 보내주는 사전서평단을 모집했고 출판사와 작가의 활발한 홍보 덕분에 200명에 못 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품고 있는 나에게 기분 좋은 선정 연락과 함께 도착한 작품은 표제작 「대도시의 사랑법」이었다.

 

 

 

- 규호야, 나랑 사귀기 전에 알아야 할 게 두가지 있어. 일단 나는 단걸 싫어해. 그러니까 마카롱 같은 건 사줄 필요가 없어. 차라리 돈으로 줘."

- 미친.

 

읽은 작품들이 쌓여갈수록 박상영 작가는 아이러니 그 자체이다. 이제 갓 두 권의 책을 발표한 신인작가임에도 대중성이나 작품성은 절대 떠오르는 신인의 것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그의 작품들의 신선함은 젊음을 앞서 어리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감각적이고 젊은 작품들이라면 그동안 많이 봐왔지만 박상영 작가의 작품들은 어쩐지 그 젊음보다 더 젊다. 어리다라는 표현 외에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 어림이 절대 유치하지 않다. 그러면서 더 세련됐다. 지금까지 봐왔던 소설 세계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 박상영 작가의 작품에 대해 '게이'가 먼저 거론되면 박상영의 진가를 다 알아주지 않은 것 같아 속상해지고 만다. '박상영 작가 나만 알고 싶어요'와 '박상영 작가 모르는 사람 없게 해주세요' 두 바람이 충돌하는 것 역시 아이러니다.

표제작 「대도시의 사랑법」은 한 커플의 만남과 연애사를 그려낸 작품이다. 단편 소설 한 권을 담은 작고 얇은 가제본 곳곳에 웃음 지뢰가 있지만 그럼에도 너무 슬프다. 과연 박상영 작가는 아이러니의 귀재다. 독창적인 별명 짓기와 특정적인 지역들과 공간들의 묘사가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개성 넘치고 통통 튀는 매력에 빠져들어 빠르게 읽어냈지만 먹먹하고 슬픈 감정이 언제 와서 독서가 한참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잠식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확실히 박상영 작가에겐 걸출함이 있다는 걸 이번에 또다시 확인하게 됐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재희」, 「우럭 한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가 수록된 '연작소설'이다. 읽어 본 작품들도 있고 아직 못 읽어본 작품들도 있는데 덕분에 읽어봤던 작품들도 다시 찾아 읽고 싶고 못 읽어본 작품들은 너무 궁금해 빨리 읽고 싶다. 무엇보다 소설집을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으며 연작소설의 재미에 빠지고 싶다. 창비 출판사가 서평단 맛집에 이어 동네서점 에디션 맛집으로도 막 유명해지고 있는데 『대도시의 사랑법』역시 일반 표지와 동네서점 에디션 표지로 독자들을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한다. 작품 내적으로, 외적으로 끝없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마력의 작품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취향을 팝니다 - 콘셉트부터 디자인, 서비스, 마케팅까지 취향 저격 ‘공간’ 브랜딩의 모든 것
이경미.정은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잔의 커피를 사 마셔도 단순히 '커피'만이 아닌 '취향'과 '경험'을 함께 사는 시대다. 맛, 서비스, 인테리어, 브랜드가 내 취향을 만족시켜주고 특별한 경험을 충족시켜 준다면 가격이나 거리, 시간쯤은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다. 하지만 '취향존중'과 동시에 '싫존주의'가 대치될 정도로 주관이 확실하고 까다로운 고객들의 취향을 파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브랜드 마케터이자 공간 기획자인 이경미, 정은아의 『우리는 취향을 팝니다』는 이런 사회 현상과 시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 발 앞서 브랜딩을 진단하고 제시해준다.

 

전 세계적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각종 브랜드들의 성공 사례들과 요즘 한국에서 가장 핫한 을지로와 익선동까지 두루 다루며 단순한 '공간'을 넘어 마케팅에 관한 모든 것을 꼼꼼하게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향과 경험에 관한 시야를 넓혀주는 것은 물론이고 없던 감각도 깨우쳐 주고 있다. 마치 감각적인 잡지를 넘기듯이 술술 넘기며 읽힐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두 베테랑 작가의 감각적이고 꼼꼼한 글과 사진을 골똘하게 살펴보게 되는 반전도 『우리는 취향을 팝니다』가 전해주는 확실한 재미다. 디테일이 살아 있다.

 

 우린 수많은 공간들 속에서 때론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작은 디테일 하나에 감동 받고, 위트를 느끼기도 합니다. 화분 안에 숨어 있는 작은 피규어, 창가의 작은 꽃, 카운터의 센스 있는 문구 등 무심히 스쳐지나갈 수 있는 것들에서 말입니다. 이런 공간의 디테일을 점검할 때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감동받을만한 디테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 고민은 고스란히 공간을 찾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며 공간의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p.82

 

이제 어느 공간을 들러도 예전보다 더 들여다보게 되고 많은 것이 보일 것 같다. 상점을 운영하거나 운영 계획이 있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솔루션을 제시하지만(그러한 이유로 센스 있는 개업선물로도 추천 가능) 취향과 감각을 깨우치는데도 그 역할을 하고 있기에 독자층을 특정 무리들로 한정하는 오해로 이 책을 그냥 지나치는 실수를 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애초에 계획도 없고 돈도 없고 생각도 전혀 없었는데 나만의 공간이 만들어지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건 즐거운 부작용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소 SF 소설을 즐겨 읽지 않음에도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반가워했던데는 김초엽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이유의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대상 「관내분실」과 가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동시에 수상하며 SF 문학계에 화려한 데뷔를 한 김초엽 작가의 첫 소설집이면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 두 작품이 모두 수록된 작품집이 나왔다고 하니 평소 즐겨읽는 장르가 아님에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만사를 제쳐두고 먼저 읽어봐야 할 책이 되었다. 

 

젊은 감각과 화려한 상상력을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그 기대들 충분히 만족시켜 주고 있지만 소설을 읽을수록, 작가가 구축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수록 정말 이 작품들을 쓴 작가가 93년생이 맞는 건지 의심이 든다. 그동안 익히 봐와서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고착된 것들을 초월하면서도 먹먹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인종, 성별, 장애, 연령, 모성애 등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깨고 비트는 기교가 20대 중반의 신인 작가가 첫 소설집에서 선보이는 작품세계라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토록 멋진 공상과학세계, 지금까지 본 적 없었던 흥미로운 캐릭터들과 그들이 파헤치는 과거의 사건들이 만들어낸 조화와 능수능란한 기교는 이미 경지에 달한 것이라 해도 절대 과한 것이 아니다. 그토록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이야기가 술술 읽히는 것은 물론이고 그 가상세계와 철학적 메시지를 오래 음미하고 싶어 잠깐 쉬어가고 싶은 생각과 작가가 구축한 다른 소설 세계가 너무 궁금해 빨리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 상반된 두 바램이 매번 충돌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만다. 그리고 나는 거의 매번 남은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며 빠르게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수록된 단편 중 「감정의 물성」에서는 각종 감정들을 조형화해서 사람들로 하여 호기심을 자극하고 매료시키는 물건이 등장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현상을 일으키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한국 SF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하고 야심 차게 내놓은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역시 한 권의 책 자체가 '황홀함'과 '먹먹함'이 오묘하게 뒤섞인 하나의 감정의 물성과도 같았다. 김초엽 작가가 더더욱 확장해 갈 그녀만의 작품세계와 입체적인 캐릭터들과 짜릿하고 시원하게 건드려줄 사회현상들에 대한 기대감이 대책 없이 커져간다. 다음 작품에서 그녀의 감정의 물성은 어떤 감정들을 전해줄지 궁금해진다. 책의 출간 소식을 기다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의 감정 역시 '설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