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
미즈키 히로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병아리(히요코)가 아니라 히나코입니다."

임대 빌딩의 조촐한 사무실, 총 네 명이 일하는 야마다노무사사무소의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는 얼마 전까지 파견사원으로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총무 업무 경력을 쌓았다. 자격증을 따면 정규직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부해 겨우 자격증을 따고 야마다노무사사무소에 입사하였지만 신입사원의 기분 같은 것은 맛보지 못한 채 바로 고문 회사를 할당받고 그럭저럭 일을 하고 있다. 미즈키 히로미의 신작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는 제목 그대로 신참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가 클라이언트들의 의뢰를 받고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서 노동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들이 6개의 연작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 전혀 없었어. 결혼을 하면 다 그만 뒀으니까." 

얼마 전 코로나 여파로 대기업을 시작으로 재택근무가 시행되었다는 인터넷뉴스 기사에 "이래서 대감집 노비로 살아야 한다"라는 그야말로 뼈 때리는 댓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주로 중소기업 클라이언트들을 상대로 당연한 일들도 어렵게 설득해가는 히나코의 분투기를 응원의 눈길로 따라 읽는 동안 뼈 때리는 댓글을 여러 번 되새기기도 했다.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의 6개의 연작소설들은 현대 직장인들이 겪는 사회적 문제들을 두루 다루고 있는데 좀처럼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회사와 직원 사이에서 신참 노무사 히나코가 그들에게 소통의 창구가 되어주고 균형을 잡으며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들을 지켜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 직장 내 괴롭힘, 열정페이, 육아휴직, 비정규직 차별, 재량노동제 등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노동계의 병적인 문제들이 우리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며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것이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만의 특별한 재미다.

 

 "가키타니 씨의 부상에 대해 말했어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도 얘기했고요!"

 "말하긴 했지만 병아리 씨는 병아리니까. 무엇보다 내가 갔으면 보험 영업하는 아줌마로 생각했을 거야."

 니와 씨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후반에 돌입했다고 해도 이십 대다, 직접 관련되어 일하는 사람에게는 '사자'자격을 가진 선생으로 취급되지만 대다수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저 '젊은 여자'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p.248

 

"사회인이 되면 약속이라는 거, 의외로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지."

파견사원으로 쌓은 경력에 어려운 자격증도 땄으니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일하는 히나코지만 노무사 사무실에서도, 클라이언트들도 어딜 가나 자신을 미숙한 병아리로 보는 시선과 같은 세세한 묘사, 일본 노동법에 대한 방대한 자료조사 등에 반하면서 미즈키 히로미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진다. 갑의 입장인 회사와 을의 입장인 사원들의 입장 차이를 동시에 다루고 갈등, 미스터리가 풀리는 과정에선 작가만의 특징이 보이는가 하면 존재는 하여도 쓸 수 없는 남성 육아휴직 등을 다루는 부분에선 날카로움이 보이기도 한다. 가독성이 좋아 빠르게 읽힐 것이라 생각했지만 책을 읽는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던 건 히나코를 보며 나의 사회 초년생 시절을 회상하고, 과거의 많은 경험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더불어 떠오르는 인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떠오른 기억들이 그리 좋은 추억들이 아니었다는 점은 조금 슬프다.


"고객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우선 안에서부터 손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책에서 다루는 중요한 사회문제들, 다양한 입체적인 캐릭터들, 균형 있게 다루는 회사와 사원들의 입장에서 느끼게 되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함께 따라 읽어가면서 히나코의 성장 드라마로 제작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 미국 드라마, 일본 드라마의 차이'에 대해 "의사가 주인공이면 미국 드라마는 의사가 병을 고치고, 일본 드라마는 의사가 교훈을 주고, 한국 드라마는 의사가 사랑을 한다"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글이 인터넷에 유명한데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를 원작으로 드라마가 제작된다면 일본 드라마의 특징을 제대로 살려주는 작품이 탄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회의 수많은 히나코들을 응원하게 하고 잔잔한 교훈을 끊임없이 전해주는 『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를 응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