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보는 미술관 - 나만의 감각으로 명작과 마주하는 시간
오시안 워드 지음, 이선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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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국어시간 때였다. 시험을 앞두고 시험 범위까지 진도를 다 나가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자율학습 시간을 주고 챙겨온 책을 읽으셨다. 조용한 교실에서 선생님은 정적을 깨트리며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이 좋으니 시험이 끝나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을 하셨었는데 그 책은 한젬마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였다. 국어 선생님의 추천이라 일단 신뢰가 갔고 국어 선생님의 미술책 추천이라 호기심도 생겨 빠르게 책을 찾아 읽었었고 새로운 시도의 신선함에 나 역시 책에 반하고 말았던 즐거운 추억이 있다. 

 

미술에 관해서라면 나는 오래도록 지독한 짝사랑을 앓고 있는 중이다. 그리기든 만들기든 미술 실력이라면 형편없는 것은 물론이고 작품을 보는 안목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실력과는 별개로 관심은 많아 외국여행이나 서울에 갈 일정이 생기면 미술관 투어 일정부터 알아보는 열성과 부지런을 떠는데 무언가에 금방 빠지고 그만큼 쉽게 식어버리는데 일가견이 있는 내가 이토록 길고 진득한 짝사랑을 하는 분야가 있다는 것이 놀라울 일이고 그 분야가 미술이라는데 의아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징들은 그림에 깊고 복잡한 생각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수르바란은 죽임을 당하는 양을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음을 맞이한 예수라고 해석하거나 우리 존재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정물화로만 그린 게 아니다. 그의 그림은 사람들의 유대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상징으로도 읽을 수 있다. 정말 철학적인 그림은 한 가지 학설이나 한 가지 주장만 뒷받침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과 모호함을 품고 있다. 어두운 배경은 죽음, 하얀 양털은 삶을 암시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우리가 감상할 때의 성향과 기분에 따라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가 바뀔 수 있다. p.85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하나님의 어린 양>

 

고등학교 1학년 때 한젬마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에 빠진 이후 이른바 '그림 읽기'방식의 책 들이라면 무조건 집어 드는 나에게 오시안 워드의 『혼자 보는 미술관』는 읽기도 전에 만족하고 반해버릴 책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기분 좋게도 그러한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 그림보다 1세기 전,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더 혁신적으로 아프리카 혈통의 노예인 후안 데 파레하 Juan de Pareja의 초상화를 그렸다. 후안 데 파레하는 벨라스케스의 조수로 훗날 이름난 화가가 되었다. 초상화 속의 파레하는 오마이처럼 생각에 잠겨 먼 곳을 응시하지 않는다. 귀족적인 복장을 하고 관람자를 도도하게 바라보는 태도로, 마치 자신이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었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듯하다. 사실 주인이었던 벨라스케스가 그를 해방해주었다. 이 그림이 그려진 해에, 벨라스케스는 파레하의 노예해방 서류에 서명했다. p.115 디에고 벨라스케스 <후안 데 파레하>

 

60페이지가 지나서야 나타난 책의 목차를 보고 짐작은 했지만 그야말로 밀도가 엄청난 책이다. 그러니까 나름의 각오가 필요한 책이다. 책에 실린 방대한 양의 작품들은 물론이고 작품에 대한 설명과 미술사, 당시의 세계사 등 작가가 들려주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코멘트가 쉼 없이 술술 넘어가는 과정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하나의 작품을 보여주고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고 또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일이 익숙한 나에게 한 작품에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혼자 보는 미술관』만의 특별한 방식에선 특유의 기교가 보이기도 한다. 처음 보는 작품들에 대해 새로운 작품과 작품세계에 대해 알게 되어 반갑고 익히 알고 있는 작품에 대한 해석과 코멘트는 작품에 대한 시야를 더 넓혀주면서 그림 읽기'방식의 책들을 좋아하고 좀 읽어봤다고 자부하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겸손해지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책에 수록된 작품들과 작가의 깊이 있는 해설을 읽으며 작가의 안목과 센스에 대해 감탄을 자아낸다(책의 중반, 조금 생뚱맞게 느껴지는 단 한 점의 동양화 안중식의 <영광풍경도>는 작가에게 질문거리가 생기게 만들기도 한다).

진짜 목적을 어떻게든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거나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은 원래 내용이나 배경과 상관없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소문에 휩싸이기 쉽다. 간단한 선과 색깔만으로 그린 인류 최초의 그림 중 하나를 보면서도 페르메이르가 평생 추구해온 예술에 대한 야심을 담은 <회화 예술>처럼 끝없는 신비를 느낄 수도 있다. p.192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회화 예술>

 

재미와 전문성을 동시에 사로잡으며 책이 술술 읽히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가진 특유의 밀도 또한 무시하기란 힘들어 보인다. 그러니까 이 책을 처음 읽을 땐 무조건 조금씩 천천히 아껴 읽는 걸 추천한다. 그렇게 완벽하게 책을 음미한 뒤에는 그때그때 랜덤으로 아무 페이지나 넘기거나, 원하는 작품을 찾아 보고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는데 (이 부분에선 책의 목차와 색인에 대한 아쉬움은 조금 남지만...) 그러니까 오래 두고 읽기에도 더없이 너무나 완벽한 책이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빈약하지만 오시안 워드의 안목과 재능을 일찍 발견한 기쁨이 크다. 오시안 워드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그가 더 큰 세계에서 더 크게 성장하면서 폭넓은 행동반경에서도 꾸준히 글을 쓰고 책을 내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전히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인데다가 발전의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그에게 소개받을 미술 세계가 무궁무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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