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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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이야 오빠가 자이툰 부대에 파병을 갔을 때 말야, 미군 새끼들이……"고대를 나와서 무슨 건설회사에 다닌다는 남자가 아무도 묻지 않은 군대 얘기를 꺼내고 난리였다. 나는 남자가 떠드는 동안에 혼자 청하를 따라서 연거푸 들이켰다. "거기 술 잘 마시는 친구는 아직 대학생?" "아뇨. 졸업했는데요." "군대는 갔다 왔겠네. 어디 출신이에요?" 나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재희가 내 눈치를 보며 말을 돌렸다. "오빠, 나이 서른 넘어서 언제까지 군대 얘기야 재미없게." 재미없음에도 등급이 있다면 오늘의 술자리는 월드 클래스.

 

박상영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한 순간을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박상영 작가의 등장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로 오랜만에 주목할만한 남자 소설가의 발견이라며 반가워하고 환영하는 마음 이면엔 이 작가 당분간은 나만 좀 알고 싶다는 얌체 같은 바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박상영 작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전투적으로 발표하며 한국 문단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실하게 구축하고 있다. 작년 첫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발표하고 채 일 년도 안 된 시기에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을 발표하며 요즘 한국 문단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사라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너무나도 빠른 속도감에 내가 이 작가를 부지런히 따라 읽어야 하는데 뒤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할까 봐 벌써부터 노파심이 생기기도 한다. 신작 『대도시의 사랑법』의 출간 소식만으로 SNS가 뜨거워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박상영 작가 앞에서 '나만 알고 싶은'이라는 수식어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버렸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평단 맛집 창비에서 출판한 덕분에 수록된 소설 중 「재희」와 「대도시의 사랑법」 가재본을 랜덤으로 보내주는 사전서평단을 모집했고 출판사와 작가의 활발한 홍보 덕분에 200명에 못 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품고 있는 나에게 기분 좋은 선정 연락과 함께 도착한 작품은 표제작 「대도시의 사랑법」이었다.

 

 

 

- 규호야, 나랑 사귀기 전에 알아야 할 게 두가지 있어. 일단 나는 단걸 싫어해. 그러니까 마카롱 같은 건 사줄 필요가 없어. 차라리 돈으로 줘."

- 미친.

 

읽은 작품들이 쌓여갈수록 박상영 작가는 아이러니 그 자체이다. 이제 갓 두 권의 책을 발표한 신인작가임에도 대중성이나 작품성은 절대 떠오르는 신인의 것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그의 작품들의 신선함은 젊음을 앞서 어리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감각적이고 젊은 작품들이라면 그동안 많이 봐왔지만 박상영 작가의 작품들은 어쩐지 그 젊음보다 더 젊다. 어리다라는 표현 외에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 어림이 절대 유치하지 않다. 그러면서 더 세련됐다. 지금까지 봐왔던 소설 세계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 박상영 작가의 작품에 대해 '게이'가 먼저 거론되면 박상영의 진가를 다 알아주지 않은 것 같아 속상해지고 만다. '박상영 작가 나만 알고 싶어요'와 '박상영 작가 모르는 사람 없게 해주세요' 두 바람이 충돌하는 것 역시 아이러니다.

표제작 「대도시의 사랑법」은 한 커플의 만남과 연애사를 그려낸 작품이다. 단편 소설 한 권을 담은 작고 얇은 가제본 곳곳에 웃음 지뢰가 있지만 그럼에도 너무 슬프다. 과연 박상영 작가는 아이러니의 귀재다. 독창적인 별명 짓기와 특정적인 지역들과 공간들의 묘사가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개성 넘치고 통통 튀는 매력에 빠져들어 빠르게 읽어냈지만 먹먹하고 슬픈 감정이 언제 와서 독서가 한참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잠식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확실히 박상영 작가에겐 걸출함이 있다는 걸 이번에 또다시 확인하게 됐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재희」, 「우럭 한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가 수록된 '연작소설'이다. 읽어 본 작품들도 있고 아직 못 읽어본 작품들도 있는데 덕분에 읽어봤던 작품들도 다시 찾아 읽고 싶고 못 읽어본 작품들은 너무 궁금해 빨리 읽고 싶다. 무엇보다 소설집을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으며 연작소설의 재미에 빠지고 싶다. 창비 출판사가 서평단 맛집에 이어 동네서점 에디션 맛집으로도 막 유명해지고 있는데 『대도시의 사랑법』역시 일반 표지와 동네서점 에디션 표지로 독자들을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한다. 작품 내적으로, 외적으로 끝없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마력의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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