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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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다른 쪽으로 터닝 포인트를 돌았다는 사실은 이제 부정할 수 없이 확실해졌다.

동거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 동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거'의 형태와는 조금 다르고 많이 특이하다. 남자친구와 헤어져 갑자기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티피에게 선택의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은 동생의 변호사 선임비용을 위해 월세가 필요한 야간에 일하는 호스피스 병원 간호사 리언과 서로의 시간을 정해 집을 공유하는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에서 6시까지는 리언이 아파트를 사용하고 오후 6시부터 오전 8시까지, 그리고 주말 동안 아파트는 티피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셰어하우스 첫 번째 규칙, 서로 만나지 않는다. 침대의 오른쪽은 리언, 왼쪽은 티피!

 

"당신은 매우…."

그가 손을 저었다.

"시끄러워요? 야단스러워요? 몸이 말도 안 되게 커요?"

그가 움찔했다.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나는 답을 기다렸다.

"너무 고대한 나머지 막상 읽을 수가 없는 책, 그런 책 있었어요?"

"아, 그렇고말고요. 늘 있죠. 나한테 자제심이란 게 한 톨이라도 있었다면, 『해리 포터』 시리즈 완결 편은 읽을 수 없었을걸요?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고통스러울 정도였죠. 앞선 책들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에요. 내가 바라던 대로가 아니면 어쩌지?"

"맞아요, 바로 그거."

그가 손을 흔들었다.

"내 생각에는… 그런 거였던 것 같아요."

"내가요?"

"그래요, 당신이." p.262-263

 

우리 사이는 기껏해야 주전자나 문 뒤편에 붙이는 별난 메모 정도면 충분하다.

사악한 부동산 시세와 물가를 자랑하는 영국(특히 런던)이지만 로맨틱 코미디가 펼쳐지는데 이만한 장소도 없다는 걸 베스 올리리의 『셰어하우스』를 통해 다시 확신하게 됐다. 특이한 형태의 동거 형태만큼이나 개성 넘치고 입체적인 캐릭터들과 사랑스러운 스토리는 소설을 읽어가는 내내 말랑말랑하고 달달하게 한다. 정반대 성격인 티피와 리언이 포스트잇 쪽지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서서히 서로에게 이끌려가는 과정에서 소설의 결과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신선하다. 서로 만나지 않는다는 그들의 규칙이 기념비적인 욕실 충돌 사건을 통해 금이 가더니 자신의 일상에 상대를 초대하면서 그들의 공유가 공간은 물론이고 시간, 그리고 상대의 마음으로까지 확대하며 발전해나가는 과정들을 지켜보는 시선이 시종일관 즐겁다. 티피와 리언의 로맨스는 물론이고 리언의 동생 리치의 항소심과 호스피스 병동의 프라이머 씨의 옛사랑 조니 화이트를 찾아가는 여정이 메인 로맨스 스토리의 즐거움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어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더불어 정말 소설 세계에서만 만났으면 좋겠는, 현실세계에서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티피의 전 남자친구 저스틴과 직장동료 마틴의 끔찍한 이야기와 교훈도 소설의 또 다른 재미의 요소를 더해준다. 그리니까 『셰어하우스』는 즐겁게 책장이 술술 넘어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인 것이다.

 

티피는 충동적이고, 그녀의 충동적인 면은 전염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나다.

그리고 리언은 약간의 두려움을 감수하고도 함께할 만한 사람이다.

티피와 리언의 시점이 서로 교차하며 소설이 이어지고 두 주인공의 로맨스 소설과 더불어 주변 인물들과의 따뜻한, 짜릿한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다. 주변의 도움으로 주인공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해나가는 이야기 역시 감동을 자극하며 로맨스 소설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나 영화화되어도 흥행이 보장될 것 같다는 생각을 읽는 동안 자주 했다. 특히 살림출판사가 『미 비포 유』,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이어 이번 신작 『셰어하우스』까지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사로잡는 확실한 로맨스 소설 전문 출판사로 자리매김하는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것 같다. 독자로서 그 과정들을 빠르게 지켜보는 일 역시 소설이 안겨준 재미 이상의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조조 모예스, 델리아 오언스, 베스 올리리 등 새로운 작가와 확실한 작품을 발견한 기쁨만큼이나 출판사의 확실한 색을 알게 된 기쁨도 크다. 작가들의, 출판사의 다음 행보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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