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무민 가족과 큰 홍수 - 무민 골짜기, 시작하는 이야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토베 얀손 지음, 이유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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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동글동글함과 사랑스러움을 가지고 오랜 시간 동안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무민을 캐릭터로만 알고 소비하다가 애니메이션과 소설을 통해 세계관을 드려다보며 본격적으로 입덕을 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좋아했던 캐릭터를 애니메이션, 소설을 통해 스토리의 재미에 빠지고 캐릭터들의 매력에 빠지면서 좋았던 것을 더 좋아하고 있는 와중에 무민 연작소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프롤로그 『작은 무민 가족과 큰 홍수』가 출간됐다. 


무민 덕후들에게 덕력을 폭발시켜줄 작품의 출간에 반가움과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었는데 본격적으로 소설을 읽기도 전에 작가의 서문에 크게 반하고 말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무민 스토리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 영향받은 작품들에 대한 고백의 글은 단순히 서문을 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책을 읽고 난 후 서문이 크게 기억에 남은 경우는 별로 없었는데 무민 골짜기에서 벌어지는 연작 소설이 시작되는 이야기에 앞서 작가가 들려주는 고백을 읽어가면서 이 책의 서문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다.




 작은 동물이 물었다.

 "저렇게 괴상한 나무들을 본 적이 있으세요? 줄기는 아주 엄청나게 길고 꼭대기에는 완전히 작은 먼지떨이 같은 게 나 있잖아요. 저 나무들 정말 멍청하게 생긴 것 같아요."

 무민의 엄마는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대꾸했다.

 "멍청한 건 나무가 아니라 너겠지. 저 나무는 야자나무고 언제나 저런 모습이야." p.57-58


겨울이 오기 전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무민 엄마와 무민은 길을 나선다. 작은 동물을 만나고 툴리파를 만나며 그들의 여정엔 동행이 생기고 노신사의 신기한 정원, 순금으로 된 집을 만나 신기한 경험을 하는가 하면 여정에서 해티패티들과 함께 집을 나간 아빠 소식을 듣고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여정이 무민 아빠를 찾는 여정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만남이 이어지고 예기치 않은 홍수를 만나며 긴장의 끈을 놓치지 못하게 하는데 아이스크림 눈이 쌓여있고 초록 레모네이드 냇물이 내리며 초콜릿과 캐러멜이 열매로 열리는 나무 등 신기한 풍경이 즐비한 노신사의 신기한 정원의 모습은 마치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초콜릿 강과 폭포가 흐르고 초콜릿 풀, 나무가 신비하게 펼쳐졌던 모습과 겹치기도 하면서 색다른 재미를 준다. 스니프가 이름을 가지지 못한 채 작은 동물로 무민 가족의 여정에 함께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또한 무민 세계의 시작으로 기존 독자들에게는 재미를 안겨주는 부분이다. 무민이 하마가 아닌 트롤이라는 사실은 무민 캐릭터의 큰 반전이었는데 『작은 무민 가족과 큰 홍수』를 읽으며 무민 아빠가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는 이야기도 기존의 무민 세계에서 몰랐던 사실이라 반전으로 다가왔다.




작가의 서문으로 시작해 짧은 소설과 이어진 이유진 번역가의 역자 후기까지 책 전체가 다 좋았다. 이유진 번역가는 『작은 무민 가족과 큰 홍수』의 이야기와 제2차 세계 대전, 자연재해를 언급하며 작품 속 사소한 부분까지도 디테일하게 살펴주고 작가가 무민 시리즈 집필 당시의 시대상을 들려주며 작품을 더 큰 시야로 볼 수 있게 도와준다. 역자 후기처럼 『작은 무민 가족과 큰 홍수』는 무민 세계의 조그마한 시작이 되고 뒤이어 펼쳐질 여덟 편의 연작소설로 이끄는 계기가 될 작품이다. 새로운 무민 독자들에겐 무민 세계관의 문을 활짝 열어주고 기존 무민 독자들에겐 소설을 제대로 정주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작품이다. 무민을 마냥 사랑스러운 캐릭터로만 알기에는 토베 얀손이 무민 시리즈에 담은 세계관이 너무나도 탄탄하고 디테일하다. 무민의 세계관을 알게 되어 정말이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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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니스 - 잠재력을 깨우는 단 하나의 열쇠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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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니스』라는 책 제목만 처음 접했을 땐 어떤 장르의 책인지 짐작조차 못했었다. 깔끔한 디자인의 표지에 '잠재력을 깨우는 단 하나의 열쇠'라는 부제를 보고서야 자기계발서임을 인지하게 됐을 정도로 제목만으로는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다. 고요라는 뜻의 제목과 달리 띠지의 강력한 문구들은 책이 미국에서 얼마나 요란하게 성공했는지를 잘 보여줬는데 미국 독자들을 사로잡은 잠재력을 깨우는 단 하나의 열쇠가 무엇인지 더불어 궁금해졌다. 

 

 톨스토이는 사랑은 미래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어야만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 해당하는 말이다. 대단히 큰 규모의 경기에 출전하는 최고의 운동선수들은 온전히 그곳에 존재한다.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한 상태로 현재에 있다.

 기억해야 한다. 굉장한 일이 미래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일은 없다. 명료함도 통찰력도 행복도 평화도 마찬가지다. 오직 지금 이 순간만 존재할 뿐이다. p.50-51

 

내면의 고요를 어떻게 끄집어내서 활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의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의 방식이 근사하다. 성공한 유명인들의 사례와 방식, 다양한 이론과 사상을 결부시켜 이해와 재미를 동시에 전해주고 공감하면서 내면의 고요를 끄집어내고 그 지침을 마련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라이언 홀리데이가 건네는 열쇠로 얼마만큼의 내면의 고요를 끄집어내고 활용해 잠재력을 이끌어낼지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과제가 되는 것이다. 단순히 어떻게 하라 혹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과 이론들을 바탕으로 들려주는 사례와 예시를 통해 사고의 확장을 넓혀주고 다양한 관점으로 자신에게 집중하여 내면의 고요를 찾게 도와준다. 

 

 군중의 아첨, 고급 자동차, 막대한 재산, 빛나는 상패와 같이 표면적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건 건강한 영혼이 보내는 신호가 아니다. 비난꾼이나 혐오자, 괴로움, 상처, 아픔, 상실 등 세상의 추악함 때문에 비참해지는 것 또한 건강하지 않다. 그보다는 모든 곳과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곳에 존재하고 우리가 허락하기만 한다면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살지게 할 것이다.

 먼지 수북한 트렁크에 찍힌 고양이의 부드러운 발자국, 뉴욕시의 아침 풍경, 환풍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증기, 비가 막 내리기 시작했을 때 대기에 스미는 아스팔트 냄새, 활짝 펼친 손바닥에 주먹이 딱 들어맞을 때 나는 퍽하는 소리, 계약서에 사인할 때 종이를 스치는 펜촉의 소리, 텃밭에서 따 온 채소로 가득한 바구니, 혼잡한 도로가의 가로수길 사이로 큼지막한 트럭들이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직선, 놀다가 지칠 대로 지친 아이의 즐거움이 묻어 있는 장난감, 수백 년간의 독자적인 발전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도시.

 이제 보이기 시작하는가?

 바쁜 삶 속에 고요가 드물다는 것, 또 있더라도 너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사실 세상은 고요를 다 써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저 아무도 들여다보고 있지 않을 뿐이다. p.169-170

 

스틸리스, 고요도 좋았지만 내면의 고요를 끄집어내고 활용하기 위해 작가가 방대하게 늘어놓은 유명인들의 사례, 이론과 사상을 결합시킨 예시들이 더없이 근사하고 좋았다. 그 자체가 해박한 지식으로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전해주었는데 단순히 동기부여가 되는 자기계발서만으로 그치지 않고 방대한 지식을 담아 뚜렷한 차별점을 보여준다. 베스트셀러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저자 칼 뉴포트가 이 책의 추천사로 "어떤 작가들은 충고를 한다. 그러나 라이언 홀리데이는 지혜의 정수를 뽑는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라고 썼는데 다른 자기계발서들과는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는 라이언 홀리데이만의 매력을 정확히 짚어줘서 크게 동의가 되었다. 『스틸리스』에는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가 전하는 동기부여와 방대한 지식들이 그야말로 고함량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책이 쉽게 술술 읽힌다고 속독을 하는 것보단 꼼꼼히 정독하고 다독하는 방법을 권한다. 자신의 정신과 영혼, 몸을 다스리는데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거장은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알고 있으며 자신만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평범한 것을 신성한 것으로 바꾼다.

 우리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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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
미즈키 히로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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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병아리(히요코)가 아니라 히나코입니다."

임대 빌딩의 조촐한 사무실, 총 네 명이 일하는 야마다노무사사무소의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는 얼마 전까지 파견사원으로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총무 업무 경력을 쌓았다. 자격증을 따면 정규직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부해 겨우 자격증을 따고 야마다노무사사무소에 입사하였지만 신입사원의 기분 같은 것은 맛보지 못한 채 바로 고문 회사를 할당받고 그럭저럭 일을 하고 있다. 미즈키 히로미의 신작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는 제목 그대로 신참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가 클라이언트들의 의뢰를 받고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서 노동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들이 6개의 연작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 전혀 없었어. 결혼을 하면 다 그만 뒀으니까." 

얼마 전 코로나 여파로 대기업을 시작으로 재택근무가 시행되었다는 인터넷뉴스 기사에 "이래서 대감집 노비로 살아야 한다"라는 그야말로 뼈 때리는 댓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주로 중소기업 클라이언트들을 상대로 당연한 일들도 어렵게 설득해가는 히나코의 분투기를 응원의 눈길로 따라 읽는 동안 뼈 때리는 댓글을 여러 번 되새기기도 했다.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의 6개의 연작소설들은 현대 직장인들이 겪는 사회적 문제들을 두루 다루고 있는데 좀처럼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회사와 직원 사이에서 신참 노무사 히나코가 그들에게 소통의 창구가 되어주고 균형을 잡으며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들을 지켜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 직장 내 괴롭힘, 열정페이, 육아휴직, 비정규직 차별, 재량노동제 등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노동계의 병적인 문제들이 우리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며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것이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만의 특별한 재미다.

 

 "가키타니 씨의 부상에 대해 말했어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도 얘기했고요!"

 "말하긴 했지만 병아리 씨는 병아리니까. 무엇보다 내가 갔으면 보험 영업하는 아줌마로 생각했을 거야."

 니와 씨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후반에 돌입했다고 해도 이십 대다, 직접 관련되어 일하는 사람에게는 '사자'자격을 가진 선생으로 취급되지만 대다수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저 '젊은 여자'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p.248

 

"사회인이 되면 약속이라는 거, 의외로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지."

파견사원으로 쌓은 경력에 어려운 자격증도 땄으니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일하는 히나코지만 노무사 사무실에서도, 클라이언트들도 어딜 가나 자신을 미숙한 병아리로 보는 시선과 같은 세세한 묘사, 일본 노동법에 대한 방대한 자료조사 등에 반하면서 미즈키 히로미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진다. 갑의 입장인 회사와 을의 입장인 사원들의 입장 차이를 동시에 다루고 갈등, 미스터리가 풀리는 과정에선 작가만의 특징이 보이는가 하면 존재는 하여도 쓸 수 없는 남성 육아휴직 등을 다루는 부분에선 날카로움이 보이기도 한다. 가독성이 좋아 빠르게 읽힐 것이라 생각했지만 책을 읽는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던 건 히나코를 보며 나의 사회 초년생 시절을 회상하고, 과거의 많은 경험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더불어 떠오르는 인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떠오른 기억들이 그리 좋은 추억들이 아니었다는 점은 조금 슬프다.


"고객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우선 안에서부터 손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책에서 다루는 중요한 사회문제들, 다양한 입체적인 캐릭터들, 균형 있게 다루는 회사와 사원들의 입장에서 느끼게 되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함께 따라 읽어가면서 히나코의 성장 드라마로 제작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 미국 드라마, 일본 드라마의 차이'에 대해 "의사가 주인공이면 미국 드라마는 의사가 병을 고치고, 일본 드라마는 의사가 교훈을 주고, 한국 드라마는 의사가 사랑을 한다"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글이 인터넷에 유명한데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를 원작으로 드라마가 제작된다면 일본 드라마의 특징을 제대로 살려주는 작품이 탄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회의 수많은 히나코들을 응원하게 하고 잔잔한 교훈을 끊임없이 전해주는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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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얼,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질 거야 - 지금 이 순간 용기가 필요한 너에게 디즈니 레이디스 시리즈
인어공주 원작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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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미모에 착함과 사랑스러움을 동시에 가지고 만인의 연인이 되어 모두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는 공주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왕자님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들의 행복을 질투하는 누군가의 방해로 시련의 시간을 보내도 사랑의 힘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결국 왕자와 공주는 결혼의 결실을 맺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공주들의 이야기들은 전세계 많은 꼬마 소녀들의 로망이 되어 왔다. 동화로, 만화로, 영화로 끊임없이 소비되는 동화를 수없이 접하면서 공주님들의 이야기들 중 각별히 좋아하거나 아끼는 동화가 저마다 있을 것이다. 나에겐 <인어공주>가 그러했는데 공주가 왕자와 결혼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너무나도 뻔한 공주 이야기의 공식을 깬 슬픈 결말이 어린 나이에도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동화 밖에서도 인어공주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동상이 여러 번 훼손을 당하는가 하면 실사 영화 캐스팅이 인종차별 문제로 논란이 되는 등 최근까지도 부정적인 뉴스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하여 <디즈니 레이디스>시리즈를 내놓았다. 우선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 <인어공주>의 에리얼, <라푼젤>의 라푼젤을 다루며 삶을 더욱 빛나고 단단하게 다루어준,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알게 해준, 디즈니의 여성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후 더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 당연하게 예상된다. 무수한 디즈니의 여성들 중 역시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가는 건 <인어공주>의 에리얼인데 <디즈니 레이디스>시리즈에서 가장 빠르게 출간되면서 시리즈에 대한 궁금증을 빠르게 해소시켜 주었다.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마구 소환시켜 줄 것 같은 『애리얼,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질 거야』를 받고선 바로 책을 읽지는 않았다. 마치 의식처럼 먼저 넷플릭스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원작<인어공주>를 시청했는데 눈에 익은 장면들, 귀에 익은 음악들로 1시간 20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며 집중하고 봤지만 결말이 내가 익히 알아왔던 결말과 달라서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분명 과거 디즈니 애니메이션 원작의 <인어공주>를 몇 번이나 봤을 텐데 여느 공주들의 마지막과 진배없는 디즈니식 인어공주 결말이 처음처럼 느껴져서 혼란스러웠고 인어공주가 바다에 들어가자 거품이 되는 장면이 너무나도 선명하기에 그 장면은 어디서 본 것인지 헷갈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거품이 된 인어공주의 이야기가 가엾고 슬퍼 디즈니의 수많은 공주들 중 제일 좋아했는데 그들과 다름없는 결말을 맞이하는 인어공주가 너무나도 낯설었지만 예기치 않은 낯섦과 혼란스러움이 밀려와도 인어공주는 인어공주다. 긍정적인 성격과 에릭 왕자와 사랑을 위해 아버지 트리톤 왕에게 맞서고 마녀 우슬라와 거래하는 용감한 모습은 다른 공주들과 마찬가지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도 인어공주 특유의 매력을 잃지 않는다. 삼십 대 중반에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 로망을 충족시켜주니 마치 커다란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영화 관람 이후 이어진 『애리얼,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질 거야』는 영화가 전해준 선물의 감동과 기쁨을 연장시켜 주었는데 막연히 인어공주의 시점으로 봤던 영화를 다양한 관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애리얼 특유의 사랑스러움, 긍정적인 성격, 용맹함을 되새기게 하고 깊은 여운을 전해준다. 백영옥 작가의 『빨강 머리 앤이 하는 말』의 성공 이후 우후죽순으로 출판되는 이런 에세이 출판을 달갑게 보지 않았는데 어린 시절 누구나 로망을 가졌던 디즈니 여성들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어른이 되어 다시 본 인어공주는 어렸을 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용감함과 낙천적인 성격이 보이며 인어공주의 매력을 더욱 배가시켰다. 당연한 말도 영화를 보고 여운이 가기 전에 다시 장면을 되짚어 보고 따뜻한 글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한층 더 성숙해지고 아련한 감정이 밀려들어와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시리즈의 이름을 '디즈니 프린세스'가 아닌 '디즈니 레이디스'로 정한 것도 마음에 든다. 작년 여름 개봉했던 영화 <알라딘>에서 주인공 자스민 캐릭터를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닌 당당한 여성으로 재탄생시켜 호평을 받았었는데 인종차별 논란으로 영화 촬영도 전에 논란에 휩싸인 실사 영화는 원작을 어떻게 각색해서 어떤 캐릭터들을 선보이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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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시옷들 - 사랑, 삶 그리고 시 날마다 인문학 1
조이스 박 지음 / 포르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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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시를 읽지 못하는 영혼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항상 시가 어렵고 시에 대한 평론은 더 어렵다. 시를 읽을 줄 알고 쓰는 사람들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변명해보지만 터무니없이 근거가 빈약한 이 이론은 사실 말하는 나조차 납득이 힘들긴 하다. 덕분에 시를 즐겨 읽거나 시를 쓰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한한 부러움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결핍과 그로 인한 욕망을 제대로 건드려주는 책을 만났다. 




조이스 박의 『내가 사랑한 시옷들』은 영문학을 전공한 작가가 엄선한 세계 명시 30편을 원어와 작가의 번역, 작품에 대한 작가의 해석과 영시로 배우는 영어로 만나 시에 대한 감상과 해석은 물론이고 언어적 의미까지 이해하고 감성의 결을 확장시켜준다. 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지만 조이스 박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언어적 의미들이 그야말로 밀착형으로 읽히며 책이 흡인력 있게 읽히고 막힘이 없다. 시와 더불어 작가가 전해주는 영문학의 품격을 담아내고 하나씩 마음에 새기는 과정들이 마치 문학적 세례를 받은듯한 느낌이다. 평소 어려워하는 시를, 그것도 영미권 시에 대해 문학적으로, 언어적으로 다루는 책을 이렇게나 만족하고 좋아하게 될 줄은 정말이지 몰랐다.


 때로는 가벼운 관계가 주는 편안함도 있는 법이다. 모든 사람에게 진심일 필요가 없고,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쏟을 수도 없다. 다른 이들이 나의 죽음을 도와줄 수 없다는 구절에 가슴 아파할 이유도 없다. 죽음은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체험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죽음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여정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만 이 풍부한 '가벼운 관계'에는 주의사항이 있다. 가벼운 관계는 필요해도, 가벼운 관계'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벼운 관계가 전부가 되면 세상은 거대한 양하로 변한다. 껍질을 벗기고 벗겨도 고갱이는 나오지 않고 끝이 나버리는 상태 말이다. 그러므로 가벼운 관계 속에서 웃고, 노래하고, 기뻐하고, 잔치를 열되 때로는 진지하고 고요하게 마주할 수 있는 진짜배기를 찾아야 한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더라도 서로에 대한 믿음 속 흔들리지 않는, 관계의 중심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진짜배기들로만 꽉찬 삶도 버겁기는 매한가지지만.

 삶에는 여기저기 빈틈이 있어야 한다. 인터넷 초기, 광대한 사이버 세계를 누비며 나는 이렇게 말하고 다녔었다. "I'm a little cyber fish, swimming through this vast sea of the Internet." "나는 이 광대한 인터넷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작은 사이버 물고기야."

 그렇다. 유유히 헤엄쳐 다니면 된다. 유선형의 존재로 흘러가는 것은 흘러가게 두고 가끔 빛을 받아 비늘이 반짝이면 황금 비늘이 생겼다고 우기면서. 그러나 뭍으로 올라올 때가 되면 다시 사람의 다리로, 중력을 견디며 걸어야 할 땐 또 미쁘게 걸으면서. p.135-136


개인적으로 책의 저자 조이스 박 작가가 장영희 교수의 제자라는 이력이 흥미로웠는데 학창시절 故장왕록 교수가 집필한 영어 교과서로 공부를 했었고 대학생 때 故장영희 교수의 수필을 챙겨 읽었었는데 시간이 흘러 故장영희 교수의 제자 조이스 박 작가가 들려주는 영미권 시와 그에 관한 이야기에 푹 빠진 것이 뭔가 기념비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마인드맵을 그려가듯이, 족보를 써 내려가듯이 독서 목록에서 이 라인이 뻗어나가는 것 같아 좋았다.  


과거에 꿈이 많았던 시절 무수한 꿈들 속엔 시인이 의도한 대로 시를 읽어내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길, 좋아하는 작품이라면 원서로 읽어낼 줄 아는 사람이길 바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그런 사람이 되진 못했다. 조이스 박의 『내가 사랑한 시옷들』은 그야말로 못다 이룬 과거의 꿈들을 대신 이뤄준 책과도 같았다. 책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가 기대 이상으로 높지만 그럼에도 사람, 사랑, 시를 다룬 시옷들의 이야기는 30편으로는 부족하다. 시옷 이외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내가 사랑한 시옷들』은 출판사 포르체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시리즈 <날마다 인문학> 1권으로 출간돼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것은 물론이고 독자의 마음도 제대로 사로잡았다. 시리즈가 어떤 분야들을 두루 다루고 어떤 저자들이 독자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높여주게 될지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진다. 문학 장르가 대부분인 책장에 <날마다 인문학> 시리즈의 자리를 만들어 놔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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