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관한 9가지 거짓말
마커스 버킹엄.애슐리 구달 지음, 이영래 그림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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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23살 때 밤샘을 한 후 더 이상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며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제일 처음 느끼고선 충격에 빠졌었고 30살의 7월 17일(어찌나 충격이 컸던지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한다)엔 외출을 준비하다 첫 새치를 발견하고선 23살 때의 충격은 애교로 느껴질 정도로 까무러치게 놀라기도 했었다. 슬프게도 이후 새치는 더 늘어났고 나이를 먹었다고 느끼게 되는 일들은 일일이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로 빈번하게 발견되는데 신체의 노화와 체력의 한계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열거할 것들이 많은 신체적, 체력적 변화와는 달리 정신적 변화는 한마디로 정리가 가능한데 바로 기대감이라는 감정이 거의 멸종됐다는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새로운 인연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지 꽤 오래됐는데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보다는 나쁜 사람을 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더 간절하다. 그건 연애나 대인관계에서 학습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생활을 통해 부정적으로 학습된 결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

 

업무에 관해서라면 타협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고 일에 관한 욕심이 많아 그만큼 어려움과 스트레스도 많이 겪고 있다. 누군가의 일처리 능력, 리더십을 보며 나도 닮고 싶다는 건설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게 될 때가 있는가 하면 절대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도 있다. 건강이라면 자신 있는 내가 언젠가부터 위장약을 달고 사는 사람이 된 데에는 주변에 전자는 멸종 위기종만큼이나 희귀하고 후자는 어딜 가나 널린 덕분일 거다.

그만큼 일을 진행하는데 업무와 성과에서, 동료나 거래 관계에서 받게 되는 어려움과 스트레스에서 버거움을 느끼지만 원인과 방법을 몰라 해결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은 쪽을 택하면서 짊어지게 된 형벌이라는 사실 또한 모르는 바는 아니다.

 

 사랑에 빠지면 다른 사람이 된다. 사랑은 정신을 고양하고 당신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그것은 당신의 생산성, 창의성, 개방성, 관대함, 회복력, 혁신, 협력, 효과가 가장 뛰어난 차원이다. 사랑에 빠져 있을 때 당신은 참으로 아름답다. 여기에 나열한 자질을 한번 보라. 이것은 삶에서 당신 자신과 가족, 조직의 CEO가 당신에게 바라는 자질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특징 목록과 CEO가 원하는 이상적인 직원의 자질 목록을 나란히 놓으면 두 목록이 동일하다. p.269

 

마커스 버킹엄과 애슐리 구달의 『일에 관한 9가지 거짓말』은 방대한 자료조사 및 취재와 인터뷰, 시대와 트렌드의 흐름에 맞는 비유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생각과 시야의 확장을 도와주기도 하면서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나에게 글로벌 세계를 보여주며 자신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생각의 유연함과 마음의 넉넉함도 품게 해준다. 어느 직급이 읽어도 좋을 책이라는 데에는 무조건적인 동의가 가능하지만 부작용이 있다면 예전 드라마 <미생>이 한참 성공리에 반영되고 있을 때 너무나도 현실적인 캐릭터들과 캐릭터를 맛깔나게 연기하는 연기자들의 열연에 퇴근 후 드라마를 보며 휴식을 취하는 건데도 어쩐지 퇴근 후에도 회사에 있는 것 같다던 시청자들의 원성이 자자했었는데 『일에 관한 9가지 거짓말』 역시 퇴근 후 독서의 사색이라기보다 워크샵이나 세미나에 참석한듯한 착각에 들에 하여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그만큼 포인트를 잘 짚어냈고 비유와 조사, 통계가 적절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럼에도 다행이었던 건 연말을 앞두고 일에 관한 건설적인 마음을 잡아주는 계기가 되어 책을 읽은 시기가 적절했던 것 같다. 신년 독서 특수 시즌에 자기 개발을 목표로 삼은 이들에게 읽히기에 더할 나위 없는 책이니 마케팅이 잘 되고 입소문을 잘 타서 특수를 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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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미술관 - 나만의 감각으로 명작과 마주하는 시간
오시안 워드 지음, 이선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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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국어시간 때였다. 시험을 앞두고 시험 범위까지 진도를 다 나가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자율학습 시간을 주고 챙겨온 책을 읽으셨다. 조용한 교실에서 선생님은 정적을 깨트리며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이 좋으니 시험이 끝나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을 하셨었는데 그 책은 한젬마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였다. 국어 선생님의 추천이라 일단 신뢰가 갔고 국어 선생님의 미술책 추천이라 호기심도 생겨 빠르게 책을 찾아 읽었었고 새로운 시도의 신선함에 나 역시 책에 반하고 말았던 즐거운 추억이 있다. 

 

미술에 관해서라면 나는 오래도록 지독한 짝사랑을 앓고 있는 중이다. 그리기든 만들기든 미술 실력이라면 형편없는 것은 물론이고 작품을 보는 안목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실력과는 별개로 관심은 많아 외국여행이나 서울에 갈 일정이 생기면 미술관 투어 일정부터 알아보는 열성과 부지런을 떠는데 무언가에 금방 빠지고 그만큼 쉽게 식어버리는데 일가견이 있는 내가 이토록 길고 진득한 짝사랑을 하는 분야가 있다는 것이 놀라울 일이고 그 분야가 미술이라는데 의아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징들은 그림에 깊고 복잡한 생각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수르바란은 죽임을 당하는 양을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음을 맞이한 예수라고 해석하거나 우리 존재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정물화로만 그린 게 아니다. 그의 그림은 사람들의 유대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상징으로도 읽을 수 있다. 정말 철학적인 그림은 한 가지 학설이나 한 가지 주장만 뒷받침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과 모호함을 품고 있다. 어두운 배경은 죽음, 하얀 양털은 삶을 암시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우리가 감상할 때의 성향과 기분에 따라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가 바뀔 수 있다. p.85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하나님의 어린 양>

 

고등학교 1학년 때 한젬마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에 빠진 이후 이른바 '그림 읽기'방식의 책 들이라면 무조건 집어 드는 나에게 오시안 워드의 『혼자 보는 미술관』는 읽기도 전에 만족하고 반해버릴 책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기분 좋게도 그러한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 그림보다 1세기 전,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더 혁신적으로 아프리카 혈통의 노예인 후안 데 파레하 Juan de Pareja의 초상화를 그렸다. 후안 데 파레하는 벨라스케스의 조수로 훗날 이름난 화가가 되었다. 초상화 속의 파레하는 오마이처럼 생각에 잠겨 먼 곳을 응시하지 않는다. 귀족적인 복장을 하고 관람자를 도도하게 바라보는 태도로, 마치 자신이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었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듯하다. 사실 주인이었던 벨라스케스가 그를 해방해주었다. 이 그림이 그려진 해에, 벨라스케스는 파레하의 노예해방 서류에 서명했다. p.115 디에고 벨라스케스 <후안 데 파레하>

 

60페이지가 지나서야 나타난 책의 목차를 보고 짐작은 했지만 그야말로 밀도가 엄청난 책이다. 그러니까 나름의 각오가 필요한 책이다. 책에 실린 방대한 양의 작품들은 물론이고 작품에 대한 설명과 미술사, 당시의 세계사 등 작가가 들려주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코멘트가 쉼 없이 술술 넘어가는 과정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하나의 작품을 보여주고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고 또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일이 익숙한 나에게 한 작품에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혼자 보는 미술관』만의 특별한 방식에선 특유의 기교가 보이기도 한다. 처음 보는 작품들에 대해 새로운 작품과 작품세계에 대해 알게 되어 반갑고 익히 알고 있는 작품에 대한 해석과 코멘트는 작품에 대한 시야를 더 넓혀주면서 그림 읽기'방식의 책들을 좋아하고 좀 읽어봤다고 자부하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겸손해지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책에 수록된 작품들과 작가의 깊이 있는 해설을 읽으며 작가의 안목과 센스에 대해 감탄을 자아낸다(책의 중반, 조금 생뚱맞게 느껴지는 단 한 점의 동양화 안중식의 <영광풍경도>는 작가에게 질문거리가 생기게 만들기도 한다).

진짜 목적을 어떻게든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거나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은 원래 내용이나 배경과 상관없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소문에 휩싸이기 쉽다. 간단한 선과 색깔만으로 그린 인류 최초의 그림 중 하나를 보면서도 페르메이르가 평생 추구해온 예술에 대한 야심을 담은 <회화 예술>처럼 끝없는 신비를 느낄 수도 있다. p.192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회화 예술>

 

재미와 전문성을 동시에 사로잡으며 책이 술술 읽히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가진 특유의 밀도 또한 무시하기란 힘들어 보인다. 그러니까 이 책을 처음 읽을 땐 무조건 조금씩 천천히 아껴 읽는 걸 추천한다. 그렇게 완벽하게 책을 음미한 뒤에는 그때그때 랜덤으로 아무 페이지나 넘기거나, 원하는 작품을 찾아 보고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는데 (이 부분에선 책의 목차와 색인에 대한 아쉬움은 조금 남지만...) 그러니까 오래 두고 읽기에도 더없이 너무나 완벽한 책이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빈약하지만 오시안 워드의 안목과 재능을 일찍 발견한 기쁨이 크다. 오시안 워드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그가 더 큰 세계에서 더 크게 성장하면서 폭넓은 행동반경에서도 꾸준히 글을 쓰고 책을 내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전히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인데다가 발전의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그에게 소개받을 미술 세계가 무궁무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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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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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다른 쪽으로 터닝 포인트를 돌았다는 사실은 이제 부정할 수 없이 확실해졌다.

동거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 동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거'의 형태와는 조금 다르고 많이 특이하다. 남자친구와 헤어져 갑자기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티피에게 선택의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은 동생의 변호사 선임비용을 위해 월세가 필요한 야간에 일하는 호스피스 병원 간호사 리언과 서로의 시간을 정해 집을 공유하는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에서 6시까지는 리언이 아파트를 사용하고 오후 6시부터 오전 8시까지, 그리고 주말 동안 아파트는 티피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셰어하우스 첫 번째 규칙, 서로 만나지 않는다. 침대의 오른쪽은 리언, 왼쪽은 티피!

 

"당신은 매우…."

그가 손을 저었다.

"시끄러워요? 야단스러워요? 몸이 말도 안 되게 커요?"

그가 움찔했다.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나는 답을 기다렸다.

"너무 고대한 나머지 막상 읽을 수가 없는 책, 그런 책 있었어요?"

"아, 그렇고말고요. 늘 있죠. 나한테 자제심이란 게 한 톨이라도 있었다면, 『해리 포터』 시리즈 완결 편은 읽을 수 없었을걸요?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고통스러울 정도였죠. 앞선 책들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에요. 내가 바라던 대로가 아니면 어쩌지?"

"맞아요, 바로 그거."

그가 손을 흔들었다.

"내 생각에는… 그런 거였던 것 같아요."

"내가요?"

"그래요, 당신이." p.262-263

 

우리 사이는 기껏해야 주전자나 문 뒤편에 붙이는 별난 메모 정도면 충분하다.

사악한 부동산 시세와 물가를 자랑하는 영국(특히 런던)이지만 로맨틱 코미디가 펼쳐지는데 이만한 장소도 없다는 걸 베스 올리리의 『셰어하우스』를 통해 다시 확신하게 됐다. 특이한 형태의 동거 형태만큼이나 개성 넘치고 입체적인 캐릭터들과 사랑스러운 스토리는 소설을 읽어가는 내내 말랑말랑하고 달달하게 한다. 정반대 성격인 티피와 리언이 포스트잇 쪽지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서서히 서로에게 이끌려가는 과정에서 소설의 결과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신선하다. 서로 만나지 않는다는 그들의 규칙이 기념비적인 욕실 충돌 사건을 통해 금이 가더니 자신의 일상에 상대를 초대하면서 그들의 공유가 공간은 물론이고 시간, 그리고 상대의 마음으로까지 확대하며 발전해나가는 과정들을 지켜보는 시선이 시종일관 즐겁다. 티피와 리언의 로맨스는 물론이고 리언의 동생 리치의 항소심과 호스피스 병동의 프라이머 씨의 옛사랑 조니 화이트를 찾아가는 여정이 메인 로맨스 스토리의 즐거움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어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더불어 정말 소설 세계에서만 만났으면 좋겠는, 현실세계에서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티피의 전 남자친구 저스틴과 직장동료 마틴의 끔찍한 이야기와 교훈도 소설의 또 다른 재미의 요소를 더해준다. 그리니까 『셰어하우스』는 즐겁게 책장이 술술 넘어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인 것이다.

 

티피는 충동적이고, 그녀의 충동적인 면은 전염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나다.

그리고 리언은 약간의 두려움을 감수하고도 함께할 만한 사람이다.

티피와 리언의 시점이 서로 교차하며 소설이 이어지고 두 주인공의 로맨스 소설과 더불어 주변 인물들과의 따뜻한, 짜릿한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다. 주변의 도움으로 주인공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해나가는 이야기 역시 감동을 자극하며 로맨스 소설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나 영화화되어도 흥행이 보장될 것 같다는 생각을 읽는 동안 자주 했다. 특히 살림출판사가 『미 비포 유』,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이어 이번 신작 『셰어하우스』까지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사로잡는 확실한 로맨스 소설 전문 출판사로 자리매김하는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것 같다. 독자로서 그 과정들을 빠르게 지켜보는 일 역시 소설이 안겨준 재미 이상의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조조 모예스, 델리아 오언스, 베스 올리리 등 새로운 작가와 확실한 작품을 발견한 기쁨만큼이나 출판사의 확실한 색을 알게 된 기쁨도 크다. 작가들의, 출판사의 다음 행보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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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책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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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평소 책갈피 용도로 막 쓰는 책의 띠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만 사실 띠지의 홍보효과는 엄청나다고 한다. 사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평소 띠지에 대해서 부정적이지만 무수한 수상 경력과 믿을만한 언론이나 명사들의 훌륭한 추천사가 있는 띠지의 강렬한 홍보문구에 사로잡혀 집어 든 책이 꽤 많았음을 고백한다. 니나 게오르게의 『꿈의 책』 역시 그랬다.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강력 추천!'과 "이 꿈같은 소설을 다 읽고 '깨어난' 독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신문사 게네랄 안차이거지의 매력적인 찬사를 보고 이 책을 그냥 지나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세상에 대한 글을 쓰다. 사람들을 보여주기 위해 사람들에 대한 글을 쓰다.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내 생각에 대한 글을 쓰다. 나는 이미 작년에 메모장을 샀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메모장이 펼쳐진 적은 없다. 메모장이 마치 내게 묻는 듯하다. 네가 무슨 할 이야기가 있겠어? p.156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 불의의 사고를 당해 코마 상태에 빠진 헨리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자신을 만나러 오다 죽음의 문턱에 선 아버지를 보며 상실에 빠진 샘, 헨리에게 버림받았다고 믿는 에디의 간절한 기다림의 여정을 니나 게오르게는 잔잔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냈다. 48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두께만큼이나 감정의 소모를 크게 요구하지만 그 과정들이 게네랄 안차이거지의 찬사처럼 소설을 읽기 이전과 다른 깨우침을 주는 이야기라는 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우리 둘은 말없이 강을 내려다본다.

 나는 아빠에게서 받은 것이 하나도 없다. 커피 잔, 손목시계, 추억. 무엇을 붙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열세 살이라는 건 부당하다. 아무 쓸모없다. 지금은 삶이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방위를 가리키는 순간이다. 잘못과 절망.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p.261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헨리와 매디의 꿈과 샘과 에디의 현실이 교차되며 상처투성이인 등장인물들이 책을 읽어가는 내내 쉼 없이 감정을 두드리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니나 게오르게는 『꿈의 책』으로 처음 만난 작가였지만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슬픈 동화처럼, 몽환적인 분위기의 영화처럼, 때로는 판타지처럼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며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어주었다. 캐릭터들 하나하나에 온전히 이입이 되면서 작가가 전해주는 큰 울림을 고스란히 받으며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호기심이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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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와 잘 지내지 맙시다 - '셀프헬프 유튜버' 오마르의 아주 다양한 문제들
오마르 지음 / 팩토리나인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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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넘치게 먹었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있다는 것 역시 나이를 먹었다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일 텐데 그중 하나가 유튜브 스타를 몰라본다는 것이고 너도나도 열풍이라는 유튜브에 관심이 1도 안 가는 것 역시 그러한 증상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유튜브 스타 오마르의 『모두와 잘 지내지 맙시다』를 받아들고서도 작가나 작가의 유튜브 채널에 대한 관심이나 호기심이 크게 생기지 않았던 건 그러니까 내가 나이를 넘치게(?) 먹었기 때문이었다.

『모두와 잘 지내지 맙시다』라는 명언과도 같은 제목과 구독자와 소통하는 유튜버라는 키워드 덕분에 20대 초반에 끼고 살며 무수히 넘겨보았던 황신혜 밴드의 리더 김형태가 홈페이지를 통해했던 고민 상담을 책으로 묶은 『너, 외롭구나』를 떠올리게 했고 그 시절 『너, 외롭구나』가 내게 주었던 감동과 위로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너, 외롭구나』와 『모두와 잘 지내지 맙시다』는 전혀 다른 노선의 책이라는 걸 깨닫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절대 모두와 잘 지내지 말았으면. 그건 사실 그렇게 할 거냐 말 거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니까. 뭔 짓을 해도 안 된다. 아무리 올바른 행동을 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보편성을 들며 모두가 좋아하는 인간상이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빨간 옷을 입든 파란 옷을 입든 별로라는 말은 언제나 들을 수 있으니까, 그냥 입고 싶은 옷을 입어야 한다.

 착하다는 말, 듣기 좋다.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도 달콤하지. 근데 그 말 듣자고 굳이 잘 맞지도 않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열심히 잘해줄 필요는 없잖나. 그건 결국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다. 그래, 내 옛 친구 B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남들 비위 맞추느라 자신의 의사를 외면하지 말자. 좋은 이미지를 위안 삼으며 스트레스를 모르는 척하는 건 한계가 있다. p.234

아마 오마르의 주요 구독층은 나보다 어린층일 것이고 오마르는 내 또래쯤 될 것이라는 것들을 빠르게 유추할 수 있었던 건 끄집어내는 이야기들이 현재 상황에서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것들이었지만 제시하는 설루션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던 것이어서 그랬다. 그러니까 내 인생을 좀먹고 있는 자잘한 스트레스들을 건드려 주는데 동지애를 느낄 만큼 정확한 맞는 말 대잔치의 향연이었지만 위로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에는 그만큼 강렬하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기를.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나대신 말해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걸 잊지 말자.

유튜브 콘텐츠를 텍스트로 정리해 책으로 내놓으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말들이 명료하게 정리가 되었지만 기존에 오마르를 몰랐던 나 같은 독자들에게 유튜브에서 보이는 작가의 매력을, 인기의 비결을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작가의 유튜브 채널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유튜브의 인기에 힘입어 출판시장까지 점령한 오마르만의 대체 불가능한 매력은 무엇일까? 앞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튜버 오마르를(작가를)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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